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진규의 법의 창] 위자료와 재산분할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법무법인(유) 정인 변호사

연일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올여름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뜨겁게 달군 것은 날씨만이 아니었다. 최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파기환송심 판결은 수천억 원에 이르는 재산분할 규모로 큰 화제가 됐다. 대부분의 언론은 ‘9000억 원대 재산분할’이라는 금액에 주목했고, 사람들은 “이혼하면 저렇게 큰돈을 받는 것이냐” “위자료도 저만큼 받는 것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우리에게 준 의미는 금액의 크기만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혼동하는 ‘위자료’와 ‘재산분할’은 법적 성격과 청구권의 근거가 서로 다른 제도라는 점을 확인시켜 주었다.

가사사건을 상담하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배우자가 외도를 했으니 재산도 못 가져가는 것 아닌가요?” 또는 “위자료를 많이 받으면 재산분할도 많이 받는 것 아닌가요?”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는 않다.

최태원·노소영 이혼소송으로 관심

‘잘못에 대한 책임’ ‘결실 공평한 분배’

법적 성격·청구권의 근거 서로 달라

이혼과 관련해 법원이 인정하는 대표적인 재산상 청구에는 위자료와 재산분할이 있다. 그러나 두 제도는 비슷한 내용으로 생각되지만 법적 성격과 판단 기준이 서로 다르다. 위자료는 상대방의 잘못으로 입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이다. 배우자의 외도나 폭력 등으로 혼인이 파탄에 이르렀다면 그 책임을 금전으로 배상하는 제도다. 따라서 혼인 관계가 누구의 책임으로 파탄에 이르렀는지가 중요한 판단 요소가 된다. 반면 재산분할은 손해배상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혼인 생활 동안 부부가 함께 모은 재산을 청산하고, 공평하게 나누는 제도다. 여기서는 잘잘못보다 재산 형성에 얼마나 기여했는지가 중요하다. 여기서 기여는 경제활동은 물론 가사 노동과 자녀 양육, 배우자의 경제활동을 뒷받침한 노력, 재산의 유지·관리 등에 대한 기여도 함께 고려된다. 쉽게 말하면 위자료는 ‘잘못에 대한 책임’이고, 재산분할은 ‘함께 이룬 결실의 청산과 공평한 분배’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래서 혼인 파탄의 책임이 인정되더라도 재산분할을 받을 권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혼인 파탄의 책임이 없다고 해서 거액의 재산분할을 받는 것도 아니다. 법원은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각각 다른 기준으로 판단한다. 실제로 대법원은 ‘혼인 관계 파탄의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라고 하더라도 혼인 중 쌍방의 협력으로 형성한 재산이 있다면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 있다’고 판시해 왔다.

최태원·노소영 사건도 이를 잘 보여준다.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위자료 20억 원 부분은 상고기각하여 확정하면서 재산분할 부분만 파기환송했다. 이에 따라 서울고법은 파기환송심에서 분할 대상 재산과 양측의 기여도 등을 다시 심리했고, 지난 7월 24일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9440억 원을 재산 분할금으로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같은 이혼소송에서도 두 제도가 서로 다른 법리에 따라 판단된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원칙은 우리나라만의 특징이 아니다. 일본 민법 제768조 역시 이혼 후 부부 사이의 재산상 형평을 위해 혼인 중 취득·유지한 재산과 각자의 기여 정도 등을 고려하여 재산분할을 정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혼인 중 형성된 재산을 공정하게 나누는 ‘형평분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독일은 혼인 중 증가한 재산을 비교해 차액을 정산하는 ‘이익증가분 정산 제도’를 두고 있다. 영국 역시 판례를 통해 경제적 기여뿐 아니라 가사와 자녀 양육 등 비경제적 기여도 재산분할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원칙을 발전시켜 왔다. 국가마다 제도는 서로 다르지만, 공통된 원칙은 같다. 재산분할은 배우자의 잘못을 두고 보상하거나 처벌하는 제도가 아니라, 혼인이라는 공동생활을 통해 형성된 재산관계를 청산하는 제도로서의 기능이 강하다. 즉 혼인 파탄의 책임과 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는 서로 다른 법적 질문이다.

이혼은 이제 특별한 일이 아니라 법적으로 정리해야 할 삶의 한 과정이 되었다. 그럴수록 정확한 법률 지식이 중요하다. 인터넷 정보나 주변의 경험만 믿고 자신의 권리를 오해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감정은 억울할 수 있지만 법은 원칙으로 판단한다.

무더운 여름은 지나가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이혼소송도 시간이 지나면 잊힐 것이다. 그러나 법의 원칙은 변하지 않는다. 위자료는 책임을 묻는 제도이고, 재산분할은 함께 살아온 시간과 노력의 가치를 기여에 따라 공평하게 나누는 제도다. 둘 다 돈으로 지급되는 경우라도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법은 감정을 외면하지 않는다. 다만 감정을 원칙으로 다스릴 뿐이다. 분노에는 책임을 묻고, 헌신에는 정당한 몫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법이 공정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이혼은 관계의 끝일 수 있지만 법의 끝은 아니다. 관계가 끝나는 순간에도 법은 책임을 묻고, 기여를 평가하며, 각자의 새로운 출발을 위한 공정한 기준을 세운다.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