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일기] 미끄럼 ‘방치’ 포장이 되지 않으려면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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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면 쭉 미끌린다’ ‘붉은색 미끄럼틀’ ‘비 오는 날 브레이크 밟아보세요, 진짜 욕 나옵니다.’

미끄럼방지포장을 지칭하는 오명과 냉소 섞인 시민들의 반응들이다. 이름은 ‘미끄럼 방지’이지만 ‘미끄럼 방치’ 포장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비가 오면 더욱 미끄럽다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도로 안전에 대한 위험과 불신이 쌓인 결과다. 사고를 막기 위해 설치한 도로가 시민들에게 조롱을 듣는 현실은 행정과 관리의 실패를 보여준다.

“이거 몇십 년을 써온건데요”. 취재 과정에서 들었던 부산 한 구청 건설과 직원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오래 써왔다면 그 자체로 문제가 없을까. 수십 년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랜 기간 사용해 왔음에도 유지·관리 체계가 비어있다는 의미로 들렸다.

미끄럼방지포장은 본래 사고를 줄이기 위해 설치하는 시설이지만 제때 점검·관리가 되지 않으면서 오히려 사고를 위험을 키우는 요소가 됐다.

지난 3월 부산 북구 만덕동에서는 노후된 미끄럼방지포장 내리막길에서 25인승 유치원 통학버스가 빗길에 미끄러져 사람이 다치는 일이 발생했다.

비슷한 사고는 되풀이 된다. 2024년 9월 서울 남산 둘레길에서도 미끄러짐 사고가 발생해 마을버스가 전복됐다. 당시 언론의 관심 속 미끄럼방지포장의 위험성이 공론화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작 핵심이었던 유지·관리 문제는 흐려졌다. 무관심 속 대책 없이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변화가 생겼다. <부산일보>가 부산 16개 구·군 관리 실태를 전수 취재하면서 변화가 생겼다. 대부분 지자체가 최초 설치 시점도 몰랐고, 관리 기준도 없어 사실상 방치되고 있었다. 보도 이후 국토교통부는 관련 지침(행정규칙) 개정에 착수했고 부산시도 처음으로 전수조사와 관리체계 마련에 나섰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나타났다. 보도 직후 부산의 한 미끄럼방지포장 시공업체 대표는 기자에게 “구청들이 공사 발주를 꺼린다”고 토로했다. 며칠 뒤 수도권 업체 대표도 “서울시와 구청, 사업소들이 국토부 지침이 개정될 때까지 신규 발주를 모두 미루고 있다”고 전했다.

관리 기준 부재가 낳은 문제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현장 혼선은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이 혼선을 장기화해서는 안 된다.

국토부는 오는 10월까지 관련 지침 개정을 완료하겠다고 약속했다. 관청이 사무 처리의 근거로 삼는 지침에 유지·관리 기준이 구체성있게 담겨야 현장의 변화도 시작될 수 있다. 점검 주기와 보수·재포장 기준, 관리 주체와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해 ‘설치 후 방치’가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시공업계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부실 시공을 막고 품질을 높여야 한다. 발주기관은 품질 확보를 위해 단순히 서류·사진 접수로 준공검사를 끝낼 것이 아니라 현장 확인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설치부터 유지관리까지 모든 과정의 검증이 강화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붉은색 포장을 새로 덧칠하는 게 아니다. 보여주기식 정비가 아니라 설치 이후 관리의 빈틈을 메우는 체계가 뒤따라야 한다.

그동안 미끄럼방지포장은 위험한 시설이 아니라, 위험하게 방치된 시설이다. 이번에야말로 ‘붉은색 미끄럼틀’이라는 오명을 벗겨야 한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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