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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 펠릭스

아라비아 펠릭스

사우디 서쪽면을 따라 위치한 홍해는 고대부터 인도와 이집트, 지중해 일대의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곳이다. 특히나 인도양에서 홍해로 접어드는 초입 동편에 위치한 예멘의 서쪽 지역은 고대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부유한 장소였다. 로마인들이 이 지역을 ‘아라비아 펠릭스(풍요의 아라비아)’라 부를 정도였으니 풍요로움이 넘치던 곳이었을 터이다.아라비아 펠릭스의 중심은 기원전 10세기부터 번성한 사바 왕국이었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시바 여왕’은 사바 왕국 통치자의 이름이다. 기원전 8세기에 당시 세계 최대 규모 댐이었던 마리브 댐을 건설해 오아시스 농업을 했을 정도로 풍요로운 나라였다.사바 뿐만이 아니라 이 지역에는 마인, 카타반, 하드라마우트라는 왕국들도 존재했다. 이들 왕국은 지중해 일대를 대상으로 고가 유향과 몰약 무역에 종사했다. 세계사적으로 연구가 활발하지 않아 사료가 적지만 이들 왕국도 아라비아 펠릭스를 이룬 주역임은 분명하다. 해당 지역은 3세기께 급부상한 힘야르 왕국이 패권을 차지하며 주인이 바뀌었지만 힘야르 왕국도 6세기 에티오피아의 악숨 왕국에 정복될 때까지 번영을 누렸다.예멘 서쪽 지역이 고대에 번영을 누렸던 것과는 달리 현대 사우디의 서쪽 지역에 해당하는 홍해 인접지는 고대에 홍해와 지중해를 연결하는 무역 거점들은 있었으나 사바나 힘야르 왕국 같은 농업 문명은 형성되지 않았다. 오히려 현대 사우디의 서남부 지역은 힘야르 왕국 같은 고대 예멘의 영향권 아래에 놓여 있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기독교와 이슬람교, 유대교 등이 왕국의 부침에 따라 혼재했던 해당 지역에서는 힘야르를 정복한 악숨 왕국이 570년께 메카를 향해 쳐들어갔다는 전승이 내려온다. 결국 실패로 끝난 것으로 알려진 이 공격이 고대 예멘 세력이 고대 사우디와 무력 충돌한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최근 예멘 후티 반군과 사우디 사이의 무력 충돌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아라비아 반도를 놓고 고대 아라비아의 전쟁이 재현됐다는 얘기들이 나오는 데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다. 고대와 달라진 것은 풍요의 무게 추가 예멘보다는 사우디에 더 기울어 있고 송유관을 비롯한 사우디의 시설에 전 세계의 관심이 쏠려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석유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하는 대한민국에게 아라비아 반도는 여전히 아라비아 펠릭스인 듯하다.

부산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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