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북극항로는 데이터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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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용철 국립부경대 공과대학 학장 한국지리정보학회 회장

결빙·해빙 반복하는 북극해 바닷길
22일 팬스타 아크로호 대장정 시작

항행 정보 축적·분석 능력이 경쟁력
위성 관측·기상·해류 정보 수집해서
항로 지속적 갱신해야 안전성 확보
지역 산학연 공동 활용·연구 필수적

이틀 뒤인 8월 22일, 부산항에서 북극을 향한 뱃고동이 울린다. 팬스타그룹의 컨테이너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부산을 출항해 북극해를 지나 영국 펠릭스토우를 첫 기항지로 삼아 로테르담과 그단스크를 거쳐 돌아오는 40여 일에 걸친 항해에 나선다. 수에즈 운하를 거치는 기존 항로보다 짧은 새로운 바닷길이다. 홍해 사태로 글로벌 물류망의 취약성이 드러난 지금, 새로운 항로 확보는 무역 국가의 공급망 안보와 직결된다. 이번 항해는 부산의 해양수도 구상을 북극으로 확장하는 중요한 시험대이기도 하다.

이 출발점에서 우리는 묻게 된다. 북극항로 시대의 진짜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많은 이들이 쇄빙선과 항만 인프라, 물류망과 인력을 떠올린다. 모두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북극해에서는 해빙 상황에 따라 안전한 항로가 수시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로 급변하는 극지 환경에서 북극해의 얼음은 고정된 장애물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변수다. 어제 열려 있던 길이 오늘은 얼음벽으로 막힌다. 극지에서는 위성 관측과 기상·해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항로를 지속적으로 갱신해야 한다. 상당수 해역은 수심과 지형, 장애물을 담은 정밀한 해도가 부족하고, 고위도에서는 통신과 항법 정보의 안정적인 확보도 쉽지 않다. 결국 북극항로에서 배를 움직이는 것은 엔진이지만, 그 배를 지키는 것은 데이터다.

문제는 이 데이터를 누가 확보하고 통제하느냐에 있다. 러시아는 국영기업 로사톰을 중심으로 운항 허가와 쇄빙 지원, 항행 정보를 관리한다. 중국은 지난해 시험 운항에 이어 올해 닝보와 유럽을 잇는 정기 컨테이너 서비스를 시작해 항행 경험과 데이터를 빠르게 축적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도 극지 관측과 해빙 예측 역량을 꾸준히 강화하고 있다. 우리 역시 해빙 관측과 예측 기술을 축적해 왔지만, 실제 북극항로 운항에서는 러시아 측 정보와 운항 지원에 대한 의존을 피하기 어렵다. 핵심 운항 데이터를 충분히 축적하지 못한 채 상업 운항에 나서는 것은 남이 그려준 항로를 따라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구조는 상황에 따라 운항의 제약으로 돌아올 수 있다. 북극항로는 단순한 물류 경쟁이 아니라 데이터 주도권 경쟁이다.

그렇다면 이번 시범 운항에서 우리가 반드시 남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 바로 항해 과정에서 쌓이는 데이터다. 해빙과 기상, 해류, 통신 환경, 선체 거동의 실측 정보는 북극항로 상업 운항 역량을 키우는 기초 자산이다. 이러한 데이터가 지속적으로 축적되고 표준화돼 국제적으로 통용될 때 비로소 경쟁력이 된다. 축적된 데이터는 운항 판단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예측 가능성을 높인다. 이번 시범 운항의 성과가 일회성에 그칠지 장기적인 경쟁력으로 이어질지는 데이터를 어떻게 축적하고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부산은 이미 기반을 갖추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부산으로 이전했고 북극항로추진본부가 출범했으며, 관련 연구·정책 기관도 집적돼 있다. 부산항만공사는 북극경제이사회에 가입해 국제 협력의 발판도 마련했다. 여기에 지역 대학의 해양과학과 데이터·인공지능 연구 역량이 더해진다면 부산은 극지 데이터 허브로 도약할 수 있다. 이제 관건은 이 기반을 실제 데이터 경쟁력으로 연결하는 일이다. 북극항로 특별법은 지난 6월 공포돼 12월 시행을 앞두고 있고, 정부도 북극항로 종합지원체계 구축을 본격화하고 있다.

해운업계에서는 북항에 전용 터미널을 짓고 선박 건조에 새로운 금융 기법을 도입하자는 제안이 나온다. 필요한 논의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인프라를 세우는 지금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인프라도 함께 설계해야 한다. 특별법에 담긴 정보 플랫폼이 실질적으로 작동하도록, 시범 운항과 이후 항해에서 얻는 해빙·기상·해류·통신·선체 거동 데이터를 표준화해 축적하고 산학연이 공동 활용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위성 기반 해빙 예측, 극지 해역 정밀 해도 구축, 인공지능 항로 최적화도 국가 핵심 연구개발 과제로 키워야 한다. 기술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해빙과 기상, 공간정보와 인공지능을 아우르고 데이터를 실제 항해와 산업에 연결할 전문 인재를 지역에서 길러야 한다. 이는 부산 청년들에게 ‘극지 데이터 전문가’라는 새로운 진로를 여는 일이기도 하다. 데이터는 쌓이고 연결될 때 비로소 기록을 넘어 안정적인 상업 운항을 뒷받침하는 힘이 된다.

150년 전 부산의 개항이 바다의 길을 연 사건이었다면, 오늘 우리가 열어야 할 것은 데이터의 길이다. 북극항로의 경쟁력은 결국 데이터와 이를 활용하는 역량에서 결정된다. 이번 시범운항이 한 번의 실험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여기서 얻은 데이터를 국가의 전략 자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부산이 그 새로운 지도의 첫 획을 긋는 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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