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규의 법의 창] 이혼과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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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유) 정인 변호사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떠난 아내가 있었다. 남편의 폭력을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했고, 결국 어린 딸과 함께 새로운 곳으로 몸을 피했다. 법원으로부터 남편의 접근과 연락을 제한하는 보호조치까지 받았다. 누구보다 안전해야 할 사람이었다. 지난 1일 경기도 광주에서 이 여성은 이혼소송 중이던 남편에게 흉기에 찔려 숨졌다. 보도에 따르면 남편은 이혼소송 서류를 통해 아내의 새 거처를 파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건은 한 가정의 비극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법원으로부터 접근 금지 등 보호조치를 받던 피해자의 위치가 이혼이라는 법적 절차를 밟는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알려질 수 있다면, 법이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고 있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혼소송 중 주소 노출로 피해자 발생

신청 안 해도 주소 비공개 여부 심사를

국가가 먼저 살필 안전 문제로 인식해야

가사소송은 일반적인 민사소송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혼소송은 부부관계의 해소와 더불어 자녀의 양육과 친권, 면접 교섭, 재산분할, 위자료 등 한 사람과 가족의 삶 전체를 다룬다. 가정폭력이나 스토킹이 개입된 사건에서 상대방은 단순한 소송 당사자를 넘어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소송서류에 기재되는 주소 역시 일반적인 개인정보와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 된다.

현재 가사소송 절차에 관하여는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사소송법을 따르게 되어 있다(가사소송법 제12조). 민사소송법에는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는 마련되어 있다. 문제는 ‘신청주의’다. 현행 민사소송법은 소송관계인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입을 우려가 있는 경우에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주소 등 개인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절차를 두고 있다(민사소송법 제163조 제2항).

법률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이혼소송을 처음 시작하면서 ‘주소 비공개’라는 별도의 절차까지 알고 있기는 힘들다. 더구나 가정폭력을 피해 급박하게 집을 떠난 사람에게 “주소가 상대방에게 알려질 수 있으니, 별도로 비공개 신청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충분한 피해자 보호라고 할 수 있는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위험한 사람에게 내 주소가 알려지지 않게 해달라는 것은 피해자가 특별히 요구해야 할 권리가 아니라, 국가가 먼저 살펴야 할 안전의 문제다.

재판을 위해 당사자의 주소를 확인해야 할 필요가 있고, 소송서류를 송달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그러나 법원이 주소를 알아야 한다는 것과 상대방에게 실제 거주지를 알려줘야 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가사소송의 개인정보 보호도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첫째, 가정폭력·스토킹 등 위험성이 확인된 이혼 사건에서는 주소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경찰 신고나 접근금지명령 등 보호조치가 확인되면 피해자가 별도로 신청하지 않더라도 법원이 직권으로 주소 비공개 여부를 심사하도록 해야 한다. 나아가 주소 비공개 제도를 ‘신청제’에서 ‘원칙적 비공개·예외적 공개제’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둘째, 실제 주소와 송달 주소를 분리해야 한다. 재판을 위해 법원은 실제 주소를 확인하되, 상대방에게는 법원이나 변호사 사무실 등 안전한 송달장소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셋째, 수사기관과 법원 사이의 필요한 범위 내 정보연계를 강화해야 한다. 이미 고위험 가정폭력 피해자로 판단되었거나 접근 금지 등 보호조치가 내려진 사건이라면 필요한 범위에서 법원이 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법률대리인이 없는 피해자에 대한 안내를 의무화해야 한다. 소장 접수 단계에서 주소 등 개인정보 보호조치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리고, 위험 징후가 발견되면 단순한 안내에 그치지 않고 법원이 먼저 보호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법원은 한쪽에서 남편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명령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소송서류를 통해 피해자가 어디에 사는지를 알게 할 수밖에 없었는가. 접근하지 말라는 명령과 찾아갈 주소를 알려주는 절차가 동시에 존재한다면, 그 제도 사이에는 분명히 다시 살펴야 할 지점이 있다. 이번 사건에서 실제 주소가 어떤 경로로 노출되었는지, 그리고 그 주소 노출과 범행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었는지는 밝혀져야 한다. 그러나 가사소송 과정에서 피해자의 주소가 안전을 위협하는 정보가 될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법은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절차이지만, 가사소송에서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새로운 주소는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일 수 있다. 이혼소송을 통해 가정폭력을 피해 숨어 있던 곳이 드러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두 번 다시 이혼소송 서류가 범죄의 내비게이션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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