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연의 도시 공감] 보존과 활용의 완충지대, 부산
(주)로컬바이로컬 대표
대한민국 부산에서 제48차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가 진행 중이다. 유네스코는 1945년 11월 16일, 연합국 교육장관들이 영국 런던에 모여 교육 재건과 세계 평화를 위한 국제기구 창설에 뜻을 모으며 유네스코 본부를 통해 공식 설립하였다. 지금까지 세계의 고대 고분군부터 중세의 성곽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가치를 기반으로 문화유산을 지정하고 보존하는 데 앞장서 왔다.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유산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지닌 자산으로, 크게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으로 분류되어 지정된다.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의 세 가지 하위 범주로 나뉘며, 전 세계적으로 총 1248건이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그중 우리나라는 현재 총 17건의 세계유산(문화유산 15건, 자연유산 2건)을 보유하고 있으며 1995년 지정된 석굴암·불국사를 비롯하여 2025년 반구천의 암각화까지 등재되어 있다. 부산은 인류무형문화유산인 수영야류와 세계기록유산인 조선통신사 기록물이 등재되어 있으며 ‘한국전쟁기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은 202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공식 등록되었으며, ‘우선등재목록’에 선정되어 2030년 정식 등재를 목표로 준비 중에 있다. 경무대(임시수도대통령관저), 임시중앙청(동아대석당박물관), 국립중앙관상대(부산측후소), 복병산 배수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인 재한 유엔기념공원, 부산항 제1부두, 캠프 하야리아,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 영도다리 등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고 있는 건축물과 구조물, 마을이 대상이다.
'피란 유산' 유네스코 등재 준비
비극의 역사 '평화와 공존' 승화
20C 유산 보존 모범도시 도약을
세계유산으로 보존한다는 것은 도시의 자긍심을 가질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도시의 발전에 저해된다는 인식도 함께 가지고 있다. 특히 장엄한 사찰은 역사성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만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피란 유산 같은 20세기 건축이나 산업유산들은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는 ‘진정성’ 관점에서 본다면 가치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다. 그리고 피란 유산은 이미 시대를 거쳐 변형되어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훼손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고대 유적은 대개 도심과 떨어진 곳에 보존되어 있지만, 20세기 유산은 사람들이 현재 치열하게 살아가는 도심 한복판이나 주요 산업지대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개발 압력에 직면하면서 경제적 효율성과 재개발 요구, 교통 변화나 도시 기능을 어떻게 수용해 나갈 것인지 또는 선정되기 힘들지 않나라는 생각도 든다. 선정되더라고 과연 유지될까라는 의문도 드는 게 사실이다.
과거 영국의 리버풀의 경우 18~19세기 세계 무역의 중심지였던 근대 항구 시설과 건축 경관을 인정받아 2004년 등재되었다. 그러나 대규모 부두 재개발(초고층 빌딩 건설)과 에버턴 FC의 대형 축구장 건설을 강행하여 역사적 스카이라인과 경관이 회복 불가능하게 훼손되어 등재가 철회된 사례도 있다. 결국 우리가 추진하고자 하는 피란 유산은 보존과 개발이라는 양극의 문제 속에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이는 우리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유네스코 또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세기 유산을 인류가 함께 기억해야 할 ‘탁월한 보편적 가치’로 인정하고 있으며 박물관처럼 박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도시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조화를 이루며 ‘사용하면서 보존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20세기 중반, 한국전쟁이라는 비극 속에서 형성된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유네스코가 고민하는 모든 의제에 대한 명확한 해답을 품고 있다. 부산의 유산들은 화려한 건축미를 뽐내지는 않지만, 전쟁의 폐허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생존하고 회복했는지를 보여주는 강인한 ‘회복력’의 증거이다. 또한, 박제된 유적이 아니라 현재까지 시민들의 삶과 공존하며 도심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역동적 유산’으로 도시의 공존을 보여주는 유산이다. 단순한 비극의 역사를 갈등이 아닌 ‘인류의 평화와 공존’이라는 보편적 가치로 승화시킨 스토리텔링도 가지고 있다. 그간 조사 및 기초 데이터 구축과 스토리텔링을 위한 연구 활동을 진행하였으며 시민참여를 이끌기 위한 투어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운영해왔다. 이제는 통합 관리 기구 및 법적 보호 체계 구축, 역사문화마을 마스터플랜 수립, 시민 펀딩 등 지역공동체 활동 강화를 위한 실무적인 계획을 통해 공감대 형성과 활동력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
이번 대회는 유네스코의 고민인 20세기 유산에 대한 가치를 확인하는 자리이다. 이러한 활동이 전문가들의 참여에서 그치지 않고 시민들의 참여와 함께 ‘피란수도 부산’의 가치를 이해하고 제안함으로서 단순한 홍보를 하는 장이 아닌 20세기 근현대 유산 보존의 패러다임을 이끄는 완충도시 부산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