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북항재개발 활성화 위한 추진 주체 단일화 필요하다
2000년 말 당시 안상영 부산시장은 부산의 나아갈 방향이 한국에 또 다른 수도를 하나 만드는 것에 필적하는 ‘해양수도 부산’이 돼야 한다며 수도 선포식을 가졌다. 이에 따라 부산지역에서는 정부 예산 협의 과정에서부터 부산만의 차별성을 강조하겠다는 수준을 넘어 아예 해양수산부의 부산 이전을 촉구하자는 시민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로부터 25년이 지난 지금, 법적 의미의 해양수도는 언감생심이 돼 버렸고 아직도 해양 자치권조차 제대로 확보하지 못한 게 부산의 현주소가 됐다. 해양수도 부산 선포식이 있은 지 25년이 되는 올해 때마침 조기대선 바람까지 불기 시작하자 부산지역에서는 올해를 진정한 해양수도 부산의 해로 만들 수 있는 기회로 삼자는 움직임이 들끓는 중이다. 〈부산일보〉 보도에 따르면 부산지역 시민단체와 학계, 법조계, 노동계, 해양업계는 17일 부산시의회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해양수도 부산’ 선포 25주년을 맞아 국제해양중심 도시 부산 구축을 촉구했다. 이들은 컨테이너 화물 처리 세계 7위, 환적 물동량 처리 세계 2위의 세계적인 허브항이 부산항의 위상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아직도 핵심적인 과제들이 진척되지 못함으로써 부산이 국제해양중심 도시로 도약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이들은 최우선 해결 과제로 북항재개발 추진 주체의 단일화 문제를 꼽았다. 해수부와 부산항만공사, 부산시로 추진 주체가 나눠짐으로써 사업 진척이 답보를 거듭하기 일쑤였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이다. 전담 특수목적법인 설립 등 단일 추진 주체 확립 필요성까지도 덧붙였다. 이 외에도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그동안 해양수도 부산 실현을 위해 숱하게 제시돼 온 과제들이 다시금 소환됐다. 해양수도 위상과 기능 제고를 위한 관련법 제정, 해양정책 관련 해양자치권 확보, 부산해사전문법원 설치, 북극항로 개척 극지 관문도시 구축, 영도 해양수산클러스터의 부산해양단지 재정립을 통한 클러스터 기능 활성화, 공동어시장 현대화를 통한 국제적 수산물 유통 플랫폼 추진 등이 그것이다. 망라된 정책 과제들을 보노라면 선포식 25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이뤄지지 못한 해양수도 부산의 꿈이 얼마나 켜켜이 좌절돼 왔는지를 돌이켜 보는 듯해 가슴이 아플 정도다. 지역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반영되는 데에는 여러 경로가 있으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무래도 선거 공약에 반영하는 것일 터이다. 공약이 정책이 되고 정책이 현실이 되는 선순환이야말로 이상적인 정책 실현이기도 하다. 때마침 오는 6월 3일에는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열린다. 각 후보 캠프들마다 본격 레이스 돌입 직전 지역 공약을 만들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지금이 공약 반영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으로 보인다. 이날 분출된 해양수도 부산 구축을 위한 열망이 각 후보들의 공약 수첩에 빼곡히 들어찰 수 있기를 기대한다.
[사설] 의대 증원 원점 지역·필수의료 개혁까지 멈추면 안 돼
정부가 2026학년도 의대 모집 인원을 증원 이전 규모인 3058명으로 확정했다.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려 총 5058명으로 증원키로 한 계획을 1년여 만에 원점화한 것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7일 ‘2026학년도 의과대학 모집인원 조정 방향’ 브리핑에서 이같이 밝혔다. 정부가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의대생들의 3월 내 전원 복귀는 이뤄지지 않았지만 의대 교육 정상화가 시급하다는 대학 총장과 의대 학장단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일부 의대에선 학생들이 ‘등록 후 투쟁’ 방침을 밝히며 수업 거부에 나서 실질 복귀율은 40개 의대 전체 학년 평균 25.9%에 그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국민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의대 증원 정책을 포기한 것은 의대 교육 파행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특히 의대생들에 대한 정부의 신뢰를 회복해 수업 참여율을 높이겠다는 고육지책으로도 읽힌다. 의대생들은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한 정부와 대학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현재 가장 시급한 현안은 미래 의사를 양성하는 의대 교육의 정상화다. 교육 붕괴로 인한 불편은 고스란히 국민들의 몫이다. 이제 수업 일수를 채우지 못하거나 수업을 거부하는 의대생에 대해서는 학칙에 따라 유급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각 대학과 의료계, 정부도 제대로 된 의대 수업과 실습이 이뤄지도록 최대한 힘을 모아야 한다. 정부는 이번 발표로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동시에 상실했다.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대국민 사기극”이라며 “중증질환자들이 참고 견딘 고통이 물거품이 됐다”라고 반발했다. 시민·노동단체도 의대 증원 원점화로 의료 개혁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와 의료계 갈등으로 지난 1년여 동안 국민들은 큰 불편을 감수했다. 지역에서는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 ‘뺑뺑이’를 도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시기를 놓쳐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사연들도 이어졌다. 의대생들은 이런 점을 감안해 교육 정상화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전공의들도 하루빨리 현장으로 복귀해야 마땅하다. 당초 의대 증원은 지역의료와 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의료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이번 증원 백지화가 의료 개혁 포기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의료계는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 수를 늘리는 것이 의료 개혁의 답이 아니라고 그동안 강조했다. 이제 정부가 한발 양보한 모양새를 취한 만큼 의료계도 서둘러 전향적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국민의 극심한 의료 불편과 고통을 외면한 채 어물쩍 과거로 회귀하겠다는 생각은 어불성설이다. 의료계는 직역 이기주의라는 국민 비난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은 비정상인 현재의 지역·필수 의료를 정상화할 방안을 정부와 함께 적극 모색하는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도 중단 없는 의료 개혁 추진으로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사설] 사천 우주항공청 핵심 기능 뺀 껍데기만 남길 텐가
지난해 5월 우주항공청이 경남 사천시에 둥지를 틀었다. ‘한국판 나사(NASA·미국항공우주국)’로 불리는 우주항공청은 대한민국을 우주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시킬 우주항공 생태계의 핵심 구심점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하지만 개청 1년을 앞둔 현재, 우주항공청의 정체성을 무시하는 정부와 정치권 등의 도 넘은 처사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정부는 우주항공청 개청일인 5월 27일을 국가기념일인 ‘우주항공의 날’로 지정했다. 하지만 다음 달 열릴 첫 기념식을 우주항공청 본사가 있는 사천이 아닌 경기도 과천 국립 과천과학관에서 개최한다고 한다. 사천은 물론 경남 도민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설립된 우주항공청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우주항공청의 핵심 기능인 연구개발 본부를 사천이 아닌 대전에 둬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법안도 국회 계류 중인 상태다.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 22명은 지난해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우주항공청에 우주항공기술의 연구개발 및 우주항공산업의 육성·진흥 관련 사업을 담당하는 본부를 둔다’는 기존 조항을 ‘연구개발 관련 사업 본부의 소재지는 대전광역시로 한다’로 바꾸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연구개발 기능을 대전으로 빼간다는 것은 사천 우주항공청을 빈 껍데기로 만들겠다는 의미다. 이는 대한민국 국익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 사천 시민 등 경남 도민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천 지역 시민단체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히 사천시와 경남도는 글로벌 우주항공도시로의 도약을 목표로 우주항공청을 중심으로 인근 지역을 아우르는 ‘우주항공복합도시’ 조성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주항공 강국 도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관련 특별법의 조속한 통과에도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와 일부 정치권이 우주항공청의 백년대계를 훼손하는 행태를 이어가는 것은 경남은 물론 동남권 전체를 무시하는 것이다. 우주항공청은 남부권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무척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사천 등을 우주항공산업의 메카로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미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다. 개청 1년을 앞둔 지금은 우주항공청이 제대로 성장하도록 범 정부적 지원을 쏟아부을 때다. 그런데도 우주항공청의 핵심 기능을 다른 광역지자체로 빼가려는 시도가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것이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조기 대선을 앞둔 지금, 혹여 정치적 논리에 편승해 국가 미래 성장 동력인 우주항공 생태계를 훼손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할 수 없다. 행정 기능만 남겨진 우주항공청으론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수도권 중심주의 사고에 젖은 비상식적 행태들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한다.
[밀물썰물] 우주 쓰레기 어쩔 거야
지난해 연말 케냐 수도 나이로비 남동쪽 무쿠쿠 마을에 지름 약 2.5m, 무게 500㎏가량의 로켓 파편으로 추정되는 금속 물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이는 우주로 발사된 로켓에서 분리된 링으로 만약 주택이나 농장에 떨어졌다면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이처럼 임무를 마친 로켓의 잔해나 수명을 다한 인공위성을 우주 쓰레기라고 한다. 물론 위성끼리 부딪치며 생긴 파편도 포함된다.1957년 구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한 이후 수많은 우주 비행체가 우주로 향했다. 지금까지 인류가 지구 궤도로 쏘아 올린 위성은 2만여 개로 추산된다. 이 중 현재 작동 중인 위성은 1만 개가 조금 넘는다. 우주 쓰레기는 이렇게 70여 년에 걸친 인류의 우주 탐험이 남긴 부산물이다. 통상 우주 쓰레기는 다른 물체와 충돌할 때 초속 10㎞, 더 빠른 경우 초속 15㎞에 달하는 속도를 갖는다. 그렇기에 10㎝ 크기의 우주 쓰레기로도 인공위성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닌다.유럽우주국(ESA)이 최근 발표한 ‘우주 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3월 기준 지구 궤도에는 지름 10㎝ 이상의 우주 쓰레기가 약 4만 개에 달한다. 2020년에는 2만여 개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이는 민간 기업까지 우주 개발 경쟁에 가세한 데 따른 결과다. 전문가들은 이들 우주 쓰레기가 지구 궤도의 고속도로 격인 지구 저궤도에 몰려 우주 교통의 장애물로 작용하는 점이 치명적이라고 지적한다. ESA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에만 약 1200개의 우주 쓰레기가 대기권에 재진입했다. 일반적으로 지상에서 300~2000㎞ 고도의 영역을 지구 저궤도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인공위성이 이 구간에 머무르기 때문에 충돌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위성끼리 충돌하면 어떡하지’라는 우려가 기우가 아니라 어느새 현실이 된 셈이다.일각에서는 “광활한 우주에 쓰레기 몇 개쯤 떠다니는 게 무슨 대수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 쓰레기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2023년 1월에는 수명을 다한 미국 위성의 추락 예상 지점에 한반도가 포함되면서 정부가 우주 위험 경계경보를 발령한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주 쓰레기 급증으로 인해 한국이 쏘아 올린 위성들도 각종 파편과 충돌 위기를 겪는 등 아찔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 환경과 지속가능성은 지구에서만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 우주에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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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
정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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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일의 곰곰 생각] 고령 운전자를 대하는 불편한 시선
‘또 고령자 역주행 사고… 면허 반납은 고작 2.4%.’ 지난해 서울시청역 역주행 사고 이후 고령자 운전을 대하는 사회적 시선은 악화일로다. 관련 뉴스 제목이 부정적인 뉘앙스 일색인 것에서 단박에 드러난다. 지자체들도 면허를 돌려받지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앞다퉈 현금 보상을 내걸었다. 하지만 반납률은 해마다 2%를 겨우 넘길 정도로 저조하다. 푼돈 받자고 이동권과 생계가 걸려 있는 운전대를 놓을 수는 없다는 노년 세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결과적으로 ‘장롱 면허’만 거둬들이는 실정이라 정책 효과는 미미하다. ‘인지 능력과 반응 속도 저하.’ 노인 운전이 위험하다는 근거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이 사회적 통념만으로 노인을 도로의 사고뭉치로 몰아가는 건 곤란하다. 우선 노인 교통사고 통계를 제대로 읽어 낼 필요가 있다. 65세 이상 운전자의 교통사고 건수는 2012년 1만 5190건에서 2023년 3만 9614건으로 11년 새 2.6배 늘었다. 전체 사고 중 고령자 비중도 같은 기간 6.8%에서 20%로 늘었다. 이 증가세가 면허 반납론의 근거로 곧잘 인용된다. 이 수치 비교는 고령화로 인한 노인 인구 비중의 변화를 감안해서 볼 필요가 있다. 같은 기간 65세 이상 인구는 576만 6729명에서 943만 5816명으로 63.6%나 증가했다. 노인 인구 비중도 11.5%에 18.2%로 커졌다. 65세 이상 운전자가 늘면 사고 건수도 비례하기 마련이다. 인구 비중의 변화 요인을 뺀 채 사고 수치만 시계열 비교하면 고령자 사고가 급증한 것으로 인식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연령별 면허 소지자 100명 당 사고 건수를 비교해야 객관적인데, 이 통계를 보면 20세 이하가 매년 1위다. 그 뒤는 60대, 50대, 20대, 40대, 30대 순이다. 연령만으로 운전 적합도를 평가하기 어려운 대목이 택시 기사 고령화 추세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23년 말 전국 개인택시 기사(16만 4334명) 중 60세 이상이 12만 4475명으로 75.7%다. 65세 이상은 51.4%인데, 부산처럼 고령화 속도가 빠른 곳은 60%가 넘었다. 고령 기사들이 핸들을 놓으면 당장 택시가 멈춘다. 개인마다 다른 건강 연령을 감안하지 않은 채 나이만을 기준으로 차량 운행 능력을 따지면 합리적인 해결책을 놓치게 된다. “운전대를 놓으면 노화가 액셀을 밟는다.” 일본의 노인 정신의학 및 임상심리학 전문의 와다 히데키 ‘마음과 몸 클리닉’ 원장은 운전을 할 수 있다면 면허를 반납해선 안 된다고 충고한다. 운전을 그만두면 외출 기회가 줄고 집에만 머물게 되면서 신체와 정신 기능이 쇠퇴할 수 있다는 이유다. 일본에서도 시행 중인 면허 반납 제도를 노인 건강과 연계한 연구 결과가 근거다. 일본 쓰쿠바대학 연구팀이 건강한 65세 이상 2800명을 6년 간 추적한 결과를 2019년 발표했는데, 면허를 반납한 뒤 돌봄 서비스를 받게 된 비율이 현저히 높았다. 자가 운전을 그만두고 집에만 머문 경우는 계속 운전대를 잡은 경우에 비해 2.1배 높았고, 버스와 자전거를 이용한 그룹은 1.6배 높았다. 연구진은 외출 대신 집에서 머무는 시간의 증가와 신체, 정신 퇴화에 상관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미국노인병학회지에 2016년 실린 ‘고령자 운전 중단과 건강 추이’ 연구도 같은 시사점을 준다. 운전 중단과 우울증의 연관성을 조사했더니 우울증 발병률이 두 배 높아졌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운전 중단에 따른 부정적 영향을 완화하려면 이동성과 사회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지난달 발간한 ‘고령 운전자 교통 안전 국내외 정책과 입법 현황’ 보고서에서 고령자의 이동성을 담보하지 않는 면허 반납, 운전 중지 정책은 사회적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행 사고가 늘거나 건강과 삶의 질 저하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10년의 면허 갱신 주기를 65세 이상은 5년으로, 75세 이상은 3년으로 단축, 강화했다. 75세 이상은 인지능력 검사와 교통안전교육까지 의무화해 부적합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 고령자 안전 운전을 위한 정책과 제도는 앞으로 더 심화 발전돼야 한다. 예컨대 앞서 일본과 미국 연구처럼 노인 세대의 이동성과 건강 유지의 상관성을 조사해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도출해 낼 필요가 있다. 고령자에 특화된 인지능력 검사를 추가하거나 유럽연합에서 의무화된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등 비상시 오작동을 예방하는 기술 도입도 검토해야 한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고령 운전자를 대하는 불편한 시선을 거두는 일이다. ‘신체 연령’이 젊은 노인의 운전을 막는 게 능사가 아니다. 건강한 노후와 안전한 이동의 균형점 모색은 초고령화 시대가 우리 사회에 던진 공동의 숙제다.
[김진성의 타임 아웃] 피치클락
올해 한국프로야구(KBO) 경기 운영에서의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는 ‘피치클락’ 규정이 정식 도입됐다는 것입니다. 투수는 주자 없을 때 20초, 있을 때 25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합니다. 포수는 잔여시간 9초 이전에 포수석에 자리 잡아야 하고, 타자는 8초가 되기 전에 타격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이를 어길 시 투수에게는 볼, 타자에게는 스트라이크가 선언됩니다. 경기 지연 시간 단축을 통한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선보이기 위함이라는 게 KBO의 설명입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 비해 피치클락 시간이 길고, 주자 견제 등 투수판 이탈 횟수 제한 규정이 없다는 등의 여러 문제가 지적되고 있지만, 프로야구를 보는 또다른 재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피치클락의 도입으로 올해 프로야구 경기 시간이 1998년 이후 가장 짧다고 합니다. 개막 이후 60경기를 치른 지난 7일 기준으로 볼 때 KBO리그 한 경기 평균 시간은 3시간 1분입니다. 지난해 3시간 13분보다 12분이 줄었습니다. 프로야구가 경기 시간을 줄여 박진감을 살렸다면 프로축구에서는 반대로 경기 시간을 늘려 박진감을 높였습니다. 전·후반 90분 경기를 펼치는 축구에서 어떻게 시간이 늘어나느냐구요? 바로 추가시간입니다. 세계 최고 리그 중 하나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에서는 한 경기 시간이 100분이 넘습니다. 영국의 한 매체가 공개한 2023-2024시즌 EPL팀들의 경기당 평균 시간은 101분 39초로, 추가시간만 보면 11분 39초를 더 뛰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득점이나 오프사이드 등 애매한 판정을 비디오판독(VAR)으로 파악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선수들의 각종 시간 지연 행위에 의해 소요되는 시간을 추가시간에 엄격히 포함시키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해 ‘침대축구’를 하더라도 그 시간을 추가시간에 포함시켜 선수들의 시간 지연 행위를 막으려는 의도입니다. 스포츠계에서 박진감을 높이는 만큼이나 중요하게 인식되는 것은 공정성입니다. KBO리그는 2024년부터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을 도입했습니다. 프로그램이 투수가 던진 공의 스트라이크 존 통과 여부를 판단해 심판에게 전달하면 심판이 콜하는 방식인데요. 공정성 강화 차원입니다. 그만큼 판정 시비가 줄어드는 것이지요.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는 VAR를 2016년 클럽 월드컵에서 공식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세계 최고의 리그에서도 점차 VAR를 도입해 공정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스포츠는 시대를 거듭할수록 이처럼 박진감과 공정성을 위해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게 관중들을 위해서입니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요? 정치, 경제, 사회 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국민들은 스포츠와 비슷하다고 느낄까요? 박진감은 모르겠지만, 공정성은 글쎄요.
지난해 연말 케냐 수도 나이로비 남동쪽 무쿠쿠 마을에 지름 약 2.5m, 무게 500㎏가량의 로켓 파편으로 추정되는 금속 물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이는 우주로 발사된 로켓에서 분리된 링으로 만약 주택이나 농장에 떨어졌다면 참사로 이어질 뻔했다. 이처럼 임무를 마친 로켓의 잔해나 수명을 다한 인공위성을 우주 쓰레기라고 한다. 물론 위성끼리 부딪치며 생긴 파편도 포함된다. 1957년 구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발사한 이후 수많은 우주 비행체가 우주로 향했다. 지금까지 인류가 지구 궤도로 쏘아 올린 위성은 2만여 개로 추산된다. 이 중 현재 작동 중인 위성은 1만 개가 조금 넘는다. 우주 쓰레기는 이렇게 70여 년에 걸친 인류의 우주 탐험이 남긴 부산물이다. 통상 우주 쓰레기는 다른 물체와 충돌할 때 초속 10㎞, 더 빠른 경우 초속 15㎞에 달하는 속도를 갖는다. 그렇기에 10㎝ 크기의 우주 쓰레기로도 인공위성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지닌다. 유럽우주국(ESA)이 최근 발표한 ‘우주 환경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3월 기준 지구 궤도에는 지름 10㎝ 이상의 우주 쓰레기가 약 4만 개에 달한다. 2020년에는 2만여 개 수준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 수가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이는 민간 기업까지 우주 개발 경쟁에 가세한 데 따른 결과다. 전문가들은 이들 우주 쓰레기가 지구 궤도의 고속도로 격인 지구 저궤도에 몰려 우주 교통의 장애물로 작용하는 점이 치명적이라고 지적한다. ESA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에만 약 1200개의 우주 쓰레기가 대기권에 재진입했다. 일반적으로 지상에서 300~2000㎞ 고도의 영역을 지구 저궤도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인공위성이 이 구간에 머무르기 때문에 충돌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위성끼리 충돌하면 어떡하지’라는 우려가 기우가 아니라 어느새 현실이 된 셈이다. 일각에서는 “광활한 우주에 쓰레기 몇 개쯤 떠다니는 게 무슨 대수냐”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주 쓰레기 문제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실제로 2023년 1월에는 수명을 다한 미국 위성의 추락 예상 지점에 한반도가 포함되면서 정부가 우주 위험 경계경보를 발령한 바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주 쓰레기 급증으로 인해 한국이 쏘아 올린 위성들도 각종 파편과 충돌 위기를 겪는 등 아찔한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제 환경과 지속가능성은 지구에서만 고민할 문제가 아니라 우주에서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
[서상호의 오픈 스페이스] "이번에 내리실 역은 옳은 쪽입니다"
비상계엄 선포부터 탄핵 선고가 나오기까지 122일 동안 시민들은 광장으로 모였다. 그 시간을 돌이켜 볼 때 특히 눈에 띈 것은 MZ세대들의 등장이다. 이들은 기존의 시위 형식에서 볼 수 없었던 자신들만의 문화를 집회에 녹여냈다. 이들이 참여한 집회 현장은 K팝 콘서트를 방불케 했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에스파의 ‘위플래시’, 블랙핑크 로제의 ‘아파트’ 등을 부르며 친숙하고 활기찬 분위기를 만들었다. MZ세대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수제 응원봉을 들고나왔다. 당시 이같은 K집회 현장을 지켜본 외신 반응은 뜨거웠다. 로이터통신은 “시민들이 시위에 들고나온 응원봉이 기존의 촛불을 대체하며 비폭력과 세대 간 연대의 상징으로 떠올랐다”고 전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차세대형 민주주의의 모습”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런 분위기는 젊은 세대의 정치적 무관심을 일깨웠으며, 적극적인 시민 참여를 끌어냈다.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문화적 코드와 정치적 의사 표현을 절묘하게 접목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10대 강국이다. 분단의 악조건에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에서 상식적일 때 국가 위상이 서고 그 안에서 기본적으로 주권자인 국민의 수준과 위상도 반영된다. 1987년 민주주의의 근간을 보여준 민주항쟁, 1998년 IMF를 이겨낸 국민의 저력, 2002년 월드컵의 함성, 2010년 촛불로 이뤄낸 민주주의 등을 보면 그러하다. 특히 탄핵 정국에서 MZ세대들이 응원봉으로 이뤄낸 ‘빛의 혁명’은 386세대와 MZ세대가 공유하는 감동을 전했다. 우리 국민의 커먼센스(Common Sense)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켜내는지를 경험할 수 있었다. 그 현장에는 기득권자가 아닌 시민이 있었다. 도망가지 않았다. 시민이 하나가 되어 지금의 대한민국을 지켜내고 있다. 이제 이 나라의 미래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공동의 것을 공동의 것으로 만드는 사회인 민주공화국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세계사 최초로 무혈 시민혁명을 이룬 민족이자 민주주의 선도 국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미 전 세계는 존경의 시선으로 K컬처, K푸드를 넘어 K민주주의를 부러워하고 있다. 탄핵 정국을 돌이켜 보면 이미 경기는 끝났는데, VCR 판독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누가 봐도 아웃인데 심판들의 이견으로 주심은 판정을 못 하고 관중들은 귀가하지 못하는 꼴이었다. 그 시간은 역대급으로 비현실적이었다. 관중은 야유와 함성으로 경기장을 박살 낼 기세여서 혼란스러웠다. 결정이 나야 모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서 본연의 일을 한다. 그렇게 122일 동안 헌재의 결정을 기다렸다. 마지막까지 온갖 낭설들과 소위 정치 1단이라는 자들의 예측 아닌 추측들은 우리의 삶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202504041122’라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시간을 맞이했다. “탄핵 사건이므로 선고 시간을 확인하겠습니다. 지금 시각은 오전 11시 22분입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 22분 동안 지난했던 겨울의 시간에서 나오는 순간이었다. ‘한국의 마그나 카르타’라며 결정문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다. 결정문 중에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으므로, 이는 피청구인의 법 위반에 대한 중대성 판단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란 문장과 ‘국가 안전보장과 국토방위를 사명으로 하여 나라를 위해 봉사하여 온 군인들이 일반 시민들과 대치하도록 만들었습니다’란 문장이 필자의 마음속으로 녹아 들어왔다. 장기간의 평의와 숙고를 통해 그 결정문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이해하기 쉽고 유연한 논리로 작성함으로써 당일 투입된 군인들이 지고 있을 마음의 짐을 그나마 내려 주었다. 이런 것이 법의 힘이다. 국민 대부분은 그토록 장고의 시간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이 결정문을 통해 다시 봄을 기대하게 되었고 그렇게 대한민국은 2025년 봄을 맞이했다. 2025년 4월 4일 청명(淸明)은 세상을 맑고(淸) 밝게(明) 만들기에 좋은 날인 것이다. 지인한테서 들은 이야기다. 탄핵 현장에서는 매주 토요일, 때로는 예정 없이 긴급하게 집회가 열렸다. 대형 스피커, 무대 설비, 행진 트럭 등을 동원해 한 번 집회를 열 때마다 2억 원 이상의 돈이 지출된다고 한다. 1700여 시민단체가 연대 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 비용은 또다시 시민의 모금과 후원으로 충당해 낸다고 한다. 모든 부채와 책임은 국민의 몫이다. 서글프다. 생활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른 채 오르고, 서민들의 지갑은 갈수록 얇아진다. 이제 시대가 부여한 시간이다. 구조적 모순은 반드시 바로 잡고 좌우로 구분 짓는 극단적 대립, 양비론적 시선들은 이번 참에 하차하시기를! 마침 지하철에서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번에 내리실 역은 옳은 쪽입니다.”
[공감] '폭싹 속았수다'와 앙드레 고르의 편지
아내와 함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았다. 우리 인생의 서사를 사계절로 구성한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보며, 아내와 나는 약속한 듯 오열했다. 중환자실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떠나가는 남편 관식을 보며 아내 애순은 눈물을 멈추지 못했고, 어릴 때 한동네에서 자라 부부가 된 우리는 드라마 속 사랑의 역사에 공감하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평소 아내는 내가 자신보다 하루라도 더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기타를 치며 김광석의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부르면, 언젠가 우리도 저 노랫말의 이야기를 살아가는 나이가 올 거라며 쓴웃음을 지었는데, 어느새 그 나이가 되었다. 드라마가 끝나고, 얼마나 울었는지 마른 눈물이 소금 길을 만들어 세안을 다시 해야 했다. 애순은 관식을 먼저 보냈지만, 당신은 건강 관리 잘해서 나를 먼저 보내줘야 한다는 당부를 강조하는 아내를 토닥이며 잠자리에 들었다. 쉬 잠이 오지 않았다. 뒤척이다 18년 전에 읽은 책을 떠올렸다. 앙드레 고르의 〈D에게 보낸 편지〉를 읽을 때 나는 40대의 나이였다. ‘어느 사랑의 역사’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이자 생태주의 이론가인 앙드레 고르가 그의 아내 도린에게 쓴 편지 모음이었다. 이 책은 고르가 아내 도린에게 쓴 사랑의 고백이자 유서였다. “세상은 텅 비었고, 나는 더 살지 않으려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고.” 불치병을 앓는 아내를 간호하다 아내의 생이 다함을 예감한 고르는 아내와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 경찰에게 알려달라는 쪽지를 문에 붙여 놓고. 그때 부부의 나이 여든넷과 여든셋이었다. 앙드레 고르는 일자리 나누기와 최저임금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생태주의를 정립한 이론가이다. 사르트르는 그를 “유럽에서 가장 날카로운 지성”이라고 평가했다. 고르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아내에게 편지를 쓴 이유가 궁금했다. “나는 살면서 많은 책과 연구를 내놓았어요. 그것들이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겠죠. 하지만 사람들은 도린에 대해서는 무엇을 알까요? 나는 아내를 알려야 했어요.” 고르는 아내를 기록하고자 했다. 알랭 바디우는 〈사랑 예찬〉에서 우연을 영원으로 기록하여 고정하는 것이 사랑이라 하지 않았던가. 당신과의 만남은 우연이며 내가 좋아하는 당신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은 기적이다. 우연이 기적을 거쳐 운명에 이르는 과정이 사랑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가 나의 존재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이며, 혼자서는 절대 겪지 않을 ‘차이의 진리’를 온몸으로 경험하는 실존적 위기이다. 특히 결혼과 함께하는 사랑은 긴긴 시련의 여정일 수밖에 없다.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애순과 관식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겪었던 시련과 슬픔에 공감하는 것은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 모두 그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련을 회피하고 사랑의 달콤한 과실만 취하려는 이들을 알랭 바디우는 비판했다. 사랑은 모험의 여정이며, 그 시련의 여정을 공유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철학의 본령은 참된 삶의 가능성을 사유하는 데 있고, 문학의 본질은 그러한 삶의 가능성을 형상화하는 데 있다. ‘폭싹 속았수다’는 드라마, 즉 극문학이 왜 문학의 주요 갈래인지 말해주는 작품이었다. 누구나 사랑을 말하지만, 누구도 좀처럼 사랑을 믿지 않는 시대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고 앙드레 고르의 편지를 다시 읽는다. 인간은 결국 누군가의 기억 속에 현존한다. 내가 남긴 책과 논문이 내가 누구인지 말해주겠으나, 사람들은 훗날 아내를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아내에게 부치지 않는 편지를 쓰기로 했다.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곡진하게 기록할 사람은 나이기에.
[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말 달리자! 주페의 경기병 서곡
클래식 음악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레퍼토리가 정말 방대하다는 것이다. 텔레만이 쓴 곡만 3천 개를 헤아린다. 바흐, 하이든, 슈베르트도 1천 개 정도 되는 곡을 썼다. 비발디, 보케리니, 모차르트, 리스트, 글라주노프도 600곡이 넘는다. 그러니 매일 다른 곡을 열 곡씩 듣는다고 해도 죽을 때까지 얼마나 듣겠는가? 나 역시 꽤 긴 세월 동안 클래식 음악을 들었고, 방송과 강의를 하고 몇 권의 책까지 썼지만, 여전히 수시로 튀어나오는 미지의 곡 때문에 당황한다. 아, 이런 곡을 여태 몰랐다니, 하면서 머리를 치는 것이 다반사다. 1819년 4월 18일에 태어난 주페도 우리나라에선 과소평가되는 작곡가라 할 수 있다. 그는 빈 오페레타의 전성기를 연 작곡가다. 스팔라토(현재의 크로아티아 스플리트)에서 태어났으며, 파도바대학에서 법률을 배우다가 빈 음악원으로 가서 작곡을 공부했다. 1846년에 안데어 빈 극장에 지휘자로 취임했고 같은 해에 오페레타 ‘시인과 농부’를 발표하여 인기 작곡가로 떠올랐다. 이후 칼 극장의 지휘자로 일하면서 ‘아름다운 갈라테아’ ‘경기병’ ‘이사벨라’ ‘보카치오’ ‘빈의 아침, 오후, 저녁’ 등을 발표하여 빈 오페레타의 거장이 되었다. 약 30개의 오페레타와 180 여개의 무대작품을 발표한 후, 1895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오페레타와 그리 친하지 않은 한국에선 주페라고 하면 ‘시인과 농부 서곡’ ‘경기병 서곡’ 정도로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기병’은 1866년 빈에서 활동하던 시인인 카를로 코스타의 대본으로 만든 2막의 오페레타다. 경기병은 중무장한 기병이 아니라 가벼운 갑옷을 입은 채 말을 탄 기병을 의미한다. 특히 헝가리 마자르족의 후사르 경기병 부대는 유명했다. 그러나 이 오페레타에 나오는 경기병은 극 중에서 으스대는 발레단 사람들을 비꼬아서 부르는 말로 쓰였다. 서곡은 극 중에 나오는 5개의 멜로디를 엮어 3부 형식으로 만들었다. 관악기의 울림으로 시작하여 경기병의 말발굽 소리와 같은 행진곡이 나오는 부분이 1부, 용사들을 애도하는듯한 단조의 현악 선율이 멋진 2부, 다시 경쾌한 행진곡으로 마감하는 3부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1부에 나오는 관악 멜로디는 방송의 시그널 음악으로 애용되는 부분이라서 듣는 순간, “아, 이 곡이 그 곡이구나”하고 알아차릴 것이다. ‘경기병 서곡’을 들어보고 괜찮다는 생각이 들면, 주페가 작곡한 다른 서곡과 ‘내 사랑 플로렌티나’ 같은 아리아로 옮겨가 보자. 좀 더 뒤져보면 주페의 ‘레퀴엠 D단조’처럼 멋진 곡이 도사리고 있는 걸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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