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시그니처 문화공간 이야기]폐허를 품은 건축, 시간을 전시하는 콜룸바 미술관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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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룸바 미술관 내부. 이상훈 제공 콜룸바 미술관 내부. 이상훈 제공
콜룸바 미술관 전경. 이상훈 제공 콜룸바 미술관 전경. 이상훈 제공

독일 쾰른의 콜룸바(Kolumba) 미술관은 작품을 담기 위해 지어진 건물이 아니다. 건물 자체가 하나의 전시이자, 2000년에 걸친 도시의 시간을 품은 거대한 유물이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된 중세 성당 ‘성 콜룸바 교회’ 터 위에 세워졌다. 전쟁으로 대부분 무너진 성당은 오랫동안 도시의 상처로 남았고, 1949년에는 전쟁의 상흔 한가운데 작은 예배당 ‘폐허 속의 성모’가 세워져 기억과 희망을 이어갔다.

이 특별한 장소의 설계를 맡은 이는 스위스 건축가 페터 춤토르다. 그는 2007년 완공된 콜룸바 미술관에서 과거를 지우거나 복원하는 대신 폐허와 예배당, 로마 시대 유적, 중세 교회의 흔적, 현대 건축을 하나의 공간으로 엮어냈다. 새로운 건축은 오래된 시간을 덮지 않고 품었고, 관람객은 미술관을 거닐며 쾰른이라는 도시가 지나온 긴 시간을 함께 체험하게 된다.

콜룸바 미술관 1층 고고학 공간. 이상훈 제공 콜룸바 미술관 1층 고고학 공간. 이상훈 제공

그 핵심은 1층 고고학 공간이다. 건물의 시작은 전시실이 아니라 발굴된 유적이다. 로마 시대 건축 흔적과 중세 성당의 기초, 전쟁의 상흔이 한 공간에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관람객은 공중 데크를 따라 천천히 그 위를 걷는다. 유적을 유리 아래 전시하는 일반적인 박물관과 달리, 건축 자체가 고고학적 현장을 품고 있어 현재와 과거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이곳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것은 예술 작품이 아니라 ‘시간’ 그 자체다.

시간의 층위를 담은 외부공간. 이상훈 제공 시간의 층위를 담은 외부공간. 이상훈 제공

건축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요소는 외벽이다. 콜룸바만을 위해 제작한 회색 벽돌을 일정한 간격으로 비워 쌓은 외피는 빛과 공기를 은은하게 통과시킨다. 낮에는 자연광이 실내를 부드럽게 채우고, 저녁에는 내부의 빛이 벽돌 사이로 새어 나와 건물 전체를 하나의 등불처럼 빛나게 한다. 묵직한 외형과 달리 공간은 놀라울 만큼 가볍고 투명하다.

콜룸바 미술관에는 작품 설명이 없다. 이상훈 제공 콜룸바 미술관에는 작품 설명이 없다. 이상훈 제공

동선 또한 특별하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로마 시대의 흔적에서 중세의 기억을 거쳐 현대미술 전시장으로 이어진다. 시간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층층이 포개지며, 건축은 서로 다른 시대를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한다. 종교미술과 현대미술도 같은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간다.

페터 춤토르는 “건축은 분위기를 만드는 예술”이라고 말했다. 콜룸바 미술관은 그의 철학이 가장 깊이 구현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화려한 형태보다 침묵과 빛, 재료와 시간의 흔적을 통해 사람의 감각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오늘날 많은 미술관은 상징적인 외관으로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기를 꿈꾼다. 그러나 콜룸바 미술관은 새로운 것을 과시하기보다 오래된 시간을 존중하는 길을 선택했다. 폐허를 품어낸 건축, 그리고 그 위를 천천히 걷게 만드는 공간은 우리에게 말한다. 건축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라, 시간이 남긴 기억을 가장 아름답게 보존하는 예술일 수 있다고.

이상훈, 아트컨시어지 대표. 부산일보DB 이상훈, 아트컨시어지 대표. 부산일보DB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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