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우리가 본 것은 전쟁의 전부가 아니다
영화평론가
이라크 라마디에 갇힌 미 네이비실
2층 민가를 점거해 살아남기 위한 분투
통신병이었던 감독이 전하는 전쟁 참상
영화 '워페어' 스틸컷. (주)올랄라스토리 제공
우리는 가끔 자신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할 때가 있다. 뇌는 충격이 클수록 그 순간을 붙잡아두지 못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그날의 진실은 과연 누가 말할 수 있는 걸까. 아마도 같은 기억을 나눠 가졌던 이들이 증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워페어’의 연출을 맡은 레이 멘도사는 2006년 11월 이라크 라마디에서 네이비실 대원으로 복무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와 함께 복무했던 엘리엇은 폭발 사고로 크게 다쳐 정작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멘도사는 그가 평생 궁금해할 그 날의 시간을, 함께 있었던 자신과 동료들의 기억을 그러모아 되돌려준다. 그렇게 알렉스 가랜드와 공동연출한 ‘워페어’는 상상이나 취재가 아닌, 실제 참전 당사자들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날을 재구성한다.
영화는 알파원 소대가 라마디의 2층짜리 민가를 관측기지로 점거하는 데서 시작한다. 1층과 2층에는 잠들어 있던 현지 가족들이 있고, 대원들은 이들을 방 한구석으로 몰아넣은 채 통역관에게 진정시키는 일을 맡긴다. 그러나 평온한 정찰은 오래가지 못한다. 수류탄 하나가 저격수의 방으로 날아들면서 알파원은 삽시간에 무장세력의 집중 공격을 받고, 뒤이은 폭발로 저격수 엘리엇과 부사관 샘이 다친다. 이제 남은 대원들에게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다. 중상을 입은 두 사람을 무사히 후송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임무가 된다.
영화는 전쟁의 명분이나 급박한 상황을 설명하지 않는다. 인물들이 어떤 사연으로 군복을 입었는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감정을 부추기는 음악도 거의 없다. 좁은 공간 속에서 대원들의 거친 숨소리를 바짝 따라갈 뿐이다. 침묵과 비명, 굉음이 예고 없이 교차하는 가운데, 관객은 다음 장면을 예측하기보다 인물들과 함께 그 시간을 견딘다.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생각할 틈조차 없이 그저 살아남아야 하는 순간과 마주한다.
다만 이 기억이 공정한 것인지는 다른 문제다. 카메라가 오래 머무는 곳은 대원들의 경직된 얼굴과 다친 몸이다. 정작 한밤중에 군인들에게 집을 내주고 겁에 질린 가족들, 그리고 두 언어 사이에서 가족을 다독여야 했던 통역관의 두려움은 가장자리에 머문다. 기억은 언제나 그것을 붙든 사람의 자리에 있다. 이러한 영화의 시선에는 두 감독의 서로 다른 경험이 겹쳐 있다. 실제 전쟁을 겪은 레이 멘도사는 전역 후 군사자문으로 전쟁영화의 현장을 경험했고, 알렉스 가랜드는 전쟁을 카메라에 담았다. 한 사람은 실제 전장을 통과했고, 다른 사람은 전쟁을 상상했다. ‘워페어’는 그 두 시선이 만나는 자리에서, 한 사람의 기억을 다른 이들의 기억으로 되돌려놓는다.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카메라는 처음으로 방향을 바꾼다. 대원들이 떠나고 난 뒤, 집의 진짜 주인이 폐허가 된 거실을 걸어 나온다. 매캐한 연기 사이로 유령처럼 존재하던 반군들도 마침내 실루엣을 벗고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던 이들이, 마지막 순간에야 화면 한가운데 선다.
그 짧은 장면 앞에서 뒤늦게 깨닫는다. 우리가 절박하게 숨죽이며 함께 견뎠던 그 90여 분은, 그날의 전부가 아니라 수많은 기억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라는 것을. 그 집에는 원래 살던 사람들이 있었고, 연기 속에는 우리가 끝내 이름조차 알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워페어’는 그 사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한 장면으로, 지금까지 보여준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의심이야말로, 이 영화가 관객의 마음에 오래 남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