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27 화요일
[사설] 부산 대학가 외국인 유학생 급증, 정주 방안 고심해야
국립부경대로 유학해 온 인도네시아 출신 누룰 아나스타샤 씨도 결국 탈부산 행렬에 합류하고 말았다. 산업·데이터공학 석사 학위를 받고 지역에 정착하려 했지만 취업 시장에서 고배를 마신 끝에 지난해 서울로 떠났다. 부산의 대학가는 K푸드, K팝 관련 학과 신설과 취업 연계를 내세워 해외에서 신입생을 유치하고 있다. 그 덕분에 사상 최대 규모로 외국인 학생이 몰려들고 있지만 이들이 졸업 후 취업하고 정착하기까지 다양한 문턱에 가로막히는 게 현실이다. 유학생 유치 규모를 늘리는 데서 나아가 지역 취업과 정착이라는 질적 성과를 거둘 때다. 그러려면 부산에 머물고 싶어도 떠나야 하는 이유를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다. 올해 부산 각 대학에 재학 중인 외국인은 2만 4328명에 이른다. 2022년 9871명 대비 146.5% 급증했다. 같은 기간 인천(98.2%), 대구(51.0%), 대전(48.2%), 서울(28.8%) 등 7대 특별·광역시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대학의 유치 활동과 상대적으로 저렴한 생활비, 쾌적한 환경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은 타당하지만, 큰 틀에서 부산이라는 도시의 매력이 높아진 결과로도 볼 수 있다. 지난해 부산연구원 조사에서는 유학생의 56%가 졸업 후 한국 체류를 희망했다. 그중 81.7%는 부산 정착을 원했다. 하지만 전공에 맞는 일자리와 현장 경험 기회의 부족, 한국어 장벽, 복잡한 체류 자격 변경 절차로 좌절하는 유학생이 늘고 있다. 지난달 경성대 유학생 파힘 씨는 ‘외국인 유학생 일경험 스토리 공모전’에서 대상인 교육부장관상을 받았다. 재학 중 현장실습으로 경험을 쌓다가 정규직 엔지니어로 전환된 사례다. 부산시와 대학은 이 모델을 확산하기 위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다. 국립한국해양대가 조선해양기자재조합과 취업박람회를 열어 일대일 면접 기회를 제공하는 등 각 대학은 취업지원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부산시도 지난 2월 통합 지원 허브를 열어 취업과 비자 상담, 한국어 교육 등을 제공하고 있다. 방향은 옳지만, 늘어난 취업 수요를 감당하는지 점검할 때다. 대학과 기업의 구인·구직 정보를 통합 제공하거나 면접과 채용이 상시로 이뤄지는 체계도 검토해야 한다. 외국인 유학생의 정주 여건을 마련하려면 우선 취업 여부, 근무 지역, 고용 유지 실태를 통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정확한 자료가 있어야 지원의 빈틈을 찾고 예산의 효과도 따질 수 있다. 비자 제도 개선도 지역 산업의 인력 수요를 근거로 추진해야 한다. 안정적인 주거와 의료·생활 상담도 정착의 필수 조건이다. 유학생을 대학의 충원 자원이나 기업의 저임금 인력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전공과 능력에 맞는 일을 하고 정당한 보상을 받으며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유학생이 부산을 선택한 데서 만족할 때는 지났다. 부산에서 배운 인재가 부산에서 미래를 설계하도록 만드는 것이 진정한 글로벌 도시의 역량이다.
[사설] 오세훈 무죄 빌미 대법원장 탄핵 카드 꺼내는 민주당
더불어민주당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항소심 무죄 판결을 계기로 사법부를 향한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김민석 대표는 2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오 시장의 명태균 관련 의혹에 대해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고, 당 내부에서는 국정조사 추진, 조희대 대법원장 탄핵, AI(인공지능) 판사 도입 주장까지 쏟아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역풍을 우려해 국정조사 등 단계적 대응에 무게를 뒀던 지도부 기류도 점차 달라지는 분위기다. 오 시장 무죄 판결 이후 지지층 반발이 거세지면서 조 대법원장 탄핵은 물론 ‘조작 기소 특검법’ 추진 가능성도 점쳐지는 상황이다. 범여권 강경파는 오 시장 항소심 판결 이후 민주당 지도부를 향한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종합 국정감사에서 오 시장의 무죄 선고를 계기로 사법부를 강력 비판하며 사법부 수장인 조 대법원장 탄핵론을 거듭 꺼내 들었다. 민주당 이성윤 의원은 “오 시장은 여론조사 결과를 전달받은 것이 사실인데 피고인을 몰랐다고 하면 끝인가. 조 대법원장 탄핵만이 답”이라고 말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원장도 “(조 대법원장 임기 만료일인) 6월 5일까지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이 판판이 당할 것”이라며 “탄핵을 추진해야 비로소 브레이크가 걸릴 것”이라고 가세했다. 마치 대법원장이 고등법원의 판결을 좌지우지한 것처럼 몰아가는 형국이다. 재판 과정에서 사실 인정과 증언 변화 등에 따라 1·2심 판결이 뒤집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모든 나라가 심급제를 운영하는 이유다. 오 시장의 유무죄 여부도 최종적으로는 대법원에서 가려질 것이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참석해 “대법원장은 사법행정의 대표이지만 하급심 재판에는 대법원장을 포함한 그 누구도 관여할 수 없고 관여하지도 않는다”라고 답했다. 각 재판부가 독자적으로 증거와 사실관계에 따라 유무죄를 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오 시장의 무죄 판결이 향후 정치 구도를 뒤흔들 중대 변수이기 때문에 정치권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사법부 판단에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민주당은 조 대법원장의 탄핵 사유가 차고 넘친다는 이유를 들어 공론화에 나서고 있다. 대법관 재제청 거부, 국감 증인 선서 거부, 업무추진비 부정 사용 등이 모두 탄핵 사유라고 주장한다. 여당 강경파에선 오 시장 무죄를 계기로 조 대법원장의 탄핵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그동안 민주당에선 삼권분립과 사법부 독립을 저해하는 발언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여권의 내홍을 수습하고 강성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노림수가 되어선 안 된다. 대법원장 탄핵 카드를 정쟁으로 활용하는데 골몰할 것이 아니라 민생과 경제에 대한 정책적 유능함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사설] 이억원 "산은 이전 않기로"… 도대체 정부 진의는 뭔가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국정감사에 출석해 ‘한국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국가 금융 정책을 총괄하는 금융 수장이 한 발언인 만큼 단순 말실수나 실언으로 그냥 넘길 수 없다. 발언 중 “국회에서도 하지 않기로 정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내용은 이 위원장 개인 생각만은 아니라는 의미로 읽힌다. 이 위원장은 산은 이전이 산업은행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임을 누구보다 명확히 인지하고 있는 인물이다. 추궁 끝에 이 위원장도 “국회에 권한이 있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 위원장은 자신이 언급한 ‘국회’가 누구인지, 그들이 어떤 논의를 한 것인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 위원장 발언으로 부산 시민들은 충격과 불안감에 휩싸였다. 금융당국 수장 발언이 갖는 파급력 때문이다. 부산 시민들이 오랜 기간 들인 노력이 허사가 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커졌다. 당장 지방분권균형발전 부산시민연대, 해양수도부산발전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이 “정부는 산은 부산 이전을 공식 철회한 것인지, 계속 추진할 것인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나섰다. 부산의 산은 이전 요구는 2008년 정부의 금융중심지 지정 추진 당시부터다. 산은이 옮겨와 파생·해양금융 자금줄 역할을 해야 한다는 기대감을 키워온 지 벌써 20년이다. 남부 지역을 해양수도권으로 육성하고, 국가 금융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핵심이다. 포기하거나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금융위 수장이 국감장에서 산은 이전 정책 폐기 발언을 했다는 점에서 정부의 산은 이전 의지가 의심받게 됐다. 정부가 당장 정확한 진위부터 밝혀야 한다. 이 위원장은 산은 이전 문제를 주관하는 책임자다. 그가 산은 이전이 무산됐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면 이재명 정부에서 산은 이전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뻔하다. 부산시와 부산 여야도 “일종의 해프닝이라고 본다”고 넘길 일이 아니다. 산은 이전이 폐기 위기에 처했을지 모르는데 중앙정부와의 마찰을 우려해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정부에 정확한 진의가 무엇인지 공식 질의서를 보내 산은 이전 의지를 재확인하고, 책임을 명확히 해야 한다. 얼마 전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책임감을 가지고 임기 동안 부산을 직할한다는 각오로 오겠다”고 했다. 산은 이전을 챙기지 않으면서 책임감을 얘기할 순 없다. 산은 이전은 부산 시민에게 균형발전과 지역 경제 활성화의 상징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부산에 해양수산부와 해운 대기업 이전이라는 마중물을 흘려보냈다. 그 마중물이 흐르도록 만들 실질적 정책이 산은 이전이다. 산은 이전이 무산되면 부산 금융중심지 조성도 불가능하다. 금융중심지 부산의 경쟁자는 싱가포르나 홍콩이다. 정책금융 역량조차 없다면 경쟁력은 어디서 만들겠는가. 이제 이 위원장의 발언이 실언이었음을 증명할 방법은 산은 이전 의지를 분명히 하는 것 말고는 없다.
'조기 낙엽'이 던진 숙제
가을은 단풍의 계절이다. 기온이 낮아지고 낮의 길이가 짧아지면서 노랗거나 붉게 물들었던 단풍은 어느 순간 떨어져 낙엽이 된다. 산림청이 지난달 발표한 ‘2026년 한반도 단풍절정 예측지도’에 따르면 올해 전국적인 단풍은 10월 하순부터 11월 초에 절정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단풍은 이미 9월 말 강원도에서 시작해 10월 중순 중부지방으로 확산된 데 이어 남부지방도 본격적인 시작 시기로 접어들었다.하지만 최근엔 단풍이 제대로 들기도 전에 나뭇잎이 갈색으로 변해 떨어지는 이른바 ‘조기 낙엽’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실제로 가로수 등 도심 내 각종 조경수들의 잎이 여름철부터 마른 데 이어 이미 지난 8~9월 도로변 등에 떨어진 낙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과 가뭄, 불규칙한 강수량, 병해충 증가 등이 거론된다.특히 부산과 울산, 경남은 올여름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을 겪었다. 지난 8월 1일 경남 양산의 기온이 41.6도까지 오르고 부산에서는 7월 19일부터 22일 연속 열대야가 이어졌다. 사람뿐만 아니라 도심 나무들도 혹독한 여름을 견뎌야 했다. 나무는 잎을 통해 광합성을 하고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지만 폭염과 가뭄으로 수분이 부족해지면 기공을 닫아 물 손실을 최소화한다. 그래도 버티기 어려울 땐 평년보다 빨리 잎을 떨어뜨린다. 조기 낙엽은 폭염 등에 지친 나무들이 생존을 위해 선택한 방어 반응인 셈이다.조기 낙엽은 세계적인 현상이다. 지구촌이 온난화 등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여름부터 잎이 갈변해 떨어지는 현상을 ‘가짜 가을’이라고 부른다. 크로아티아에서는 2024년 극심한 폭염과 가뭄으로 참나무 잎 노화가 평년보다 평균 54일 빨라졌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 더욱이 반복된 조기 낙엽 현상은 나무의 광합성 기간을 단축시켜 탄소 흡수 능력을 약화시킨다. 즉, 지구온난화가 나무를 지치게 하고, 지친 나무가 탄소를 덜 흡수하면서 수목류의 온난화 억제 능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이 반복될 우려가 커진다.극심해지는 기후변화로 나무의 생육과 개화 리듬이 무너지면 최악의 경우엔 단풍철이 유명무실해지거나 찬란한 봄철 벚꽃 장관을 제대로 즐길 수 없을지도 모른다. 나무가 일찍 잎을 떨어뜨리면 그늘이 줄어들고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조기 낙엽 현상을 완화할 한층 더 적극적인 도시 녹지 관리 정책이 필요하다.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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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추위까지 비즈니스에 활용한 '북극곰 피칭'
핀란드 북부 항구 도시인 오울루에서는 매년 2월 ‘북극곰 피칭(Polar Bear Pitching)’이라는 스타트업 행사가 열린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아반토(얼음 구멍) 대회’다. 대회는 투자를 유치하려는 스타트업 창업자 10명이 얼음물에 들어가 투자자에게 사업 아이템을 ‘피칭’(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창업자들은 얼음물에서 견딜 수 있는 시간만큼 사업을 설명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유명한 북극곰 수영대회에 ‘투자 유치대회’를 섞은 셈이다. 2014년 시작된 북극곰 피칭은 이제 일본, 인도 등에서 아반토 대회 예선이 열릴 정도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오울루는 왜 이 기괴하고도 흥미로운 행사를 만든 걸까. 북위 65도에 위치한 오울루는 북극권(북위 약 66도) 경계에서 근접한 북방 도시다.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은 기획 시리즈의 취재를 위해 오울루를 찾은 10월 중순, 오울루는 이미 겨울 날씨였다. 한반도 최북단인 북한 온성군보다 위도가 22도나 더 높은 오울루는 그러나 단지 추위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오울루는 1만 7000여 개 기업이 활동하는 북유럽 ICT 산업의 대표 도시로 더 유명하다. 세계적인 통신기업인 노키아의 통신장비 부문 연구·생산시설이 자리 잡고 있어 ‘노키아 도시’로 알려진 오울루는 경제 활력을 지키기 위해 다양하고 기발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통신, AI 관련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방위산업, 수소산업 등 산업 다각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비즈니스오울루 총괄 책임자(디렉터)인 유하 알라무르슬라는 이와 관련해 “인구가 적은 나라의 비수도권 도시는 스스로 더 많은 일을 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북극곰 피칭도 이런 노력의 결과로 탄생했다. 영하 10~30도의 혹한에서 열리는 이 행사는 투자 유치 설명회를 넘어 오락적인 요소까지 가미된 흥행 이벤트가 돼 세계 각국에 생중계된다. 벤처캐피털의 투자와 별개로 우승팀에게 1만 유로의 상금도 수여된다. 알라무르슬라 총괄은 “행사 주간에 글로벌 벤처캐피털과 스타트업 150~200곳이 모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일본, 인도, 스위스에서 별도의 지역 예선이 열렸고 올해는 일본, 인도, 덴마크, 캐나다에서 예선이 열린다. 북극곰 피칭은 오울루가 성장과 번영을 위해 기울이는 다양한 노력 가운데 하나다. 오울루는 1980년대 이후 무선통신 산업과 함께 ICT 도시로 변신했고, 이제 AI 열풍과 함께 두 번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도시 브랜드를 높이기 위해 각종 경제·문화 행사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고 실천으로 옮긴다. 전세계를 향해 도시 경쟁력을 ‘피칭’하는 오울루는 올해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됐다. 이 때문에 인근 39개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연간 약 3500건의 문화행사를 열고 있다. 1996년 시작된 에어기타 세계 챔피언십도 오울루의 대표 행사다. 실제 기타 없이 기타를 연주하는 듯한 몸짓으로 실력을 겨루는 이 대회에는 매년 세계 각국의 참가자가 몰린다. 오울루는 최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주는 ‘유럽 혁신수도상(iCapital)’의 ‘떠오르는 혁신도시’ 경쟁에서도 준결승에 올랐다. 오울루는 해외 인재 유치에도 적극적이다. 해외 인재를 발굴해 지역 기업과 연결하고, 가족의 이주·정착을 도우며, 장기근속까지 이어지게 하는 총괄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 오울루에 거주하는 외국인 유학생·연구자·구직자도 유망 인재로 판단해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2026년에 시작된 탤런트노스(TalentNorth)는 스웨덴·노르웨이의 대학과 도시까지 참여하는 국제 인재유치 프로젝트로, 총사업비(전체 참여 도시 합계)가 210만 유로에 달한다. 오울루는 지난 4월 기준 인구가 21만 7000여 명으로 부산 연제구와 비슷한 작은 도시지만 140개국에서 온 1만 3900여 명의 외국인이 살고 있다. 1분기 기준 연제구에 거주하는 등록 외국인 수는 1034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오우룰의 국제화 수준을 이해할 수 있다. 오울루는 해외 언론 취재에도 매우 적극적으로 대응한다. 이번 취재에는 오울루 주재 한국 명예영사(마르티 라우노넨)를 비롯해 비즈니스오울루, 오울루대학교 등이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특히 주핀란드 한국대사관도 이번 취재를 적극 지원했다. 오울루에도 유럽의 전반적인 경기 침체 영향은 있다. 오울루의 2025년 실업률은 전년 대비 0.8%포인트(P), 청년실업률은 같은 기간 1.3%P 올랐다. 그러나 대학과 지방정부, 지역 기업이 기발하고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서 지난해 새로 설립된 기업이 1440개에 이른다. 생존을 위해 과감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 오울루의 ICT·AI 전략은 유럽과 미국의 AI 산업을 분석한 〈부산일보〉의 ‘AI 산업, 비수도권이 이끈다’에서 자세히 보도될 예정이다.
[노트북 단상] 바닷가 옛 교정에 남은 질문
20년 전 울산에서 처음 취재하던 시절, 가장 감탄한 곳이 대왕암공원이었다. 바다 위 바위섬과 해안길의 기암괴석, 파도 소리 그리고 울창한 솔숲까지. 그중에서도 마음을 끌어당긴 건 공원 초입 내리막길 아래 비밀의 화원처럼 숨은 옛 울산교육연수원이었다. 그 자리가 원래 학교였고, 한 선각자가 전 재산을 털어 세웠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모처럼 주말에 공원을 다시 찾았다. 커다란 용 모형 미끄럼틀에서 아이들이 놀고, 손녀 손 잡은 노부부와 연인들이 산책로를 오갔다. 벤치에 누워 이국의 말로 담소를 나누는 이들도 보였다. 솔숲 하늘해먹에서 터지는 웃음소리가 은은한 솔향에 실려 왔다. 발길을 옛 연수원 쪽으로 돌렸다. 진입로를 따라 둥근 돌을 켜켜이 박아 넣은 돌담은 여전히 고즈넉한 멋을 풍겼다. 옛 학생들이 손수 쌓았다는 ‘수제 돌담’이다. 건물이 헐린 자리에는 정원이 들어섰지만, 소나무 사이로 내다보이는 바다는 예전 그대로였다. 오는 28일은 이곳에서 출발한 방어진중학교의 생일이다. 79년 전 이날 학교를 운영할 재단법인 ‘해양학회’가 설립 인가를 받았다. 재단을 세운 이는 광복 뒤 멸치잡이로 부를 일군 이종산(1896~1949) 선생이다. 숲속 공덕비는 선생이 토지 3만 4000평과 돈 200만 원을 아낌없이 바쳐 지역 청년들의 배움길을 열었다고 전한다. 동구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이었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 유족은 재정난에 허덕이던 학교를 1959년 조건 없이 나라에 넘겼다. 그 땅은 이후 학생수련원과 교육연수원으로 이어지며 지역 교육의 뿌리가 됐다. 정원을 걷다 씁쓸함이 밀려왔다. 취재하며 알게 된 이 땅의 순탄치 않은 세월이 떠올라서다. 2000년대 중반 대왕암공원 조성을 앞세운 연수원 이전 요구가 시작됐다. 대기업 창업주 기념관, 1000억 원대 고래체험장 구상이 잇따랐고, 자기 땅도 아닌데 연수원 이전을 공약으로 내건 교육감도 있었다. 연수원이 떠난 뒤에는 호텔 활용론까지 나왔다. 그때마다 천혜의 자연을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명분이 앞섰다. 하지만 이 땅은 한 번도 시민 곁을 떠난 적이 없다. 수십 년간 아이들이 이곳에서 꿈을 키웠고, 교사들은 바다를 마주하며 쉼과 영감을 얻어 교실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 오랜 개발 논의 속에서 교육에 써 달라던 설립자의 뜻은 언제나 뒷전으로 밀렸다. 돌담길 둔덕의 선생 묘는 이 모든 곡절을 묵묵히 견뎌 왔다. 정원 중앙 안내판에는 옛 분수대의 돌 조형물을 설립자의 기부 정신을 기려 본래 자리에 보존했다고 적혀 있었다. 행정이 이 땅의 내력을 아주 잊지는 않았구나 싶어 조금은 안도했다. 그 앞에 서서 한참 바다를 바라보다 다시 자문했다. 선생은 왜 이 바닷가에 아이들의 학교를 세웠을까. 솔숲을 빠져나오는데 돌담 아래 고양이 한 마리가 오도카니 앉아 이쪽을 빤히 바라봤다. 바다가 보이는 교실을 아이들에게 선사한 선각자의 너른 마음을 알기나 하느냐는 듯. 기부는 그 뜻이 지켜질 때 대를 잇는다. 한데 선생이 배움터로 바친 땅은 오랜 세월 정치 셈법과 개발 구상 사이를 떠돌았다.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본 사회에서 누가 또 천금 같은 땅을 내놓을 수 있을까.
[중앙로365] 보안은 안보이자 재난관리다
미국 행정부의 한 당국자는 “한국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동맹의 기준을 준수하길 기대한다. 특히 정보와 방첩 문제와 관련해서”라고 밝혔다. 미국은 지난 3월 통일부 장관의 북한 농축시설 공개 발언 이후 일부 대북 정보 공유를 제한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에너지부는 산하 연구소의 보안 문제를 이유로 한국을 ‘민감국가’ 목록에 올렸다. 정보 동맹의 바탕은 신뢰이고, 신뢰의 바탕은 보안이다. 우리 안의 보안 체계는 곳곳에서 균열이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4월 SK텔레콤 유심 정보 2700만 건 유출을 시작으로 6월 예스24, 7월 SGI서울보증이 랜섬웨어에 멈췄다. 8월에는 중국인 일당이 가짜 기지국으로 KT 고객 정보를 빼냈다. 올해 1월 교원그룹 랜섬웨어로 이용자 96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될 위험에 놓였고, 2월 정부가 쿠팡 3367만 건의 개인정보 유출을 확인했다. 6월 티빙 1953만 명 정보 유출에 이어 지난달 말에는 은행권이 동시에 공격받았다. 한국은행 해킹 시도는 올해 이미 지난해의 4.5배다. 국내 통신·금융 분야 보안 체계 균열 국가기관 온라인 교육 서버도 뚫려 허술한 인증·검증 없는 장비 등 원인 침투 경로 방치 느슨한 인식 고쳐야 사건의 위협·취약점·피해 법마다 달라 국가 통합적 위기 관리 체계 만들어야 국가기관도 예외가 아니다. 국립외교원 온라인 교육 서버는 10개월간 뚫려 외교관과 교육생 등 1만 건의 신상정보가 새어 나갔다. 경찰 수사 자료 44건은 외부 생성형 AI에 입력됐고, 보안인증 없는 경찰 CCTV 385대는 중국산이었다. 최근 3년간 중소벤처기업부 연구개발 과제 약 1만 건 가운데 보안 과제는 단 1건이었고, 참여한 외국인 연구원 1021명 중 보안 심의를 거친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이 사건들의 원인은 닮았다. 허술한 인증, 검증 없는 장비, 서류로만 있는 제도, 남지 않은 로그, 준비되지 않은 복구다. 쿠팡은 퇴사자가 가져간 인증 키를 바꾸지 않아 뚫렸고, 국립외교원 서버는 정기 보안점검에서 빠져 있었다. 한 중국 업체 공유기에서는 35초마다 외부 명령을 받는 원격 제어 기능이 발견됐다고 보고된 적이 있었다. 2024년 도입한 연구개발 보안 과제 제도는 수행기관 91%가 일반 과제로 신청하면서 무용지물이 됐다. 위협은 중심이 아니라 취약한 가장자리를 찾아 들어온다. 세계는 이미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미국은 군사기지 반경 160㎞ 안의 부동산 거래까지 심사하고, 2024년에는 핵미사일 기지 1.6㎞ 옆 중국계 가상화폐 채굴장에 사상 첫 강제 매각 명령을 내렸다. 플로리다 등 20여 개 주는 우려국 국적자의 군사시설 주변 토지 매입을 막았고, 미국 연방통신위원회는 지난 7월 외국산 로봇과 전력망 인버터의 신규 인증을 중단했다. 폴란드는 군사시설에 중국산 차량 진입을 금지했고, 인도는 중국산 CCTV를 사실상 퇴출했다. 그 사이 우리 국방부 위병소는 지난 7일 국감에서 중국산 전기차를 몰고 스마트안경을 쓴 의원을 그대로 들여보냈다. 미국이 기지 밖에서부터 걸러내는 위협이 우리 군 심장부에는 언제든 들어올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도 군사시설뿐 아니라 경찰관서와 국가 중요 시설, 국가 핵심 기반에도 출입 차량과 장비, 주변 토지 거래를 따지는 기준이 필요하다. 보안의 실패는 국가 기능을 떠받치는 정보와 장비, 사회적 신뢰를 보이지 않는 경로로 잠식한다. 이는 안보 위협이자 새로운 사회재난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 사건의 위협과 취약점, 피해를 법마다 따로 접근한다. 안보는 통합방위법·국가정보원법·테러방지법이, 보안은 정보통신기반보호법·산업기술보호법이, 재난관리는 재난안전법이 맡는다. 우리는 법은 있지만 책임이 흩어져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9·11 이후 국토안보부에 연방재난관리청까지 편입해, 테러와 재난을 모든 위험(All Hazards) 원칙의 통합 국가 위기관리 체계로 다룬다. AI가 스스로 취약점을 찾아 공격 도구까지 만드는 시대에, 국내 기관은 미국 주도의 AI 보안 정보 공유 체계에 들지 못했고, 미국 국가취약점데이터베이스도 자국 소프트웨어 위주로 분석을 줄였다. 앤트로픽은 AI가 스마트 가전에 스스로 복제돼 퍼질 날이 머지않았다고 경고하고 있다. 남이 찾아주던 위협과 취약점, 예상되는 피해를 이제 우리가 찾아야 한다. 외국인이 참여하는 국가 연구개발 과제는 보안 심의를 거치게 하고, 외부 협력업체, 대학 연구실, 연결형 장비와 차량, 업무용 AI를 전수 조사해야 한다. 정부 시스템을 민간 클라우드로 이전할 때는 물리적 보호, 이중화, 복구 훈련, 보안 운영 전문인력 검증을 조건으로 걸어야 한다. 무엇보다 안보·재난·치안·금융·통신 당국이 위험 정보를 함께 보는 통합 위험평가를 정례화해야 한다. 특정 국가를 향한 혐오는 경계하되, 침투 경로를 방치한 우리의 느슨한 인식은 고쳐야 한다. 항만과 공항, 원전, 금융 등을 품은 부산은 특히 민감하다. 더 늦기 전에 보안과 안보, 재난관리를 하나로 묶을 때다.
[편집국에서] 9년 전 부산교육청 객관식 폐지 실험의 교훈
2017년 4월 말 김석준 부산교육감은 파격적인 내용을 담은 기자회견을 했다. 이듬해부터 초등학교에 객관식 시험을 전면 폐지하고 서·논술형 시험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부산교육청의 객관식 폐지 실험에 전국적인 관심이 쏟아졌고, 교육 현장에서는 찬반 여론이 극명하게 갈렸다. 초등학생들은 기본적인 지식이 중요하기에 어느 정도 암기와 객관식 문항이 필요하다는 반대 여론부터 4차 산업혁명 시대 창의력이 있는 인재를 키우려면 객관식 문항이 사라져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하게 쏟아졌다. 학부모들은 글씨가 엉망인 자녀가 혹여나 낮은 점수를 받아 기가 죽을까 걱정했고, 논술 학원에 보내야 하는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 이듬해 당초 계획했던 전면 실시는 이뤄지지 않았다. 학교 현장의 준비 부족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당시 정책을 추진했던 담당 부서 관계자는 채점의 어려움이 컸다고 전했다. 초등학생들의 답은 그야말로 기상천외한데 정답 기준을 세워 채점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채점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니 공정성 시비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평가를 하려면 교육 과정이 바뀌어야 하고, 교사들도 바뀐 교육 과정에 맞춰 어떻게 가르칠지 연구하고 교육 받아야 했지만, 지역 단위 교육청에서 하기는 어려움이 있었다고도 했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가 지난 8월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서·논술형을 도입하고 AI로 채점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힌 후 교육계에 찬반 여론이 뜨겁다. 새로운 시험 형태의 등장에 사교육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각계에서 엇갈린 이야기가 쏟아지자 당초 이달 말 예정됐던 중장기국가교육발전계획 시안 발표는 연내로 미뤄졌다. 수능 서·논술형 도입 논의를 지켜보며 9년 전 부산시교육청의 시도가 떠올랐다.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AI 환경이다. 정책 추진 배경에 4차 산업혁명이라는 키워드가 AI로 바뀌었고, 기술적으로는 AI 채점이 가능한 환경으로 바뀌었다. 대학 서열화가 여전한 상황에서 ‘인생을 좌우한다’는 수능이 시험 대상이 되면서 해법의 난도는 더 높아졌다. 교육 현장에서는 수능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에 큰 이견이 없는 듯하다. 1994년 시행된 수능은 30년 가까이 운영되면서 특정 문제 유형들이 생겨나고 EBS 연계 비율이 높아지면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기출 문항의 풀이 요령을 잘 익히는 것이 중요해진 것이다. 학생들이 문제 풀이 기계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됐지만, 방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가장 논쟁적인 지점은 AI를 활용한 채점이다. 채점 업무 부담 경감과 채점의 정확성을 위해 AI 활용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AI 채점은 알고리즘 맞춤형 획일적인 답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맞선다. 채점을 온전히 수작업으로 하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 당초 국가교육위원회가 서·논술형 도입 시기로 밝힌 2038학년도는 현재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 대상이 된다. 전국의 초등학교 1학년 28만 8000여 명의 답안을 검토해야 하는데, 교사 1명 당 100명의 답안을 채점한다면 3000명 가까이 인원이 필요하다. 교차 검수와 과목별 채점을 감안하면 더 많은 인원이 동원되어야 한다. 전국의 일반고등학교 교사 약 6만 명 중 상당수가 채점에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공정성 시비는 차치하고 현실적으로 서·논술형 채점을 사람의 인력만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알고리즘 맞춤형 답이 양산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지만, 수작업으로 채점해도 채점 기준이 알고리즘 역할을 하기에 이를 AI 채점의 문제로 볼 수 없다. 수능 서·논술형 도입의 관건은 AI 채점 여부가 아니라 교육 현장의 변화이다. 9년 전 부산교육청의 경험이 중요한 힌트가 될 수 있다. 일선 교육 현장이 바뀌지 않으면 서·논술형 시험이 지향하는 가치를 교육에서 구현할 수 없다. 학생들의 다양한 답을 데이터베이스화 해서 밀도 높은 채점 기준을 도출하는 데에 활용하고, 서·논술형 도입을 위한 교육 과정을 바꾸고 교사들도 그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간과해서는 안 되는 대목은 대학의 변화이다. 수능 개편이 일선 초중고 교육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은 명확하다. 수능 점수로 줄 세워진 학생을 손쉽게 골라 뽑는 현재의 입시 중심 교육 제도를 바꾸려면 대학의 책임은 더 강조되어야 한다. 입시 문턱을 낮추는 대신 대학별로 수준 높은 교육을 제공하고 졸업 요건을 강화하도록 정책적 유도가 필요하다.
[양보원의 유행 너머] '먼작귀'가 뭐길래
동그란 얼굴에 까만 눈, 조그만 입과 발그레한 볼. 세상 걱정 하나 없을 것 같은 이 귀여운 녀석들이 극장가를 점령했다. 일본 인기 만화 ‘치이카와’의 극장판이 개봉 4주 차에도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고 있다. 인형과 키링을 사기 위해 줄을 서고, 한정판 굿즈에는 수십만 원의 웃돈까지 붙는다. 대체 이 작고 귀여운 녀석들에게 무슨 매력이 있는 걸까. 국내에서 ‘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로 알려진 치이카와의 인기는 숫자로 확인된다. 지난달 30일 개봉한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누적 관객 200만 명을 돌파했다. 리셀 플랫폼 크림에 따르면 지난 1~14일 치이카와 관련 검색량은 전월 동기 대비 1304% 급증했다. ‘치이카와×9090’ 키링은 발매 가격의 16.7배인 최고 44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치이카와의 인기에는 귀여움의 심리학이 숨어 있다. 동물행동학자 콘라트 로렌츠가 제시한 ‘베이비 스키마’ 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둥근 얼굴과 큰 머리, 짧은 팔다리 등 아기를 연상시키는 특징에 본능적으로 호감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 치이카와의 단순하고 동글동글한 외형도 이런 특징과 맞닿아 있다. 하지만 치이카와가 귀엽기만 했다면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었을까. 세상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것 같은 외모와 달리, 이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꽤 험난하다. 생계를 위해 일을 하고, 자격증 시험에 떨어지기도 하며, 무서운 괴물과 맞서 싸워야 한다. 주인공 치이카와는 겁도 많고 눈물도 많다. 그래도 친구들과 서로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귀엽기만 할 것 같은 주인공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반전 세계관은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귀여운 외모에 이끌려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가, 고단한 현실을 견디는 캐릭터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게 되는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도 뜻대로 되지 않는 일상, 작은 성취에 기뻐하다가도 실패에 좌절하는 모습은 어른들의 삶과도 닮았다.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캐릭터가 예상 밖의 시련을 겪을수록 안쓰러움과 응원의 마음이 쌓이고, 애착으로 이어진다. 애착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팬덤으로, 다시 굿즈 소비와 영화 관람으로 확장된다. 귀여운 캐릭터를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을 넘어, 좋아하는 존재를 일상 가까이에 두고 위로받고 싶은 것이다. 어른들이 치이카와에 빠지는 이유는 현실이 얼마나 고단한지 잘 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작고 귀여운 녀석들이 험난한 세상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오션 뷰] 다시, 북항의 처음을 묻는다
지난달 북항 친수공원 수로에 상어 한 마리가 들어왔다. 시민들은 북항의 이름을 따 이 상어를 ‘부캉이’라 불렀다. 그 뒤의 풍경은 우리 모두가 기억한다. 평소 하루 2000명 남짓 찾던 공원에 한 달여 동안 160만 명이 넘는 발길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난간에 기대어 오래도록 물을 바라보았다. 지느러미가 드러나면 환호했고, 큰 바다로 돌려보내려는 시도가 번번이 무산될 때마다 함께 안타까워했다. 상어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마음은 두려움보다 반가움과 염려에 가까웠다. 바다와 사람을 잇는 일을 해온 사람으로서, 이 장면 앞에서 북항이 왜 시작되었는지를 다시 떠올렸다. 올해로 개항 150년을 맞은 부산항의 역사는 북항에서 시작되었다. 1876년 문을 연 이 항구는 한 세기 넘게 이 나라의 산업화와 수출을 떠받쳤다. 그러나 그 대가로 도시는 바다를 잃었다. 부두와 컨테이너 야적장, 철길이 해안을 따라 길게 늘어서면서 원도심은 바다와 멀어졌다. 전환점은 2006년 신항의 개장이었다. 물류 기능이 신항으로 옮겨 가면서 북항의 오래된 부두들은 하나둘 제 쓰임을 잃었다. 부산은 이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받아들였다. 2008년 북항 1단계 재개발이 시작됐다. 목표는 옛 항만을 세계적인 해양관광·문화 공간이자 시민의 친수공간으로 바꾸는 것이었다. 항만에 가로막힌 원도심을 다시 바다와 잇고, 백 년 넘게 일터로만 쓰이던 바다를 시민의 일상으로 돌려주겠다는 약속이었다. 2015년 국제여객터미널을 시작으로 문화공원과 보행데크, 친수공원과 경관수로, 마리나가 차례로 들어서며 그 약속은 하나씩 모습을 갖춰 왔다. 지금 추진 중인 2단계 사업 역시 원도심과의 상생, 그리고 지속가능한 친환경 생태도시를 목적으로 내걸고 있다. 지난 20년 가까이 북항은 새로운 공간을 빚어내기 위해 쉼 없이 고민해 왔다. 랜드마크 부지와 상업 블록의 쓰임을 두고 여러 차례 계획을 다듬는 사이, 친수공원과 수변공간이 하나둘 시민 곁으로 다가왔다. 그 노력 덕분에 우리는 부캉이를 보기 위해 바다 곁 난간에 설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난간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이제 이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하나의 실마리를 보여주었다. 부산은 그동안 바다를 배경으로 보여주는 데, 이른바 ‘오션뷰’에 익숙했다. 그러나 이번에 시민들이 반가워한 것은 상어 한 마리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바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만나는’ 경험에 마음을 연 것이 아닐까. 부캉이를 기억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캐릭터 공모와 기념 상품이 뒤따랐고, 조형물 이야기도 오간다. 시민들이 함께 나눈 특별한 만남을 기억할 상징을 만드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아이들에게는 북항을 떠올리는 즐거운 이름이 될 것이다. 다만 한 가지는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기념이 오래 의미를 지니려면, 그 기념이 가리키는 경험이 북항에서 계속되어야 한다. 조형물 앞에 선 사람이 그 너머로 펼쳐진 바다를 직접 만나고 누릴 수 있을 때, 그 조형물은 추억을 넘어 북항의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북항 개발의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 보는 일이다. 바다 생물을 구경거리로 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부캉이에게 좁은 수로는 머물기 좋은 곳이 아니었다. 필요한 것은 시민이 바다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물 위에 나가 북항을 바라보는 일, 배가 드나드는 항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일, 150년 항구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일, 해양수산부 신청사가 들어설 이곳에서 바다의 연구와 정책을 시민의 언어로 만나는 일이 그것이다. 그러려면 무엇을 지을지에 대한 계획만큼, 그 경험을 꾸준히 이어 갈 콘텐츠와 사람, 운영의 계획이 함께 그려져야 한다. 부산시는 내년 관광 예산을 크게 늘리겠다고 밝혔고, 북항 2단계 사업도 본격화를 앞두고 있다. 지금이 그 방향을 정하기에 좋은 때다. 북항 재개발에는 세계를 맞는 관문, 해양산업과 미디어가 모이는 거점, 원도심과 함께 사는 도시라는 여러 꿈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150년 동안 항만에 내주었던 바다를 시민에게 돌려주고, 끊어졌던 도시와 바다를 다시 잇겠다는 약속이 있었다. 부캉이를 보러 이어진 160만 명의 발길은 그 약속이 왜 필요했는지를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바다를 다시 만나고 싶어 했다. 그 만남이 이어지려면 무엇보다 바다가 건강하게 지속되어야 한다. 한때의 화제로 소비되는 바다가 아니라 오늘의 시민과 다음 세대가 함께 누릴 수 있는 바다, 그 지속가능한 바다를 지키고 가꾸는 일까지가 ‘바다를 돌려준다’는 말의 온전한 의미일 것이다. 조형물을 세우든 축제를 열든, 그 모든 일이 한 방향을 향할 때 북항은 비로소 완성에 다가갈 것이다. 개항 150년, 부산이 다음 150년을 향해 다시 새겨야 할 것은 바다를 시민에게 돌려주겠다던 북항의 처음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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