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조선제일검' 한동훈의 존재감 증명
김승원 정국 시작부터 끝까지 이끈 韓
與 물론 野 견제에도 홀로 전투력 입증
그럼에도 야권 내 지지 기반은 정체
능력 탁월하나 ‘저격수’ 이미지론 한계
비슷한 유형 리더들 실패 거울 삼아
사람 마음 얻는 정치로 진화 기대
20일간 이어진 김승원 법무부장관 후보자 사퇴 정국은 검사 시절 ‘조선제일검’으로 불린 한동훈의 독무대였다. 김 후보자의 ‘신약 임상시험 승인 청탁 의혹’을 시작부터 끝까지 주도했고, 결국 낙마를 이끌어냈다. 여권 지도부와 스피커들의 십자포화는 물론 국민의힘 내부의 시기 어린 견제에도 홀로 맞섰다.
수사 기록 입수 과정의 불법성은 차차 진위가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자료가 있다고, 검사 출신이라고 해서 누구나 한 의원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상대의 예상된 반격을 파훼하는 자료를 순차 공개해 결국 궁지로 모는 영리함, ‘메신저’를 공격하는 여권 인사들의 모순된 과거를 적시에 소환해 받아치는 기억력과 순발력은 여야 ‘저격수’ 중에서도 발군이라 할 만하다.
한 의원도 자신의 성취에 고무된 듯하다. ‘수사 기밀 유출’ 의혹을 제기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모두 상대해 줄 테니 나오라”고 호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말도 거칠어졌다. “9억 받아 처먹지 않았나”, “브로커가 보고 싶어 흘리는 눈물이냐” 등. 표현이 심하다는 지적에는 “민주주의 적들과 혈혈단신으로 싸울 때 정치인의 품격은 진흙탕에 뛰어들어 진흙탕에 빠질 위기에 있는 국민을 구하는 것”이라고 받아쳤다. 제3자에겐 ‘자아 팽창’의 조짐이 보여 불편했지만, 열성 지지자들에게는 장판교에서 수십만 대군을 홀로 맞서는 조자룡의 현신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한 의원에게 ‘되치기’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것 같다. 잘 알려지다시피 그는 술을 먹지 않고, 집안이 부유해 돈에 대한 아쉬움도 없다. 정치인들을 종종 허방에 빠트리는 단골 시빗거리에서 원천적으로 자유롭다. 자신에게 열광하는 팬덤과의 관계도 불편한 일을 막기 위해 철저하게 거리 두기를 한다. 빈틈을 찾기 힘들다.
당권파들의 한 의원에 대한 공격이 힘도, 논리도 없어 보이는 이유다. 공익 목적이라는 청탁의 불법성을 부각하기 위해 사용한 ‘오빠’ 단어를 물고 늘어지고, ‘복당은 절대 없다’더니 이번에 자신들과 팀플레이를 하지 않았다고 탓하는 수준이다.
한 의원의 이번 저격수 데뷔는 장동혁 당권파를 향한 무력 시위로도 읽힌다. ‘잘 싸우는 사람으로 당을 채우겠다’며 한 의원을 비롯해 친한계를 몰아내고 있는데, 정작 당 밖 한동훈이 당내 100여 명 의원보다 더 잘 싸웠다는 평가가 나오니 말이다. 당권파로서는 꼬인 속이 더 꼬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엇나간 감정의 표출은 한 의원의 ‘핍박 서사’만 늘려줄 뿐이다.
그러나 좀 길게 생각하면 ‘저격수 한동훈’으로서의 존재감이 ‘대권주자 한동훈’에게 어떤 유익을 줄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김 후보자 낙마는 보수 진영 전체로 보면 대단한 전리품이지만, 친한계 일부를 제외하고는 한 의원의 성취에 대한 국민의힘 내부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다. 당권파들은 시기·질투로 치부될 것을 알면서도 맹목적인 적개심을 감추지 않는다. 한 의원은 ‘윤 어게인’ 세력에 맞서 ‘윤 탄핵’에 앞장선 자신이 감당해야 할 업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탄핵에 찬성했던 의원들 중에도 한 의원의 복당 이후에 대한 염려를 표출하는 이가 적지 않다.
사실 한 의원과 비슷하다고 볼만한 유형의 정치 지도자가 있었다. 보수 진영에서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대표적이다. 정국을 꿰뚫는 촌철살인의 언변은 진보 진영에서도 한 수 접을 정도였다. 그러나 우군도 수틀리면 적으로 만드는 홍 전 시장은 주변과 불화가 끊이지 않았고, 결국 ‘당심’을 얻지 못해 대권가도에서 멀어졌다. 최근 친명계의 공적이 된 진보의 유시민 평론가도 있다. 발군의 토론 능력은 보수에서 맞상대를 꺼릴 정도였지만,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하는 재주’는 정치 인생 내내 발목을 잡았다.
사실 지금 여의도 정치에서 덕, 포용력 같은 지도자 자질을 거론한다는 게 어색하다. 조롱·혐오 표현까지 불사해 상대를 바닥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능력이 ‘엄지척’을 받는 시대다. 통합의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는 당위는 인정하면서, 거기로 가기까지는 극단적 진영 논리를 따라야 하는 거대한 모순. 그 속에서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은 행로는 안갯속을 걷는 것 마냥 혼란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잘 싸우는 사람이 여의도 판을 쥐고 흔든 이후로 우리 정치가 한 걸음이라도 나아졌는지, 국격이 한 뼘이라도 커졌는지 정치권은 물론 유권자들도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국회 등원한 지 이제 100여 일 지난 초선 의원 한동훈에게 너무 과도한 요구일 수 있겠다. 다만 많은 사람들에게 ‘잘난 건 인정하지만, 잘 되는 건 탐탁지 않은’ 이미지가 왜 만들어졌는지 한 의원도 성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결국 정치인에게 최종 승리는 더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창훈 서울정치부장 jch@busan.com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