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세상톡톡] '참교육'을 보니 참교육이 보고 싶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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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나도 아쉽지 않은 학교
쫓겨날까 두려운 사설 학원
그렇게 학교는 폐허로 변해

권리 앞세운 학생 인권조례
학습권·교권 침해엔 모르쇠
결국 반작용 필요성 불러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넷플릭스 시리즈 ‘참교육’을 시청하다 고등학교 시절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오후 수업이 끝난 직후 담임 선생님은 60여 명 우리 반 학생 전원을 대기하라고 한 뒤 몽둥이를 들고 교실로 들어왔다. 일순간 공포에 사로잡힌 교실에 적막만이 흐르고 있을 때 선생님은 급우 한 명을 교단으로 불러내 엎드리게 한 뒤 매질을 시작했다. 그 급우가 같은 반 친구들의 돈을 학교 밖에서 갈취했다는 게 이유였다. 평소 험악한 짓을 일삼고 친구를 갈취하기로 악명 높은 녀석이었기에 내심 쾌재를 부르던 그때, 선생님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들이 같은 반 녀석에게 당하는 동안 느거들은 뭘 하고 있었노, 이 비겁한 놈들아. 1번부터 전부 튀어 나와 엎드려.”

그렇게 시작된 선생님의 편달은 1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다섯 대씩 매질을 당하는 동안 교실엔 신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귀가 후 멍든 엉덩이를 본 가족들이 영문을 물었지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다음날 ‘마라톤 편달’의 부작용으로 선생님에게선 파스 냄새가 진동했다. 그 냄새가 옅어지는 만큼 우리 반에서는 급우가 급우를 괴롭히는 일도 사라져갔다.

다시 ‘참교육’ 시리즈에 눈을 돌리자 교권보호국 감독관의 목소리가 귀에 또렷이 들어온다. “말로 해서 들으면 말로, 말로 해서 안 들으면 때려서라도 가르친다.” 그 시절 학교에서는 교권보호국 감독관이 아니라 선생님이 그렇게 했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그 편달은 기억 속에 오랫동안 자리잡은 참교육의 모습 중 하나였다.

‘참교육’ 시리즈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다고 해서 거기에 나오는 모든 내용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 에피소드 대부분이 실제 있었던 일들을 토대로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학교와 교실이 저토록 무너진 실태 하나만큼은 제대로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학교와 교실이 붕괴된 것은 결국 선생님이 학생을 제대로 교육할 수 없는 환경 때문이라고밖에 달리 해석할 방도가 없다. 그럼 그 붕괴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였을까.

최근 인터넷에 떠도는 밈이 하나 있다. ‘사립초에 민원이 없는 이유’라는 제목의 밈이다. 사립초등학교에서는 학부모가 이상한 민원을 제기하면 공립초등학교로 전학하라고 권유하기 때문에 민원이 적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10 대 1 안팎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학교를 나가고 싶어하는 이들이 없으니 학교라는 존재가 절박하게 아쉬워지는 것이랄까.

우리 사회는 평준화라는 이름으로 언제부턴가 교육은 거의 공짜나 무임승차에 가까운 존재가 돼 버렸다. 학교에서 물의를 일으켜 전학을 가더라도 무임승차에 가까운 교육 환경에선 별다른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손해볼 것이 없어졌다. 족집게 과외로 유명한 사설학원에서 쫓겨나는 건 두려워도 학교는 더 이상 무서울 게 없는 존재가 됐으니 학교가 붕괴되지 않을 도리가 없어진 것이다. 거기엔 학교 교육 과정과는 점점 동떨어져 가는 대입 수능도 한몫하는 듯하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만으로는 홀로 공부해 수능을 치르기 어려운 처지에 이른 학생들과 그 과정을 지켜본 학부모들에게 과연 학교와 교실의 존재가 아쉬울까 싶다.

성적으로 학생을, 학교를 서열지우는 환경을 없애겠다고 실시된 고교 평준화는 이처럼 순기능에 비해 역기능이 더욱 커져 버렸다. 대학을 성적과 지역으로 ‘인서울’ 운운하며 갈라치기 하고 특정 과를 하늘처럼 떠받들며 서열화가 일상인 나라에서 고교 평준화만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이유를 알기 어렵다. 교육 평준화를 지향한다는 사회가 선생님을 정규직과 기간제라는 ‘등급’으로 나눠 온갖 부작용이 발생하는 현실을 방치하는 것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장면이다.

학생 인권조례만 해도 그렇다. 인권은 누구나 보호받아야 하고 과도한 체벌을 없애야 하는 것은 타당하다. 하지만 학생 인권조례는 그 도입 과정에서 권리는 잔뜩 부풀린 반면 그에 따른 책임과 의무는 거의 손을 놓고 말았다. 다른 학생들의 학습권을 방해하는 학생을 제재하는 것조차 인권 침해로 규정되는 판이니 침해당한 학습권이나 교권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도한 체벌과 차별 등 방치할 수 없는 교육현장의 구태가 있었기에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각종 조치들이 취해져 왔을 터이다. 하지만 그 반작용도 과도하게 무게 중심이 쏠릴 경우 새로운 반작용이 불가피한 것 또한 진실에 가까운 법칙이다. ‘참교육’ 시리즈가 보여준 교육 현장의 붕괴는 그러한 새 반작용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곧이어 깊이 새겨야 할 묵직한 대사가 흐른다.

“교사가 학생을 무서워하면 가르칠 수 없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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