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리센느 원이와 고교학점제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장병진 사회부 차장

요즘 많은 이들의 알고리즘을 걸그룹 ‘리센느’가 장악 중이다. 엄청난 역주행 신화로 인기 음원 순위 1위부터 10위까지에 3곡이나 이름을 올리고 있다. 리센느 열풍의 시작은 리센느 리더 ‘원이’다. 특유의 밝은 에너지와 경상도 사투리로 팀 동료 미나미와 “거제~야호” “오이쉬이!(맛있다라는 뜻의 일본어 오이시를 경상도 사투리처럼 발음하는 것)”라는 유행어를 히트시킨 그는 경남 거제 출신이다.

원이가 데뷔 전 아이돌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수시로 부산행 고속버스에 몸을 실어야 했던 고군분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줬다. 전문 보컬 트레이닝이나 댄스 학원 등 꿈을 향한 도전에 필수적인 핵심 인프라가 그가 나고 자란 거제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스토리는 원이의 매력 포인트가 됐지만 화려한 이면에 가려진 우리 사회 지역 인프라 격차의 씁쓸한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안타깝게도 이처럼 기울어진 운동장은 비단 연예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교육 현장의 가장 뜨거운 현안인 ‘고교학점제’를 마주한 지역 소규모 고교들의 현실 역시 이와 묘하게 겹쳐 보인다. 올해 전면 도입된 고교학점제의 취지 자체는 대단히 이상적이다. 학생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대학생처럼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선택해 듣게 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물리적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중소규모 학교 학생들에게 완벽한 ‘선택의 자유’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당장 다양한 심화 과목을 가르칠 전문 교원도 턱없이 부족하거니와, 최소 수강 인원조차 채우기 버거운 것이 현실이다. 수도권이나 일부 학군지에 위치한 학생 수 300명 이상의 대규모 일반고가 30여 개의 다채로운 선택 과목을 마련할 때, 중소규모 학교는 10여 개 남짓한 기본 과목을 간신히 열고 유지하는 데 급급하다. 대학 입시에서 어떤 심화 과목을 이수했는지가 정성 평가의 핵심 요소로 작용하는 상황에서, 과목 개설 풀 자체가 좁은 지역 소규모 학교 학생들은 출발선에서부터 이미 뒤처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올해 고1부터 적용된 ‘내신 5등급제’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상위 10%까지 1등급이 주어지는 새로운 평가 체제에서는 전체 인원이 많아 1등급 방어선이 두터운 대형 학교로의 쏠림 현상이 필연적이다. 실제로 최근 고입 통계를 보면 대규모 학교 진학자는 급증한 반면 중소규모 학교 진학자는 크게 감소했다. 부산만 하더라도 300명 이상 대규모 일반고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원하는 과목을 듣기 위해서라도, 대입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학생들은 살던 동네를 떠나 소수의 대형 고교로 쏠리게 되는 양극화가 빠르게 고착화되고 있다.

꿈을 좇는 거제 소녀가 어쩔 수 없이 매주 시외버스를 타야만 했던 것처럼, 우리 교육 시스템이 아이들을 대형 학교로 몰아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뼈아프게 돌아볼 때다. 고교학점제가 오히려 지역 교육의 격차를 벌리는 고교양극화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촘촘한 핀셋 지원과 새로운 접근이 시급하다.

굳이 고향을 떠나는 버스에 오르지 않아도, 모든 아이가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마음껏 꿈을 꿀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학교의 교실에서도 원하는 과목을 자유롭게 듣게 된 학생들이 원이처럼 해맑게 “학교~ 오이쉬이!”라고 외칠 수 있기를. joyful@


당신을 위한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