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부산발 '동아시아 청년 학' 가능할까?
이재혁 (사)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창조의 공간
유라시아 출발점이자 도착지 부산
지역 청년은 직장 찾아 타지 떠나고
20~30대 외국 관광객은 '부산앓이'
이 역설 속에서 청년 학 담론 활성화
새로운 정책 정립·확산에 힘 보태길
부산의 한 대학교에 있는 국가연구소 두 군데와 공동으로 지난 10주간 릴레이특강을 실시하였다. 청년 문제와 청년 정책은 청년들이 스스로 풀어야 하는 청년 당사자만의 문제인가, 아니면 모든 세대가 같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할 미래사회의 문제 혹은 포용의 문제인가부터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뛰어든 도시 청년들의 성공담, 동아시아학의 확대, 문화론과 지역학 연구에서의 문화적 소통론의 중요성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청년 학의 이론과 실제, 포용 사회로 가는 길, 동아시아학의 범주와 관심 영역 확대 등에 관한 논의였다. 주제 가운데에는 우리가 어릴 때 읽었던 탐정소설이 그냥 흥밋거리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대 그리고 청년의 시대 사명이나 시대의식과 연결된다는 이야기, 2010년대 대만의 ‘해바라기 운동’과 그 이후 국가와 민주주의를 업데이트한 여러 변화, 일본의 청년 서브 문화에서 영향받은 한국 청년들의 흔들리는 자의식과 포용 사회 이야기도 있었다.
이와 더불어, 1940년대 식민지 조선과 대만 청년이 왜곡하여 수용한 ‘일본정신’과 상징폭력도 소개되었는데 이는 일제강점기 시기의 경성과 도쿄의 관계를 넘어, 여전히 계속되는 식민지 유산의 극복 과제라든가 지배구조의 재생산과 강요, 서울과 지역 간의 ‘내부 식민지’ 문제로도 연결되는 부분이어서 오늘날에도 유효한 논쟁으로 보였다. 국가 예산으로 운영되는 대학 연구소와 사업단, 시민 인문학 단체가 머리를 맞댄 이번 제1회 공동릴레이 특강에서는 중국의 현대소설 〈인생〉을 매개로 도농 간의 경계에서 방황하는 청년 지식인의 문제, 급변하는 시대 배경 가운데서 청년의 자기 규정, 이념과 공간의 ‘교차 지대’ 문제를 다루기도 하였으며, 100여 년 전 나운규의 시베리아 방랑이 영화 ‘아리랑’을 거쳐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BTS의 부산으로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 연결고리를 탐색하기도 하였다.
지난 두 달 반의 몰입을 통하여 마음 안에 남는 강한 잔상, 강한 열망 하나는 부산발 인문학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부산은 우리만의 독특한 역사적 경험과 사회문화적 환경을 안고 있다. 이런 자산과 유산이 강력하고 개성 있는 인문학적 토양이 될 수 있겠는데, 학계와 사회의 어떤 노력이 가해져야 부산만의 인문학을 넘어 한국 사회 전체 혹은 동아시아에 새로운 담론을 제시할 수 있을까? 우리 공동체가 숱한 희생, 우여곡절,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세월을 거쳐 축적하고 키워온 인문적 잠재력을 응집하고 융합하여 부산발 인문학으로 폭발시킬 수는 없는 것일까?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곳, 왜관·개항장·한국전쟁 피란수도·현대의 국제항만까지 경계와 경계가 충돌하는 곳, 끊임없이 새로운 문화와 사람이 만나는 이 창조의 공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여전하다. 많은 대학과 시민사회에서의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유라시아의 출발점이자 도착지라는 이 어마어마한 조건이 안타깝다는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자연적 역사적 문화적 ‘혼종성(hybridity)’ 위에 사투리와 음식과 영화와 음악, 자갈치시장·국제시장·영도·감천문화마을·산복도로에 쌓인 평범한 시민들의 기억과 일상, 방랑과 이동, 이주와 세계 활동이 버무려져서 지역성과 세계성을 함께 담는 다양한 담론이 여기저기서 쏟아졌으면 좋겠다.
물론, 청년 유출이 가장 심각한 도시에서 ‘동아시아 청년 학’은 무리라는 지적도 있을 수 있다. 통계청과 부산시의 인구 이동 자료를 종합하면, 매년 수천 명에서 1만 명 이상이 부산에서 다른 시도로 유출되고 있다. 그 중심에 20~39세 청년층이 있다. 이들은 주로 취업과 대학원 진학, 더 높은 임금을 찾아 서울·경기 지역으로 이동한다고 한다. 반면에 고령층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있어, 청년 유출과 고령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를 안고 있는 곳이 우리 부산이긴 하다. 하지만 반대의 흐름도 있다. 지난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이 364만 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관광 매출 1조 원을 우리 부산에 남긴 이들의 대다수가 일본·대만·중국·동남아국가의 20~30대 젊은 여행객이다. K팝과 부산의 바다, 카페, 야경을 즐기려는 해외 청년층이라고 한다. 부산 청년은 바깥으로 떠나고 반대로 해외 청년들은 부산을 찾아오는 이 역설 사이에 어쩌면 ‘동아시아 청년 인문학’의 공간이 충분하게 열릴 수 있지 않나 싶다. 부디 부산에서 의욕적으로 출발한 청년 학 담론이 범주와 방향의 수정, 실천 영역과의 조화, 동아시아권 여러 대학과의 공조 등을 통하여 학문으로서의 세부 영역을 잘 정립하여 나가길 바란다. 그리하여 담론이 담론에만 그치지 말고, 우리 도시의 청년 정책을 새 환경에 맞게 실천적으로 새로 정립하고 바로 잡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