"스쳐가는 항만에서 돈 머무는 산업 거점 '부산항'으로" [해양수도 대전환]
④ 트라이포트 경제권의 확장
복합물류·R&D 센터 유치까지
부산항 중심 제조업 경쟁력 초점
해양 MRO·수리조선 시장 주목
경남 대형 조선·울산 에너지 연계
트라이포트 경제특구 등 고려를
해양수도 부산은 항만이 있는 도시를 넘어 고부가가치 산업 생태계를 갖춘 해양산업도시로 간다. 세계 2위의 환적항인 부산항에 동남권 관문공항 가덕신공항을 더하고 경남과 울산까지 무대를 넓히면 세계를 향한 트라이포트 경제권이 열린다. 부산항을 거점으로 기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새로운 기업도 데려와야 한다. 첫걸음이 시작됐지만 갈 길이 멀다.
■세계 2위 환적항의 외화내빈
부산항은 해양수도 부산의 심장이자 이미 글로벌 허브다. 지난해에 처리한 컨테이너 물동량이 2488만TEU를 기록해 3년 연속 사상 최대 기록을 새로 썼다. TEU는 20피트, 6m 남짓한 높이의 컨테이너 단위다. 일년간 부산항을 거친 컨테이너를 한 줄로 세우면 지구 세 바퀴 반을 넘게 돌 수 있다. 환적 화물은 전체의 약 57%를 차지해 세계 2위 환적항 위상을 이어갔다. 80%가 외국적 선사다.
문제는 단순한 하역 서비스에 치우친 구조가 낮은 부가가치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분석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부산항의 총부가가치는 약 17조 3668억 원으로, 싱가포르항(55조 8816억 원), 로테르담항(26조 3785억 원) 등에 비해 낮다. 특히 ‘항만 하역 및 지원 서비스’ 부문은 8조 3963억 원으로 48.3% 비중을 차지해 싱가포르(8.3%), 로테르담(19.9%)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싱가포르는 총부가가치의 80% 이상을 ‘해운 및 지원 서비스’에서, 로테르담은 약 60%를 ‘항만 관련 산업’에서 거두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부산항의 한계가 뚜렷하다.
배후단지도 마찬가지다. 2023년 부산항 신항 배후단지 입주기업 중 94%가 창고업이었다.
부산연구원 허윤수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간된 보고서 ‘해양수도는 부산을 어떻게 바꾸는가’에서 “많은 물동량 대비 단순 환적 중심의 저부가가치 구조에 고착돼 부산의 낙수효과가 제한됐다”며 “항만의 성과가 시민의 삶으로 연결되지 않는 구조적 단절을 극복할 전략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트라이포트가 여는 새로운 영토
트라이포트 구축은 이러한 한계를 극복할 핵심 전략 중 하나다. 부산항과 부산항 신항에 더해 2030년부터 10년간 총 15개 선석 규모로 진해신항이 건설된다. 2035년에는 가덕신공항이 개항한다. 항만과 항공, 철도를 연결하는 육해공 복합물류 시스템, 트라이포트의 완성이다. 이를 통해 부산항은 짐을 싣고 내리는 항만을 넘어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이끄는 항만경제권의 거점이 될 수 있다.
부산시가 진행한 ‘트라이포트 혁신전략 수립 용역’ 결과에서는 트라이포트가 부산항을 중심으로 해양산업의 영역과 영토를 확장하는 모델을 보여준다. 보고서는 이를 GDC(글로벌물류센터) 관점의 복합물류, SCM(공급망 관리) 관점의 물류와 산업의 통합, 마지막으로 글로벌 본사나 R&D(연구개발)센터, 금융센터 등을 유치하는 GVC(글로벌가치사슬) 관점의 글로벌 허브도시의 세 단계로 설명한다.
‘씨앤에어’로 대표되는 복합물류는 부산항의 환적화물을 가덕신공항과 연계해 물류 경쟁력을 높인다. 전자상거래 제품, 의약품, 첨단장비 반제품, 부품 등을 트라이포트 물류 거점에서 보관하거나 포장, 라벨링 등 부가가치 활동을 거쳐 다시 수출하는 개념이다.
물류에 산업을 결합하면 원료를 수입해 동남권 산업단지에서 중간재나 핵심 부품으로 제조한 뒤 수출할 수 있다. 자동차, 기계, 조선과 우주항공까지 지역 주력 산업이 이 공급망에 들어온다. 트라이포트의 공간도 부산항에서 동남권 전역까지 확대된다.
■수리 조선과 해양 MRO 산업부터
해양 MRO(유지·보수·정비) 산업에서는 부산항을 중심으로 흩어진 기존 산업을 고도화해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는 시도가 첫발을 뗐다. 한미 조선 협력(MASGA)으로 미군 해군 함정 MRO 사업이라는 기회가 열렸다. IMO(국제해사기구)의 규제에 발맞춘 선박 친환경 개조 시장은 5년 내 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북극항로 시대 쇄빙선 등의 MRO 수요도 새로운 시장이다.
초광역권 국책 사업도 출발했다. 부산시는 경남도, 울산시, 전남도와 공동으로 산업통상부의 ‘중소조선 함정 MRO 글로벌 경쟁력 강화 지원사업’과 방위사업청의 ‘방산혁신클러스터 함정 MRO 사업’을 동시에 추진한다. 각각 495억 원과 490억 원의 총사업비를 투입해 2030년까지 중소조선·기자재 업체의 MRO 산업 전환과 함께 통합 공급망 플랫폼 운영, 장비 구축, 기술과 제품 개발을 지원한다. 중국과 싱가포르가 장악한 선박 수리·개조 시장을 되찾기 위한 수리조선단지도 부산항 신항에 2030년 착공을 목표로 추진 중이다.
부산시 박동석 첨단산업국장은 지난 3일 열린 ‘해양 MRO·수리조선 클러스터 구축을 위한 토론회’에서 “부산은 선박 수리업 100개사, 조선 기자재업 398개사와 6개 권역 38개 선박수리 조선소로 국내 최대의 ‘자생적 MRO 공급망’을 보유하고 있다”며 “과감한 재정 투자와 해양 MRO 메가특구 확대 지정을 통해 대한민국 MRO의 골든타임을 사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