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한의 지금이곳] 북항과 구포시장, '뜻밖의 만남' 그다음은
우연한 기회로 높아진 공간 가치
열띤 호응에 한순간 '핫플' 떠올라
새로 찾아낸 공간 브랜드 가능성
반짝 인기 아닌 지속 가능한 길로
부산의 일상 공간 새로 읽는 계기
시민 공감 더할 '부산다움' 찾아야
요즘처럼 부산의 공간 여러 곳이 동시에 전국적 화제가 된 적이 있었나 싶다. 국제영화제나 불꽃축제, 지스타 같은 대형 이벤트 없이, 그야말로 일상의 공간이 주목받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 괜스레 마음이 부풀고, “부산에 좋은 운이 들어왔나”, 기대까지 품게 된다.
부산 북항은 난데없이 등장한 약 3.5m짜리 상어 ‘부캉이’ 덕분에 일약 전국적인 핫플레이스로 떠올랐다. 열흘 남짓 북항은 전국에서 가장 ‘힙’한 놀이터였다. 시작은 부캉이의 출현이었지만, 판을 키운 건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은 이 일상적이지 않은 소동을 보려고 기꺼이 시간을 냈고, 부캉이 일거수일투족은 생중계되다시피 했다. 온갖 영상과 스토리가 다시 사람을 모았다. 타지에선 “부산이 상어까지 섭외했다”는 부러움도 나왔다.
북항은 그저 거들 뿐이었지만 반사이익은 컸다. 하루 2000명 안팎 찾던 북항에 관심이 쏟아졌다. 키워드 ‘북항’의 구글 검색량 지수는 부캉이가 등장한 지난 18일 갑자기 50을 넘겼다. 그 전엔 10을 넘긴 날도 거의 없었다. 온·오프라인으로 부캉이 소식이 퍼지더니 추석 당일엔 최고치인 100을 찍었다. 전재수 부산시장은 “수조 원을 들여도 안 되는 홍보”라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부산의 미래’라는 북항과는 사정이 다른 또 하나의 공간도 연일 화제다. ‘부산의 과거’를 품은 구포시장이다. 1000원짜리 몇 장으로 저녁거리를 마련하고 7000원에 수북이 담긴 수육 접시가 내어지는 ‘어른들의 공간’이 연일 언론과 SNS를 장식했다. 구포시장을 불러낸 것은 한동훈이라는 정치인이다. 그는 6·3 보궐선거 때 구포시장을 무대로 상인들과 스킨십을 나누더니 당선 후엔 상인들이 마련한 ‘구포데이’ 축제에 일일 가이드를 자처했다. 추석 선물로는 구포국수를 돌렸다. 그 덕에 구포시장은 한층 친근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두 사례는 그야말로 우연히 부산 그대로의 모습이 드러난 경우다. 축제나 이벤트 같이 잔뜩 힘을 주고 준비한 것도 없다. 일상 공간이 캐릭터나 스토리를 만났을 뿐인데, 신드롬이 됐다. 여기에 대중이 반응하고 놀이처럼 소비하면서 공간 가치가 폭발적으로 뛰었다. 흥행의 이면도 있다. 주인공은 북항이나 구포시장이 아니었다. 상어와 정치인이라는 외적 자극이었다. 즉 관심에서 멀어지고, 캐릭터가 떠나면 일순 식어버리는 신기루일 수 있다.
그럼에도 이번 소동을 그냥 흘려보내긴 너무 아깝다. 몇 가지 가능성만이라도 붙잡자. 우선 북항과 구포시장, 두 일상 공간이 시민들에게 이전과는 다르게 다가서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시민들은 언제라도 찾을 수 있다고 여긴, 하지만 잘 가지 않는 공간에서 차별화된 경험을 하는, 새로운 가치를 확인했다. 부산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는 자부심도 작용했다. 일상 공간이 새로운 브랜드가 될 수 있음을 본 것이다.
북항은 최근 돔구장 덕에 시민 곁에 한걸음 다가섰지만 아직 낯선 공간이었다. 부캉이는 이런 북항에 대한 심리적 문턱을 확 낮췄다. 이 대목에서 북항에는 오페라하우스나 랜드마크 같은 하드웨어에 더해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그중 하나가 역사와 바다, 시민이라는 북항의 자산을 바탕으로 시민들이 만드는 독창적 내러티브가 될 수 있겠다. 구포시장은 그 자체로 서민 삶의 온기와 정서적 자산을 갖춘 훌륭한 원천 스토리다. 특정 인물이 시장을 띄웠다면 이제 시민과 상인들이 시장이 품은 가치를 다시 읽어내 새로운 정체성을 더하는 과정이 이어졌으면 한다.
비슷한 사례는 많다. 인터넷 ‘밈’을 위트 있게 비틀어 수십만 방문객을 모으는 경북 김천시의 ‘김천 김밥축제’나 지명에서 착안해 B급 감성 캐릭터로 성공을 거둔 경기 고양시의 ‘고양고양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사례의 성공 방정식은 대중이 스스로 찾고 즐길 수 있는 스토리의 옷을 입혔다는 공통점이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여러 지자체의 시도가 한때 흥행으로 그친 일도 부지기수다. 관건은 공간과 사람이 지속해서 관계를 맺으며 서사를 축적할 수 있느냐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북항의 예에서 보듯 단순히 시설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는 방식은 한계가 분명하다. 공간에 과거와 오늘, 미래의 이야기를 담고, 때론 디자인을 더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반응한다.
나아가 부산의 공간들을 새롭게 보는 작업도 필요하다. 외국인도 ‘부산 앓이’를 할 만큼 부산엔 역사와 문화, 사람, 다시 말해 ‘부산다움’이 넘친다. 곳곳의 공간에 다시 주목해 고유성을 읽어내고, 그 위에 이야기와 사람, 문화와 예술을 겹겹이 쌓아 보자. 이런 노력이 더해지면 이번 소동은 부산의 공간들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를 모색하는, 훌륭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김영한 논설위원 kim01@busan.com
김영한 논설위원 kim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