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명절에 생각하는 돌봄
오금아 사회부 선임기자
추석에 접한 여러 ‘돌봄’ 고민
가족·정부·사회 모두의 책임
돌봄 가족 다양한 형태 고려
위기 가구 세밀한 지원 필요
추석 연휴 가족들이 모였다. 북항 친수공원을 전국구 핫플로 만든 상어 ‘부캉이’부터 고3 조카의 입시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명절의 특성상 주변 어르신이나 지인에 대한 안부 인사를 나누다 보니 어느 집이나 ‘돌봄’에 대한 고민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알게 됐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 A는 집안 어른들이 줄줄이 병원에 입원을 해서 몇 개월을 정말 바쁘게 보냈다고 전했다. 늘 밝고 씩씩했던 A는 몸이 너무 힘들어 병원에 갔다가 의사한테 거의 소진 상태라며 지금까지 어떻게 버텼냐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또 다른 지인 B는 치매에 걸린 부모가 매일 보는 사람 외에는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 방문객을 경찰에 신고하는 소동을 빚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환자의 심리적 안정을 생각해 명절에도 가족이 모일 수 없게 된 상황을 접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갑자기 가족이 암 같은 큰 질환으로 진단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병원을 찾는 일부터 각종 검사와 수술, 후속 치료까지 이어지는 긴 간병의 시간이 얼마나 힘든지 경험한 사람은 안다. 단순 골절이나 독감, 마음의 병까지 다 돌봄이 필요하다. 그 돌봄의 대상은 어린아이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될 수 있다. 지금은 내가 누군가를 돌보지만, 언젠가는 내가 그 돌봄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시간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겪을 일이다.
돌봄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국가데이터처의 사회조사를 통한 인식 변화 분석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부모 부양을 ‘가족·정부·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보는 중장년층이 49.0%에서 65.0%로 늘어났다. 부모 부양을 개인이 아닌 사회 공동의 책임으로 보는 시선이 늘어난 것이다.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자녀와 부모를 같이 돌봐야 하는 낀 세대가 가계 지출 중 가장 큰 부담으로 느끼는 것이 교육비와 간병비였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환자와 보호자가 지출한 사적 간병비는 2018년 8조 원을 넘었다. 2024년 기준 입원 환자의 사적 간병비 규모는 연간 11조 원으로 늘어났다. 정부가 병원에서 가정까지 간병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각종 제도를 논의하고 있지만, 노부모 돌봄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놓고 가족 사이에 다툼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 현실이다.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돌봄 부담으로 인한 자살 사례 보도가 약 60건에 달한다. 2007년부터 2023년까지 간병 살인이 228건에 이른다는 자료도 있다. 돌봄 부담에 따른 자살 사건의 절반은 고령의 부부 간병에서 발생했다. 홀로 돌봄을 제공하던 상황에서 돌봄 제공자들이 중증 질병이나 우울증을 경험한다. 이 상황에서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하고 돌봄 노력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판단했을 때 자살 위험이 증가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지난 8월 복지부는 ‘돌봄·간병 부담 자살예방 대책’을 발표했다. 노인·장애인 돌봄 가구 중 고위험 가족을 집중 발굴·조사하고, 장기요양이나 장애인 등록 신청 등 돌봄 초기 단계부터 해당 가족의 돌봄 환경·마음건강을 조사해 위험 징후가 확인되면 긴급 돌봄 지원 서비스 등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가족의 돌봄 부담 완화를 위한 서비스 확대, 치매나 발달장애 같은 고난도 돌봄 가족에 대한 상담과 교육, 돌봄 인프라 취약 지역의 서비스 제공 강화, 돌봄자의 정신적·육체적 소진 예방을 위한 휴식 지원 확대 등이 대책으로 제시됐다.
질병이나 장애로 돌봄이 필요한 가족이 있어도 직장생활 등 일상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게 하고, 빈부격차가 돌봄격차로 이어지지 않게 사회적 안전망도 촘촘히 해야 한다. 희귀·난치성 질환자나 고령화한 은둔 청년, 가족돌봄 청년 가구나 다양해진 가족 유형 등 돌봄 대상과 돌봄자의 개별 상황에 맞춘 세밀한 지원책 설계도 필요하다.
시내 도로에서 백발의 아들이 노모의 휠체어를 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횡단보도 진입을 위해 지나가야 할 교통섬의 낮은 턱에 휠체어 바퀴가 걸렸다. 아들이 힘을 주어 겨우 휠체어를 교통섬 위로 올리는 모습을 보며 그 약간의 턱이 두 사람에게 얼마나 큰 불편으로 다가왔을까를 생각했다.
좋은 돌봄 정책이란 무엇일까. 아들이 밀고 어머니가 탄 휠체어를 그 가족의 돌봄 상황에 비유한다면, 두 사람의 ‘돌봄 휠체어’가 막힘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좋은 정책의 시작점일 것이다. 돌봄은 어느 한 가족만의 숙제가 아니다. 때가 되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숙제이며, 사회가 함께 풀어 나가야 할 숙제이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