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내가 본 정명훈의 '오텔로'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오페라의 대명사 주세페 베르디(1813~1901)의 대표작으로는 흔히 ‘리골레토’(1851)와 ‘라 트라비아타’(1853), ‘일 트로바토레’(1853)를 꼽는다. 그러나 이는 가장 대중적인 작품들이고, 베르디의 기법이 무르익은 최고 걸작으로는 ‘돈 카를로’(1884)와 ‘오텔로’(1887)를 친다. 여기에 종교성악곡으로 ‘레퀴엠’(1874)을 추가하면 베르디 걸작 빅3가 완성된다. 베르디의 가장 파퓰러한 빅3와 위대한 빅3는 이렇게 나뉜다.
공교롭게도 전자의 세 작품은 중기작이고, 후자의 세 작품은 후기작이다. 그만큼 베르디는 환갑을 넘긴 후기로 갈수록 관현악법에 심오함과 밀도를 더했다. 그러한 밀도가 극대화된 작품이 ‘오텔로’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원작으로 70대의 베르디가 작곡한 ‘오텔로’는 바그너풍의 두터운 화성을 베르디가 독자적으로 소화한 명작이다. 연주의 난도가 높아 무대에 자주 오르지 못하는 난곡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오텔로’ 스페셜리스트는 손에 꼽을 만큼 희소하다.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툴리오 세라핀,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카를로스 클라이버 같은 옛 거장들만이 이 작품의 진정한 해석자로 평가되어 왔다. 이들이 사라진 지금 정명훈은 현존 최고의 ‘오텔로’ 스페셜리스트로 추앙받고 있다. 1993년과 2013년 파리와 베네치아에서 두 번 ‘오텔로’ 전막을 녹음했고, ‘레퀴엠’ 또한 1998년과 2001년 도쿄와 서울에서 두 차례 녹음했다. 현존 지휘자 누구도 베르디 만년의 최고 걸작 두 편에서 이 같은 업적을 남긴 이는 없다.
필자는 2001년 4월 1일 파리 샤틀레 극장에서 정명훈 지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라디오 프랑스 합창단의 연주로 ‘오텔로’를 관람한 적이 있다. 다니엘레 아바도의 공간연출(Mise en espace)이 가세한 무대는 가히 초절적인 명연이었다. 테너 호세 쿠라의 오텔로와 소프라노 카리타 마틸라의 데스데모나, 바리톤 앤서니 마이클 무어의 이아고, 테너 체사레 카타니의 카시오 등 캐스팅도 특급 일색이었다.
이들의 가창과 연기도 훌륭했지만 수훈갑은 단연 정명훈이었다. 당시 48세의 정명훈은 천지개벽할 천둥과도 같은 사운드를 1막 도입부의 폭풍우 장면에서부터 이끌어냈다. 오케스트라의 노도와도 같은 포효는 2막 말미 오텔로와 이아고가 의기투합하는 2중창과 3막 베네치아 총독의 특사 로도비코의 등장 장면에서도 이어졌다. 21세기 최고 ‘오텔로’ 스페셜리스트다운 정명훈의 명지휘였다. 2006년 6월 9일 파리 근교 생드니 대성당에서의 ‘레퀴엠’ 연주도 같은 맥락의 명연이었다.
그런 정명훈이 내년 9월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무대를 수놓을 것으로 보인다.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음악감독 신분으로 지휘해 베르디의 ‘오텔로’와 ‘레퀴엠’을 공연하는 협의가 한창이다. 라 스칼라는 두 걸작을 초연한 단체다. 부산뿐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부산오페라하우스가 74세의 노장 정명훈의 지휘로 역사적인 개막을 알리기를 소망한다. 다음달 개관하는 상하이 그랜드 오페라하우스는 베를린 국립 오페라극장과 베네치아 라 페니체 극장, 상트 페테르부르크 마린스키 극장을 통째로 초청해 화려한 개막을 준비 중이다. 부산이 상하이에 뒤처져서는 안 된다. 아시아 유일의 세계적 거장 정명훈만이 그의 고향 부산이 잉태한 부산오페라하우스의 개막을 알릴 권한과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