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윤의 세상톡톡] 호남 차별론과 소외론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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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가
차별과 기여의 결과물이라면
타 지역 차별과 기여 존재하면
천문학적 투자 또 유도할 텐가
그 발언이 바로 소외론의 온상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한때는 그것이 대충이라도 해치우고 보자는 식의 부실과 연결되는 부정적 이미지로 소비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칼같이 납기를 맞춘다는 식의 의미로 변화해 방위산업 수출 등에서 긍정적 이미지로 변화하는 중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근대화에 뒤처진 대한민국이 걸어온 길을 보자면 ‘빨리빨리’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 듯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국민의 DNA에 박힌 듯한 속도전의 흔적은 올 들어 더욱 가속화하는 모양새다. 건국 이래 이런 수준의 속도전이 펼쳐진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그 속도전의 주인공은 바로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이다.

이재명 정부는 지난 6월 갑자기 호남권 800조 원 규모 투자를 골자로 한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 프로젝트를 통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전공정 공장 설립 추진 계획이 나온 지 불과 열흘도 지나지 않아 정부는 광주 군공항을 반도체 공장 부지로 확정했다. 건국 이래 최대 규모 사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수 있는 이 사업은 그 추진 속도만으로도 역사에 기록될 수준이라 할 것이다.

수도권에 투자를 몰아왔던 과거와 비교해 보면 비수도권에 국운이 걸린 초대형 사업 유치를 적극 추진하려는 이재명 정부의 의지는 분명 돋보인다. 비수도권에도 수백조 원 수준의 투자가 이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젖힌 것만으로도 큰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거기에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의 속도까지 더해졌으니 추진력에도 후한 점수를 주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렇게 굳은 의지와 돋보이는 속도전으로 이목을 끌던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사업은 이재명 대통령의 한마디로 인해 ‘정치적’이라는 평가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이 대통령은 6월 30일 광주를 방문해 ‘서남권 첨단산업 발전 비전 국민보고회’를 가진 자리에서 호남 반도체 산단을 “차별의 고통과 설움을 견뎌내며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만들고 지켜온 호남에 대한 역사적, 국민적 보상”이라고 규정했다. 반도체 산단 입지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전력과 용수 문제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은 호남 지역이 장기간 개발에서 소외되면서 기존 수도권 인프라 한계를 극복할 대안이 됐다고 말했다.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의 필연적 이유를 앞세워 설명한 것이 아니라 ‘차별론’을 부각시킨 이 대통령의 발언은 당장 ‘소외론’을 불러일으켰다. 같은 호남지역인 전북에서까지 전북 소외론이 불거질 정도였으니 타 지역에선 더욱 거센 소외론이 등장했다. 야당에서는 정치적 지역 갈라치기라는 날선 비판까지 쏟아졌다.

이 대통령의 차별론이 정치적 지역 갈라치기라는 비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에 대한 차별은 없었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혹시 차별이 있었더라도 그 차별이 호남의 민주주의 수호론처럼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를 살펴야 할 터이다. 만약 다른 지역에서 차별이 발견이 되고 그로 인한 결과가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그땐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각을 잠시 동남권으로 돌려 보면 지난해 기준 부산·울산 경계 지역에는 가동중인 원전 9기에다 건설중인 원전 1기를 보태 모두 10기의 원전이 밀집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처럼 좁은 지역에 원전이 10기나 밀집해 있는 경우는 없다. 고리 원전만 해도 반경 30km 안에 무려 380만 명이 산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후쿠시마 원전 주변 인구의 22배 규모다. 한때 “수도권은 인구 밀집 지역이어서 원전 건립에 적절치 않다”는 원전 최고위 관계자의 말이 인구에 회자된 적이 있었다. 그 말에 비춰 보면 세계 최대 원전 밀집지역 인근의 부산을 비롯한 동남권 국민들은 원전 건립 부적절의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뜻이 된다. 핵 폐기물까지 둘 곳이 없어 원전에 가득 쌓아두고 있는 현실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를 차별이 아니라 하긴 어려울 듯하다.

여기에다 이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는 산야에 끝도 없이 박힌 송전탑을 타고 전기 최대 사용처인 수도권으로 공급된다. 수도권이 대한민국 발전의 중추 역할을 맡아 왔다면 그 배후엔 전력 공급처인 동남권의 희생과 기여가 지대했다고 봐야 한다. 동남권 차별로 인한 결과로서 높이 평가할 만하지 않은가.

지역 균형발전을 이끌 초대형 투자의 이유를 차별론에서 찾는 것은 이 같은 함정에 빠질 위험이 매우 크다. 당장 동남권에도 차별과 기여를 이유로 천문학적 투자를 유도할 것이 아니라면 대통령은 그냥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유치의 합당한 이유만 설명하는 게 옳았다. 너도나도 차별을 이유로 투자를 요구할 빌미를 대통령이 앞장 서서 제공한 건 두고두고 아쉬울 대목이다.


이상윤 논설위원 nurum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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