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가덕신공항 만시지탄
논설주간
도심 곳곳 넘쳐나는 외국인 관광객
부산 다녀간 후 ‘맛과 멋’ 못 잊어
인스타·틱톡에 ‘부산병’ 영상 올려
김해공항 미어터지고 KTX 예매 전쟁
신공항 건설 허송세월 없었다면
글로벌 관광도시 꿈도 꽃피웠을 것
정책 실패의 뼈아픈 경험 반복 않길
최근 몇 년 사이 부산에서 일어난 가장 큰 변화의 하나가 도심 어디를 가나 많은 외국인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대만, 일본, 동남아 관광객, 심지어 미주나 유럽에서 온 서양인 관광객도 눈에 띄게 늘었다. 유명 관광지는 물론이고 도심 곳곳에서 시민의 일상과 함께하는 외국인이 정말 많다. 여름 시즌을 맞이한 광안리와 해운대해수욕장은 외국의 유명 휴양지를 연상케 할 정도다. 도심 풍경으로만 보면 부산은 이미 글로벌 도시다.
최근에는 부산 여행을 다녀간 후 “부산 앓이를 하고 있다”라며 ‘부산병’ 환자를 자처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 등 SNS를 타고 지독한 부산 앓이의 경험들이 확산하면서 외국인 관광객들 사이에서 부산병은 이제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됐다. 해운대 미포에서 청사포를 달리는 스카이캡슐을 잊지 못해 영상을 무한 반복하면서 틱톡 조회수가 대박났다는 식이다. 처음에는 아침 식사로 먹던 돼지국밥이 낯설었는데 부추를 팍팍 넣은 뜨끈한 돼지국밥 맛에 중독돼 소울푸드가 됐다는 고백도 등장한다. 대만 항공사가 돼지국밥 콘셉트의 기내식을 내놓았다고 하니 그냥 하는 소리는 아닌 모양이다. 광안리 드론 쇼와 함께 먹던 수변공원 치맥 중독도 자주 언급되는 증상이다. 부산관광공사가 ‘부산병 치유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까지 들린다.
외국인 관광객 증가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올해 들어 지난 5월까지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200만 명에 육박했다. 지난해 처음으로 300만 명을 돌파했는데 올해에는 지난해에 비해서도 40%나 급증하며 500만 명 시대를 목전에 두게 됐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미국 80.1%, 프랑스 89.2%, 영국 44.7% 등 서양 관광객이 상대적으로 가파른 증가세를 보여 명실상부한 글로벌 관광도시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도심에서 서양 관광객이 자주 눈에 띄었던 게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부산의 외국인 관광객 증가를 두고 K문화, 환율, 느슨해진 한한령과 강화된 일한령, 엑스포 홍보 효과 등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부산이라는 도시가 가진 매력이 ‘부산병’까지 앓게 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도 거대한 대도시와 광활한 바다가 공존하는 해양도시는 드물다. 세련된 초고층 빌딩 숲 옆으로 해운대와 광안리의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밤이면 광안대교의 야경이 빛난다. 근대의 역사와 감성을 간직한 감천문화마을, 흰여울마을, 비석마을은 ‘인스타그래머블’한 풍경을 쏟아낸다.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속도와 저렴한 물가, 다양한 먹거리, 투박한 정서가 부산 앓이의 배경이다.
이 대목에서 유독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는 게 가덕신공항 허송세월이다. 외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김해국제공항은 미어터진다. 국제공항은 글로벌 관광도시의 필수 인프라다. 김해공항에 대만 직항이 개설된 후 대만 관광객이 점유율 1위로 올라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지난해 비수도권 공항 중 처음으로 국제선 이용객 1000만 명을 돌파한 후 올해는 12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인천공항을 통해 부산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서울과 부산을 오가는 KTX도 예매 전쟁이다. 김해공항 슬롯 확대를 추진하고 있지만 심야 운항과 장거리 노선 제한 등 구조적 한계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추진된 게 신공항이다. 2002년 돗대산 참사를 계기로 남부권신공항 논의가 시작됐으니, 지금이면 개항하고도 남았을 시간이고 부산 관광의 르네상스도 더 꽃을 피웠을 것이다.
남부권신공항 논의 당시에도 김해공항 수요의 폭발적 증가는 예견됐지만 국토부는 수요 전망을 애써 축소했고 서울 언론들은 ‘고추 말리는 공항’이라며 다른 지방공항과 도매금으로 비하했고, 지금까지도 안전 등 갖은 이유를 대며 딴지를 걸고 있다. 정부는 지역 간 갈등을 부채질하며 입지 선정과 취소, 개항 연장을 반복했고 그 결과가 2035년 개항 로드맵이다. 그 사이 부산은 많은 기회를 잃었다. 이재명 정부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보이는 속도전을 생각하면 가덕신공항 허송세월은 그야말로 만시지탄이다. 국가의 미래가 반도체에만 있는 게 아니다. 관광 또한 국가의 미래 전략산업이다. 가덕신공항은 해양수도권의 핵심 인프라이기도 하다.
현재로서는 2035년 개항 로드맵도 어떤 시련과 도전에 봉착할지 모른다. 글로벌 도시 부산과 해양수도권 완성을 위해서라도 최대한 앞당겨야 마땅한데 정부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에 쏟는 정성의 반의반만큼이라도 쏟을지 미지수다. 해양수도, 글로벌 관광도시를 성장 전략으로 내세운 전재수 시정이 사활을 걸어야 할 일이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