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날마다 날마다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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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용 소설가
반복되는 날들 빈틈없이 살다가
늘어지는 생활의 오후가 오면
우리는 모두 강정(江亭)으로 간다

별일 없으면 아침에 일어나 옥상으로 간다. 옥상 밭에 슥 물 주고 고추 토마토 몇 개, 애호박 가지 한두 개, 깻잎 몇 장 따서 평상에 앉는다.

앉아서 멍하니 있으면 금동이와 멍군이(고양이들)가 와서 들러붙는다.

몇 번 쓰다듬고 옥상 너머로 보이는 풍경들을 감상한다. 다닥다닥 붙은 주택가이다 보니 보면 가끔 이웃의 생활을 목도하기도 한다. 그날은 연일 이어지는 폭염을 핑계 삼아 옥상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더위 탓에 옆집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창문 너머로 옆집 할머니가 더위를 감탄했다.

“아이고, 이 나이가 돼도 아직 놀랠 일이 있네. 우째 이리 덥노” 하고 멋쩍게 웃으며 며느리를 힐끗 쳐다본다.

며느리는 그저 손주를 향해 부채만 펄럭이고 있다. TV에는 WWF 레슬링 선수 ‘존 시나’가 피니쉬를 날릴 준비 동작을 하고 있고, 할머니는 “시나 잘한다”하고 박수를 짝짝짝 친다.

이내 ‘존 시나’의 피니쉬가 작렬하고 며느리는 손자의 눈을 가리고 미간을 찡그린다.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머릿속에 한 문장이 툭 불거졌다.

‘짜증이 곰팡이 피는 오후 한 때.’

그간의 경험으로 봐서 이렇게 갑자기 툭 불거진 문장 뒤에는, 무언가가 따라오거나 피어난다.

어디서 읽었더라? 생각을 떠올리니 장정일의 시(詩) ‘강정 간다’(1984년 무크지 〈언어의 세계〉에 발표한 등단작)가 따라왔다. 나는 집 앞 도로에도 한바탕 물을 뿌리며 강정(江亭)을 생각했다.

이 시에서 강정은 강변의 정자(亭子)다. 사각 혹은 팔각의, 원두막보다는 규모가 있는, 어느 유원지나 하나는 있을 법한, 양반들이 쉬어가며 곰방대나 태웠을 법한, 그런 정자다. 그곳은 생활의 지난함을 벗어난 세계여서, 남들처럼 열심히 살지 못해도 죄송할 필요는 없는 자유로운 세계다. 물론 상상의 세계다.

시적 화자는 ‘직할시 변두리와 숨막힌/스레이트 지붕 아래 찌그러진 생활로부터’의 탈출을 꿈꾼다.

직할시는 장정일이 살았던 대구일 것이고, 대구는 폭염으로 유명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시적 화자는, 생활의 지난함을 달래기 위해 상상일지언정, 숨 막히는 찌그러진 생활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한다. 우리도 모양새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나 시간 위를 걷다 보면 낯선 풍경에 종종 숨이 막힐 때가 있다. 매일 매일 날선 뉴스들은 아무것도 참지 않는 말들을 뱉어 버리고, 가끔은 아인슈타인도 모르는 상대성 절망을 만나 애꿎은 소주만 마시다가, 그럴싸한 오르가즘 따위 모르는 생활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알 수 없는 삶이 기본값 아니냐며 큰 소리도 쳐보고 싶을 때, 그럴 때마다 우리는 모두 강정(江亭)을 상상한다.

‘알고 보면 사람들은 모두 강정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장정일이 말한 것처럼 말이다.

이 순간에도 지구와 우주는 돌고, 덩달아 계절도 밤낮도, 그 속에 든 우리들도 돈다. 그렇게 빈틈없이 돌며 산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강정이 필요한 것일까. 길게 늘어지는 생활의 오후가 와서 짜증이 곰팡이처럼 피어날 때, 우리 마음은 언제나 강정(江亭)으로 간다. 시원한 수박이 있고 서늘한 햇빛이 둘러쳐진, 벗은 몸과 벗은 생활이 넘실대는, 바람이 먼저 가서 놀다 가고 생활이 뒤따르는, 강정으로 간다. 마음은 날마다 날마다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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