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타인의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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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세계를 무자비하게 만드는
빈곤한 상상력을 넘어서
타인 속도에 보폭을 맞추는 일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발목 인대를 다쳤다. 병원에 갔더니 무릎 아래까지 감싸는 반깁스를 해주었다. 통증이 있기는 해도 크게 다친 게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반깁스라 잠시 풀어둘 수 있으니 씻는 데에도 문제가 없었다. 한쪽 다리를 감싼 부목이 무겁고 딱딱해서 조금 불편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첫날엔.

그러나 다리를 다쳐본 적이 없던 사람의 천진하고도 오만한 생각이었다는 걸 곧 알게 되었다. 외출을 하기 위해 옷을 입고 신발을 신는 것조차 간단치 않았다. 멀쩡한 한쪽 다리를 들기 위해 다친 다리 하나로 서는 일은 고통과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고, 발목이 부목에 고정되어 있으니 바닥에 앉았다 일어나는 일도 생각보다 힘들었다. 하의를 입거나 신발을 신으려면 의자에 앉은 채 한쪽 다리를 드는 방식이 그나마 나았는데 입식 의자를 여기저기 갖다 둘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 움직임의 속도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려졌다. 거리로 나서보니 대부분의 행인들이 빠르게 걸었고 나는 그들 사이에서 매순간 걸음이 처졌다. 물론 길에서 뒤처지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가 가장 문제였다. 초록불의 보행자 신호가 이렇게 짧았던가. 불이 깜빡거리면 마음이 조급해졌다. 뛸 수도 없고 빠르게 걸을 수도 없는데 신호등은 금세 빨간불로 바뀌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에서 어쩔 수 없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할 때는 난간 손잡이에라도 의지해야 했다. 두 다리가 멀쩡할 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었는데 말이다. 예전에는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보도블록의 턱도 왜 그리 높아 보이는지. 턱 하나를 거칠 때마다 나는 더 느린 사람이 되었다. 출근길 버스를 탑승하면서 일반버스와 저상버스의 차이도 확연하게 느껴졌다. 일반버스의 계단은 단차가 커서 오르내리기가 힘들었기에 먼저 오는 일반버스를 보내고 저상버스를 기다리기도 했다.

다리를 조금 다쳤을 뿐인데 그동안 중요하지 않았던 것들이 입체적으로 내 시야에 들어왔다. 중립적으로 여겼던 사물들이 더 이상 중립이 아니게 되었다. 물론 나를 둘러싼 세계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전과 동일한 세계임에도 불구하고 내 몸의 조건이 조금 달라지자 난감하고 불편해지는 일들이 더 자주 생겼다. 평소보다 고된 며칠을 보내면서, 완만한 경사로, 저상버스, 엘리베이터, 자동문, 난간 손잡이 등의 필요성을 새삼스럽게 인지했고, 이동에 지속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이러한 시설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은 역시 스스로 불편을 겪어봐야 타인의 어려움도 이해하게 되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불편을 겪고 나서야 사회적 약자의 이동권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직접 겪어본 이후에야 이해하게 되는 마음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편협한가. 장애를 갖지 않아서, 임산부가 아니어서, 아직 노인이 되어보지 않아서, 내 가족이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가 아니라서 그 입장에 서 보지 않게 되는 사고방식이란 참으로 빈곤하다. 빈곤한 상상력이 이 세계를 무자비하게 만든다. 어쩌면 나 역시 그 무자비함에 일조하고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인식이나 상상을 통해 타인의 삶과 속도를 모두 이해하거나 알게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록 완전한 이해에 닿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내가 편안하게 여기는 것들이 누구나에게 편안한 상황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내가 보통의 속도라고 말하며 여유롭게 걸을 때 어떤 이는 조바심을 내며 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주 떠올리고 우리 각자가 타인의 속도에 보폭을 맞추려고 애쓴다면, 세상은 모두에게 조금 더 다정한 곳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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