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칼럼] 라 스칼라와 싸우는 부산 오페라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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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석논설위원

상하이대가극원 10월 개관 시즌 돌입
이탈리아·독일·러시아 명문 극장 초청
토종 오페라·전통 음악극 안배 '자존심'

부산, 공모 선정 '새야새야' 돌연 보류
해외 초청 논란, 개관 방향 공론 실종
손님 아닌 주인이 책임 의식 가져야

부산의 자매도시 중국 상하이, 2030세계엑스포 유치 경쟁에서 부산에 쓴맛을 안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두 도시는 부산과 묘한 공통점을 지녔다. 공연예술 허브를 꿈꾸며 정통 오페라극장을 새 랜드마크로 세웠다. 세 극장 모두 도시 브랜드 혁신의 상징이 된 오슬로 오페라극장을 설계한 노르웨이 스뇌헤타의 작품이다.

대형 공연장 개장에 앞서 마주한 현실과 고민의 지점도 겹친다. 클래식의 본고장조차 관객 감소로 사투를 벌이는 마당에 저변이 넓지 않은 비서구권 신생 공연장이니 오죽하랴. 제작 극장으로서 수준 높은 작품을 생산하는 한편 자극적인 영상물이 넘치는 시대에 관객 유치 경쟁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는 최대 4000억 원의 공사비가 투입되어 내년 9월 개관을 앞둔 부산오페라하우스는 물론, 신설 공연장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난제다.

가장 이른 오는 10월 17일 문을 여는 상하이대가극원(Shanghai Grand Opera House)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난달 8일 발표된 개관 시즌은 화려하고 다채롭다. 설 연휴를 포함한 내년 2월 20일까지 모두 47개 작품 82회 공연과 100여 개 예술 교육 프로그램으로 빼곡하다. 이 가운데 이탈리아(라 페니체), 독일(베를린 국립오페라), 러시아(마린스키)의 유명 오페라극장 초청 공연이 단연 눈길을 끈다.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는 1800년 배경의 ‘토스카’를 1950년대로 옮겨 각색한 버전을 선보일 예정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극장이 공연할 ‘아이다’와 베를린 국립오페라의 ‘장미의 기사’도 원작을 재해석한 작품이다. 이들 ‘아시아 초연’ 3종 외에도 마린스키교향악단의 쇼스타코비치 15개 교향곡 전곡 연주회까지 배치한 점에서 흥행도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여기서 그쳤으면 상하이는 사우디와 함께 ‘서구 명문 극장의 아시아 쇼케이스’라는 비판을 받았을 수 있다. 사우디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 5년 동안 2억 달러(우리 돈 3000억 원)를 지급하고 개관 공연을 맡기려다 미-이란 전쟁의 불똥이 튀면서 보류한 상태다.

상하이 개관작에서는 창작 오페라 ‘의용군행진곡’과 자체 제작한 ‘투란도트’, 그리고 상하이 지역 단체들이 꾸미는 무용·전통 음악극이 눈에 띈다. 이 중 ‘의용군행진곡’은 항일 투쟁 시기 만들어져 훗날 중국 국가가 된 동명 노래의 창작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국가 정체성을 담은 토종 레퍼토리를 신생 오페라극장에 올린다는 것 자체의 울림이 적지 않다. 설 연휴까지 이어진 시즌 중에는 고전 음악극인 경극(京劇)·곤곡(昆曲)·월극(越劇)까지 편성됐다. 월드 클래스 총집결이라는 화제성을 노리되, 안방 문화의 자리는 비워 두지 않는 균형 감각과 자존심이 치밀하게 설계된 느낌이다.

서양과 동양, 원본과 각색, 전통과 현대의 화음을 통해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려는 상하이의 시도는 소용돌이에 빠진 부산의 모습과 대비된다. 개관이 1년 1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체성을 드러낼 기념 공연은 아직 안갯속이다.

당초 부산시는 2023년 12월 공모에서 전봉준의 삶을 다룬 ‘새야새야’를 개관 기념작으로 선정했다. 여기에 국내 정상급 작곡가에 추가 창작을 의뢰하고, 지역 출품작 등을 묶어 개관 시즌을 구성한다는 구상이었다. 하지만 부산과의 연결점이 없다는 이유로 ‘새야새야’가 돌연 보류되고, 추가 공모가 이뤄지지 않은 채 ‘라 스칼라 105억 원’ 이슈가 터져 찬반 논란만 격화된 상태다. 최첨단 무대는 완성돼 가는데, 그 공간을 채울 콘텐츠의 방향과 개관 시즌에 드러낼 부산의 얼굴은 여전히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뒤늦게 민간 협찬과 티켓 판매를 통해 시비를 30억 원으로 줄여 라 스칼라 공연을 추진하는 방안이 제기됐지만 궁색한 논리다. 어차피 100억 원대 공연이다. 애초 라 스칼라는 개관 레퍼토리의 한 축이어야 했지, ‘모 아니면 도’ 식의 선택지여서는 안 됐다. 전체 개관 시즌 콘셉트 속에서 예술성, 화제성을 고려한 초청 제안이 자연스럽게 추진됐다면 오해와 마찰을 피할 수 있었다. 공모 절차의 형해화와 해외 초청작 찬반론으로 본말이 전도되도록 방치한 부산시의 책임이 크다.

상하이대가극원은 지난달 28일 개관 시즌 예매 사이트를 열었다. 상하이시에 따르면 세계 25개국에서 접속자가 몰렸고, 1만 6000명이 대기했다. 해외 극장 초청 효과도 있었겠지만, ‘공연예술 허브 상하이’ 비전에 대한 관심도 컸으리라.

라 스칼라 논란의 최대 피해자는 글로벌 무대 데뷔를 앞둔 부산오페라하우스다.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손님이 잔칫상을 돋보이게 만들 수 있지만 주인의 주도적인 역할을 넘을 수는 없다. 부산 도시 브랜드를 혁신할 공간이 탄생한다. 부산의 어떤 서사를 담아 전 세계에 펼쳐 보일 것인가. 부산이 진짜 주인이 되려면 지금 대답해야 한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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