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하주의 AI 톡]AI 데이터센터 시대, 전력은 정치다
부경대 컴퓨터·인공지능공학부 교수
데이터센터 전기 분쟁이 미 선거 이슈
AI는 알고리즘·기술 개발 담론 넘어서
에너지·산업·환경 결합 과제 풀어내야
최근 미국 정치권에서는 흥미로운 이슈가 부상하고 있다. 올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AI 데이터센터 건설 문제가 주요 정치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 전역에서는 현재 1500곳 이상의 데이터센터가 계획 또는 건설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주요 경합 선거구를 중심으로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 계획이 추진되면서 주민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전기요금 상승, 송전망 부담 증가, 냉각수 사용 확대, 환경 훼손 등을 우려하는 지역 주민들과 빅테크의 정치 후원금 사이에서 후보들이 줄타기하는 상황이다. 인공지능 시대 국가 경쟁력이 AI 데이터센터의 확보에 달려있다고 볼 때, 중국과 경쟁하는 미국의 정치권 입장에서는 유권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기에 국가 경쟁력 확보만을 내세울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AI 확산에 따른 일자리 감소를 앞으로 닥쳐올 가장 큰 사회적 갈등 요인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미국 사회에서는 전력과 환경 문제가 더 직접적인 정치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AI가 더 이상 추상적인 기술 담론에 머물지 않고 지역의 전기요금과 물 사용, 환경 문제로 내려온 것이다.
AI 산업이 막대한 전력을 소비하는 이유는 초거대 언어모델(LLM)의 개발과 서비스 운영 그리고 GPU를 포함한 장비의 냉각을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LLM의 개발을 위한 학습 과정만 해도 수만 개의 GPU가 장착된 데이터센터를 수개월 동안 24시간 가동한다. 여기에 전 세계 수억 명의 이용자가 동시에 생성형 AI 서비스를 사용할 때 발생하는 추론 연산을 위한 계산 과정에서 전력 소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 뿐만 아니라 AI 반도체가 발생시키는 막대한 열을 식히기 위한 냉각 설비를 가동하기 위해서도 대량의 전력과 물이 있어야 한다. AI 데이터센터는 대체로 기존 데이터센터보다 훨씬 많은 냉각 자원을 사용하는데, LLM 서비스 운영 에너지에 상응하는 에너지를 냉각에 사용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지난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전체 전력 공급량의 2% 정도였으나 이 수치가 2030년에는 약 8%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막대한 전력이 있어야 동작하는 대표적인 전력 집약 산업이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에너지 산업의 판도까지 바꾸고 있다. 한때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확산 속에서 사양 산업처럼 여겨졌던 원자력 발전이 다시 주목받는 그것도 이 때문이다. AI 산업은 대규모의 안정적인 전력이 필요하다.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출력이 달라지는 전력원으로는 초대형 데이터센터의 수요를 감당하기 어렵고 안정적인 기저 전력원이 필수적이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과 각국의 정부가 올해부터 소형 모듈 원자력(SMR) 기술 개발과 설비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유이다.
한편, 원자력 발전의 확대를 위해서는 수년 이상의 시일이 걸릴 것이므로 시급한 전력 공급 확대를 위해 화력 발전을 늘리려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며칠 전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석탄 산업 부흥을 위해 1조 원 이상의 예산을 투입하기로 밝히고, 이 조치의 목적 중 하나가 AI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것이라 주장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조치를 신속하게 수행하기 위해 ‘국방물자생산법’을 동원했다는 점이다. 이 법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신속한 군수품 조달을 위해 제정된 것으로 국가 비상사태 시에 대통령이 필수 물품을 생산하고 공급할 수 있도록 지시할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법을 통해 의회의 승인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예산을 집행할 수 있게 했다. 여기에는 다양한 정치적 셈법이 포함되었을 것이나 미국 정부 차원에서 AI 산업을 신속하게 지원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동안 AI 산업의 경쟁이 데이터 확보와 GPU 확보에 집중됐다면, 이제는 안정적인 전력 확보 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다. 전력이 AI 산업의 단순한 비용 요소가 아니라 핵심 경쟁력이 된 것이다. 산업화 시대의 경쟁력이 제철소, 자동차 공장, 조선소에서 나왔다면, 인공지능 시대의 경쟁력은 데이터센터에서 나온다. 그리고 데이터센터의 생명선은 전력이다. 미국에서 데이터센터가 선거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인공지능 시대의 패권은 알고리즘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결국 AI를 움직이는 것은 전기다. 새로운 경쟁의 전장은 반도체 공장뿐만 아니라 발전소와 전력망으로 옮겨가고 있다. AI는 이제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에너지와 산업, 환경과 지역사회가 맞물린 총체적 과제가 되었다. 앞으로 AI 경쟁의 승자는 가장 뛰어난 모델을 만든 나라가 아니라 가장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나라가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