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 칼럼] 정권의 명운이 걸린 서울 아파트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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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 개인 선호·1인 가구 증가로
안방 줄고 아파트 평면도 달라져

지방은 악성 미분양에 신음하는데
정부는 수도권 공급 확대에 총력전
지연·좌초 반복돼도 속도전만 외쳐
채울 수 없는 욕망 좇는 이상한 나라

의식주라는 삶의 기본 요소를 나열하면서 순서가 뭐 대수인가 싶지만, 옷이 음식에 앞서는 것은 잘못됐다는 주장이 나온 지도 오래다. 먹고사니즘의 관점에서 식의주가 마땅하다는 것이다. 주거를 끝에 두는 것에도 불만이 있다. ‘똘똘한 아파트 한 채’는 평생의 숙원이자 성공의 바로미터 아닌가. 주식의가 옳은 표현이라는 주장도 성립한다.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아파트 거주 비율은 54.5%였다. 1970년 0.7%와 비교하면 명실상부한 아파트 공화국이다. 아파트는 주거 공간에 그치지 않고 배타적 귀속감을 공유하는 ‘가치 네트워크’로 발전했다.

지존에 오른 아파트는 무수한 담론으로 변주된다. 자율주행 기술도 그중 하나다. 사람이 운전대를 놓으면 도심 아파트의 가격이 떨어질까. 웬 뚱딴지같은 소리냐 싶지만 10년 뒤 자산 가격에 미칠 영향을 놓고 전망이 분분하다. 출퇴근 운전에서 해방되면 그 시간을 유익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되고, 거리 부담이 사라지면서 외곽 주거지도 각광받을 수 있다는 논리 전개다. 도심 부동산의 호가 하락을 지레 걱정하는 것이다.

가족과 안방의 변화를 시계열로 비교하면 집의 미래상을 가늠할 단서를 얻을 수 있다.

한국의 전통 가옥은 마당으로 안채와 사랑채를 나누고, 남녀와 용도를 구분했다. 부부유별의 유교 이념을 건축에 적용한 결과다. 근대에 들어 안방은 살림·수면·육아 기능이 중첩되는 다기능·공유 공간이었다. 이부자리를 걷어 낸 자리에 밥상을 차려 가족이 둘러앉던, 침식(寢食)을 겸한 방이었다. 안방이 부부 전용의 사적 공간으로 분리되고 거실이 사랑채의 공적 기능을 흡수한 구조가 처음 등장한 곳은 1970년 서울 한강맨션이다.

부산에서는 1960년대 산복도로 재개발로 시영·시민 아파트가 등장했다. 당시에는 안방·자녀 방에 위계가 없는 ‘田’ 자형 구조에다 거실의 개념도 뚜렷하지 않은 채였다. 화장실도 층별 공용이어서 프라이버시 개념이 희박했다. 중층·대형화가 진행된 1970년대 후반 이후 공용 거실이 명확해지고 안방은 부부 전용으로 굳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안방과 자녀 방 2개, 거실·부엌으로 구성된 이른바 국민평형인 84㎡형이 탄생한다. 이 형태가 마치 유구한 역사를 가진 ‘국룰’처럼 여겨지지만 산업화에 따른 핵가족 형성의 산물일 뿐이며, 그 역사는 60년이 채 안 된다. 이 주거 형태를 지탱하는 ‘콘크리트 구조물’에 온 국민이 ‘영끌’을 불사하는 게 오늘의 세태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는 2025년 출간한 〈Z세대 트렌드 2026〉에서 가구 변화가 주거에 미치는 영향으로 안방의 퇴조를 꼽았다. 최근 공급된 아파트 평면도를 분석한 결과, 넓고 안락한 안방의 개념이 흐려지면서 각 방의 크기가 비슷해졌다는 것이다. 개인을 중시하는 Z세대가 부부 각방 등 독립 공간을 선호한 영향이다. 여기에 1인 가구 증가도 한몫했다. ‘나 홀로’ 비중은 2015년 27.2%에서 2025년 36.6%로 뛰면서 2인(29.4%), 3인(18.8%), 4인(12.1%) 가구를 압도했다. 한국인 10명 중 4명 가까이 혼자 산다.

부동산 수요와 직결되는 1인 가구의 증가는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겠지만 아파트 선호는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똘똘한 한 채’ 심리가 여전히 강력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정부 정책보다 힘이 세다. 부동산 공급과 가격 관리의 줄타기에 실패한 정권은 곧바로 정치적 대가를 치른다. 이재명 정부가 서울 용산공원 부지 활용까지 검토하며 청년·신혼부부용 아파트 공급에 안간힘을 쓰는 이유다.

정부는 8·13 부동산 대책에서 수도권에 신규(10만 가구)와 기존(13만 가구) 물량을 37개월 이내 착공한다는 시간표까지 제시하며 ‘닥공’을 선언했다. 하지만 국정 총력전을 바라보는 지방민의 마음은 쓰리다. 부동산 양극화 탓이다. 7월 기준 부산의 미분양 아파트는 8379호로 2009년 12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1군 브랜드까지 공매로 넘어가면서 경제 직격탄은 물론 심리적 공황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충남(9982호), 대구(4278호), 전남광주(3716호) 등 다른 지역도 동병상련의 처지다.

주거를 포함한 생활양식은 시대에 따라 바뀌고 있다. 그러나 서울 아파트를 향한 욕망과 이에 대응하는 국정의 동원 방식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도권 택지 공급을 약속했지만, 지구 지정과 인허가, 보상, 택지 조성, 착공, 분양, 입주에 이르는 과정에서 지연되거나 좌초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런데도 국정 에너지는 늘 서울의 신축 아파트 공급에 쏠리고, 다 지은 아파트마저 비어 가는 지방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서울 아파트 공급에 정권의 명운을 거는 나라를 정상이라 할 수는 없다. 무한한 욕망은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데, 오늘날 한국 주거 문제의 비극이 있다.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김승일 수석논설위원 dojun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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