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사건 빨리 끝내야만 유능한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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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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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하 사회부 차장

드디어 그날이 왔다. 경찰이 수사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그 결과까지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시대. 수많은 논란 끝에 마련된 새 형사소송법은 지난 2일부터 현실이 됐다. 한 번도 가본 길이 아니기에 비관적인 전망도 난무했다. 심지어 “10월 2일부터 범죄자 천국이 되는 세상”이라는 극단적인 주장까지 튀어나왔다. 이 같은 우려의 중심에는 1차 수사를 책임져야 할 경찰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사건 현장에서 헌신적으로 피해자를 도우려는 경찰 수사관들이 다수라고 믿는다. 지난달 ‘새 형사사법체계 대혼란’ 보도(부산일보 지난달 22일 자 1면 등 보도)를 위해 취재진이 만나 인터뷰했던 복수의 수사관들이 그랬다. 한 수사관은 말했다. “지금 제 킥스(KICS·형사사법정보시스템)에는 사건이 25개 찍혀 있어요. 토요일마다 나와서 일하고 있죠. 자신을 갈아 넣어서 사건에 매달리면 ‘번아웃’이 옵니다.”

이 수사관은 기자에게 거의 하소연에 가까운 속내를 계속 털어놨다. “힘들어도 재미와 보람이 있어 그동안 떠날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 제도 변화와 조직 대응을 보면서 처음으로 나가야 하나 싶기도 합니다.” 다른 수사관들의 진단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력은 부족했고, 숙련된 수사관들은 현장을 떠나고 있었다. 여기에 새 제도가 몰고 올 업무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현장의 불안은 한층 커지고 있었다.

이쯤 되면 경찰 수사 불신을 거론하기에 앞서, 그들이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 수사해왔는지부터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특히 부족한 일손에 더해 수사관들을 지치게 만드는 것은 사건 기한·처리율 중심의 업무평가다. 복수의 수사관 증언에 따르면 현장에는 사건의 실체를 파고드는 것보다 사건을 빨리 종결하는 수사관이 유능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공개된 감사원의 ‘경찰청 및 서울·부산경찰청 정기감사’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보고서는 한 팀장급 경찰관의 발언을 이렇게 전한다. “사건을 대충대충 끝내야 우수한 팀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오히려 수사 완결성을 높이려 계속 수사지휘를 하다 사건 처리가 늦어지면 무능력한 팀장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또 다른 팀장급 수사관도 “수사부서 팀장 지휘역량 평가지표를 보면 개별 사건을 꼼꼼히 살펴볼 이유가 없다. 하위 20%가 되지 않으려면 사건을 빨리 처리하라고 독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평가지표에는 수사처리기간과 6개월 이상 장기사건 비율 등이 포함된다. 새 형사소송법 시행으로 이제 보완수사마저 기존 3개월에서 원칙적으로 1개월 안에 마쳐야 한다. 수사관의 숙련도와 사건의 난이도는 제각각인데, 시간표는 갈수록 촘촘해지는 셈이다. 이런 구조에서 과연 충실한 수사가 지속될 수 있을까.

새 형사소송법 시대에 불거진 문제를 풀기 위해 백가쟁명식 처방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서 경찰 내부에서 당장 손댈 수 있는 것부터 바꿔보면 어떨까. 인력과 예산 확충에는 시간이 걸린다. 그 전에 경찰 스스로 손볼 수 있는 것은 ‘빨리 끝낸 수사’를 좋은 수사로 여기는 평가방식이다. 전문가들 또한 사건 난이도와 성격에 따른 가중치, 정성평가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범죄 피해자가 원하는 지점도 결국 같다. 사건을 적당히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억울함과 피해를 끝까지 들여다보고 제대로 풀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좋은 수사는 빨리 끝낸 수사가 아니라, 끝까지 제대로 들여다본 수사여야 한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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