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공공병원 설립,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신영희 부산소비자공익네트워크 회장
최근 지역 의료현장의 위기감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방의료원뿐 아니라 민간 중소병원과 종합병원들까지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으며, 일부 병원은 진료과 축소와 병상 감축을 고민하고 있다. 고령화로 의료수요는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지역에서 필수의료를 책임질 의료기관의 경영환경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
그 원인 중 하나는 의료인력 수급 문제다. 의사와 간호사, 물리치료사 등 전문인력 확보 경쟁이 심화되면서 인건비 부담이 급증하고 있다. 병원에 따라서는 의사 인건비만 전체 지출의 절반을 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의 확보에 실패하면 진료과 유지가 어렵고, 확보하더라도 높은 인건비 부담으로 적자가 누적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병원의 어려움을 단순히 수가 인상이나 인건비 문제로만 바라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의료기관 간 역할 분담과 연계 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부산을 비롯한 대도시권에서는 상급종합병원으로 환자가 집중되고 있다. 중증환자 치료와 고난도 수술은 상급종합병원이 담당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수술 이후 회복기에 접어든 환자들까지 장기간 병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지역 병원들은 병상이 남아 있음에도 적절한 환자 연계가 이뤄지지 않아 경영난을 겪고 있다.
이제는 병원을 개별 기관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지역 전체 의료체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재설계해야 한다. 그 중심에 공공병원이 있어야 한다.
새롭게 설립되는 공공병원은 대학병원과 경쟁하는 병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상급종합병원이 중증·응급·고난도 수술을 담당한다면 공공병원은 수술 후 회복기 치료와 재활, 만성질환 관리, 공공간병, 재택의료를 담당하는 지역의 허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예를 들어 상급종합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환자가 급성기 치료를 마친 뒤 공공병원으로 전원되어 집중 재활과 회복기 치료를 받는다. 이후 건강상태가 안정되면 방문진료와 방문간호, 재택의료로 연결되어 익숙한 지역사회에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이른바 ‘상급종합병원-공공병원-재택의료’로 이어지는 지역완결형 진료협력체계다. 이 체계가 구축되면 상급종합병원은 중증환자 치료에 집중할 수 있고, 공공병원은 안정적인 환자 공급을 통해 병상 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 환자는 집과 가까운 곳에서 회복기 치료를 받을 수 있으며 보호자의 돌봄 부담도 줄어든다. 무엇보다 의료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지역사회 전체의 의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부산은 이미 초고령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병상 수 확대 경쟁이 아니라 지역에서 치료와 돌봄이 선순환하는 체계다. 특히 경남의 365안심병동과 같은 공공간병 모델을 접목한다면 환자와 가족의 간병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회복기 병동과 재택의료를 연계한 새로운 의료모델은 초고령사회가 요구하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공공병원은 적자를 감수하는 기관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건강안전망이다. 응급의료와 소아의료, 재활의료, 공공간병, 재택의료를 연결하고 의료기관 간 기능을 조정하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이제 공공병원의 역할은 단순한 진료 제공을 넘어 지역 의료를 연결하는 데 있다.
부산에도 이러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공공병원이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 누구나 아플 때 적절한 치료를 받고, 회복 이후에도 지역사회 안에서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길이다. 지역완결형 의료체계 구축을 위한 공공병원 설립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지금이 그 논의를 시작할 적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