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파울 링케, 베를린 오페레타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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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파울 링케. 위키미디어 파울 링케. 위키미디어
조희창, 음악평론가. 부산일보DB 조희창, 음악평론가. 부산일보DB

음악의 역사는 늘 ‘고결한 예술성’과 ‘뜨거운 대중성’ 사이의 시소 놀이 같았다. ‘작은 오페라’라는 뜻의 ‘오페레타’는 오페라에 비교해 좀 더 가벼운 주제와 대중적인 음악, 그리고 레치타티보가 아닌 일반 대사를 사용하면서 19세기 중반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산업혁명 이후의 도시는 급격히 바빠졌고 이 과정에서 서민은 점점 지쳐갔다. 신화나 역사 속의 영웅들이 등장해서 노래하는 정통 오페라로는 현실의 무게를 위로받지 못했다. 그들은 좀 더 쉽고 편하고 발랄한 엔터테인먼트를 원했고 그 심정에 딱 들어맞는 것이 오페레타였다. ‘음악+일반적 대사+현실적인 인물+사회풍자+대중적 노래’라는 도식은 훗날 뮤지컬의 중요한 DNA가 된다.

1858년 파리에서 자크 오펜바흐가 ‘지옥의 오르페’로 본격 오페레타의 시대를 열었다. 이 역시 기존의 오르페우스 신화가 가진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를 완전히 비틀어버린 작품이었다. 빈에서도 1874년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가 열풍을 일으켰다.

그러자 독일에서도 베를린을 중심으로 오페레타가 작곡되기 시작했다. 베를린 오페레타의 선두에 선 사람이 파울 링케(Paul Lincke, 1866~1946)였다.

링케는 천부적으로 악기를 배우는 능력이 뛰어났다. 어려서 바이올린, 바순. 호른, 드럼, 피아노를 연주했다. 군대 음악과 댄스음악을 작곡하다가 극장음악으로 눈을 돌려 본격적인 작곡을 시작했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카바레인 파리의 ‘폴리 베르제르’에서 2년간 일하면서 보드빌 음악을 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1899년 ‘달의 부인’을 발표해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 ‘리지스트라타’ 등으로 독일 청중을 사로잡았고, 메트로폴극장의 수석 지휘자로도 일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져 베를린을 떠난 후 무대에 복귀하지 못한 채 1946년 9월 3일에 세상을 떠났다.

오페레타 ‘달의 부인’은 베를린 열기구 발명가가 친구들과 함께 달나라로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소동과 로맨스를 그린 공상과학 코메디다.

링케는 1922년에 ‘달의 부인’을 개작하면서 따로 만들어 두었던 행진곡 '베를린의 공기(Berliner Luft)를 집어넣었다. “아무리 달나라가 화려하고 아름다워도, 우리가 숨 쉬고 살아가는 베를린의 공기(Berliner Luft)만한 것이 없어!”라며 유쾌하게 마무리한다. 이 곡은 베를린 청중을 사로잡았고, 곧 베를린 시를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특히 매년 여름 베를린 외곽의 야외무대에서 펼쳐지는 발트뷔네 콘서트에선 맨 마지막 곡으로 청중과 함께 이 곡을 부르는 것을 전통처럼 이어가고 있다. 휘파람을 부르며 즐겁게 합창하는 영상을 보면 부러운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도 꽤 많은 도시가 시가(市歌)란 걸 만들어 누리집에 올려놓았지만, 시민들이 시가를 부르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다. 왜? 시대에 안 맞고 재미도 없기 때문이지 않겠는가?

링케-베를린의공기 링케-베를린의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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