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우리 곁 반구대 암각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3500~7000여 년 전 이곳에 살던 신석기인들은 높이 약 4.5m, 너비 약 8m 절벽 암반에 다양한 고래, 고래잡이, 육상 동물 등의 모습을 담은 296점의 바위그림을 새겼다. 암각화는 당시 대곡천 일대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가축을 기르고 바다에서 고래를 사냥했던 신석기인들의 강인한 생활상을 보여준다. 형상을 단순화하면서도 특징을 세밀하게 포착한 절제된 미학을 보여주는 이 그림들은 인류 최고 걸작으로 꼽힌다.
하지만 반구대 암각화는 1965년 사연댐 준공 이후 비가 많이 오면 수몰되는 등 오랜 기간 푸대접을 받았다. 바위그림의 상당수는 지속적 훼손 때문에 이미 많이 희미해진 상태다. 특히 한때 유행한 무분별한 탁본도 암각화 훼손을 부추겼다. 관람 장소에서 망원경을 이용해 100m가량 떨어진 대곡천 건너편의 반구대 암각화를 볼 수 있지만 이마저도 햇빛이 비칠 때 일부 문양만 관측할 수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반구대 암각화의 웅장한 실물을 보기 위해 찾아온 관람객들의 상당수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울산시가 반구대 암각화 관람 장소에 2028년 말까지 암각화 모형 설치를 추진한다. 방문객들이 모형을 통해서라도 현장에서 암각화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도록 할 방침이다. 투명 오버레이(중첩) 안내판도 설치, 관람객이 실제 암벽을 바라보며 안내판에 표시된 그림을 겹쳐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반구대 암각화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모형 등은 현재도 곳곳에 있다. 우선 반구대 입구에 들어선 울산암각화박물관과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박물관, 울산대공원 인근 울산박물관 등에서 반구대 암각화 모형 또는 그림 형상을 볼 수 있다. 특히 울주군 청량면 율리에 자리한 울주군 청사 1층에서는 원형 그대로 복원한 반구대 암각화를 만날 수 있다. 2017년 신청사 건립 때 설치한 이 모형은 암각화가 새겨진 암반의 굴곡 등 세세한 모습까지 스캐닝 작업으로 재현해 원형의 질감을 가장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남 양산시 통도사 서운암 장경각 연못에서도 특별한 반구대 암각화를 만날 수 있다. 나전 옻칠 작품으로 되살린 암각화를 물 속에 배치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선사인들이 남긴 놀라운 선물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유산을 가까이에서 즐길 수 있도록 모형 제작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화, 각종 관광상품 개발 등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