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숲에서 물로 내려간 절 - 죽림정사와 안도 다다오 '물의 절'
안도 다다오, 혼푸쿠지 수어당(물의 절), 사진가 미상, Wikimedia Commons CC BY-SA 2.5.
한여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숲과 물이 어떻게 깨달음의 공간이 되는지를 다시 묻는다. 고대 인도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수도 라자그리하(오늘날 비하르주 라지기르) 인근의 대나무 숲을 붓다와 승가에 보시했다. 그곳이 바로 산스크리트어로 베누바나 비하라(Venuvana-vihara), 한역으로 죽림정사(竹林精舍), 곧 ‘대나무 숲의 수행처’이다.
이곳은 불교 최초의 사원으로 일컬어진다. 이곳에는 장엄한 지붕도, 불상을 모신 거대한 법당도 없었다. 대나무 숲과 수행자들을 위한 소박한 처소, 그리고 붓다의 설법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빈터가 있었을 뿐이다. 죽림정사의 중심은 건축물이 아니라 숲이었다. 대나무 사이로 비쳐 드는 햇빛, 대나무를 스쳐 지나는 바람, 땅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새소리가 모두 어우러져 수행의 공간을 이루었다. 여기서 자연은 건축물 바깥의 풍경이 아니라 수행자를 감싸는 벽이자 지붕이었다.
그로부터 2500여 년 뒤, 안도 다다오는 일본 아와지섬 혼푸쿠지(本福寺)의 수어당(水御堂), 곧 ‘물의 절’에서 불교의 원초적 공간을 현대적으로 다시 묻는다. 그는 목조 기둥과 기와지붕이라는 전통 사원의 형식을 과감히 뒤집었다. 방문객이 먼저 마주하는 것은 웅장한 법당이 아니라 매끈한 콘크리트 벽과 하늘을 비추는 타원형 연못이다.
법당은 보이지 않고, 수면 위에는 계절에 따라 연꽃과 수련이 피어난다. 방문객은 보통의 절과 달리, 연못 한가운데를 가르는 좁은 계단으로 내려간다. 그러면 하늘과 연꽃을 비추던 수면이 머리 위로 사라지고, 차갑고 단단한 콘크리트 벽이 몸을 에워싼다.
안도에게 콘크리트는 자연을 차단하는 물질이 아니라, 물과 빛의 변화를 더욱 예민하게 감지하게 만드는 감각의 경계다.
계단을 내려가면 붉은빛으로 물든 법당에 이른다. 서쪽 햇빛이 붉은 격자를 통과해 내부로 스며들면, 법당은 마치 거대한 연꽃의 내부처럼 변한다.
‘염화미소’의 일화처럼,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깨달음과 말없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는 이심전심의 상징이다. 방문객은 연꽃이 덮인 물 아래로 들어가 그 내부에서 빛을 마주한다. 죽림정사와 물의 절은 외형적으로 너무나 다르다. 그러나 두 공간은 자연을 장식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에서 만난다.
죽림정사에서는 숲 자체가 수행자를 감싸는 건축물이 되었고, 물의 절에서는 물과 연꽃과 햇빛이 법당의 지붕과 벽, 내부의 빛이 된다. 안도가 되살린 것은 불교 건축의 옛 형식이 아니다. 그는 자연 속에 자리를 내어주고 인간의 감각을 고요하게 만드는 불교 공간의 정신을 되살렸다. 어쩌면 깨달음은 저 높은 곳이 아니라, 연꽃이 떠 있는 물 아래로 몸을 낮추어 천천히 내려갈 때 마음속 어느 공간에서 열리는 것은 아닐까 묻게 된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