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회동’에 의심 짙어진 야권…한동훈 "개헌 프레임 늪 빠지면 안 돼"
김태호 조건부 참여론에 당내 비판도
한동훈도 조건부 참여 반대 나서
개헌특위 구성돼도 진통 불가피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81주년 광복절 경축식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중진 의원들이 ‘골프 회동’에서 개헌 관련 논의를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 대통령이 띄운 개헌 논의가 시작부터 꼬이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회동 이후 야권도 개헌 논의에 동참해야 한다고 밝힌 김태호 의원(경남 양산을)을 향해 이 대통령의 개헌·정계개편 구상에 말려들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무소속 한동훈 의원까지 조건부 참여론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야권의 경계심은 한층 짙어지는 모습이다.
17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4년 중임제 또는 연임제 개헌을 언급한 이후 국민의힘은 “연임은 없다”는 입장부터 밝혀야 개헌 논의에 진정성이 있는 것이라며 공세를 퍼붓는 모습이다. 송언석 전 원내대표는 전날 페이스북에서 “지금 국민이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것은 개헌이 아니라 민생과 경제를 바로 세우는 일”이라며 “개헌이 필요하다면 다음 총선 이후부터 논의를 거친 뒤 차기 대통령선거 일정과 연계해 논의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는 “현행 헌법은 개헌 제안 당시 대통령에게 효력이 없다고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며 “향후 개헌 논의는 이 대통령과는 무관한 개헌 논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4선 중진 김태호 의원은 “이 대통령이 연임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먼저 보여준다면 여야가 진정성 있게 개헌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며 조건부 참여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당 내에서는 김 의원이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의 구상에 활용됐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이 ‘연임하지 않겠다’는 명시적 언급을 하지 않는 점도 의구심을 키우는 대목이다. 앞서 조정식 국회의장이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은 국민의 선택”이라고 발언했다가 하루 만에 물러선 데 이어, 이 대통령마저 임기 단축은 언급하면서도 연임 여부에는 선을 긋지 않으면서 야당의 경계심은 더 커졌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15일 한 유튜브에 출연해 “개헌은 본인이 계속 장기집권으로 가기 위한 빌드업”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박성훈 수석대변인도 골프 회동에 대해 “국민의힘 의원 중 개헌에 찬성하는 일부 의원들을 포섭하려는 꼼수”라고 규정했다.
한동훈 의원은 조건부 참여론에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서 “이 대통령 발(發) 개헌 논의는 깔때기처럼 결국 이재명 사법리스크 해소용일 수밖에 없다”며 “만에 하나 이 대통령이 ‘사법리스크 해소용 개헌 조항은 안 넣겠다든지, 연임은 안 하겠다든지’ 하는 조건을 내걸더라도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조건부라도 이재명 발 개헌 프레임 늪으로 들어가면 안 된다. 국민들께서 어렵게 지켜주신 개헌저지선이다. 지금은 그 민심을 따를 때”라고 강조했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재적의원 299명의 3분의 2인 200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국민의힘 109석, 개혁신당 3석을 포함한 범보수 진영에서 10명 가량이 이탈하면 개헌저지선이 무너진다. 이 때문에 야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개별 접촉이 정계개편 포석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은 전날 페이스북에서 “정계개편은 어느 날 갑자기 30명, 40명이 탈당하면서 시작되지 않는다. 처음에는 개헌협의체일 수 있고 특정 국가 현안에 대한 국정협력이 될 수 있다”며 “정치적 이해가 맞으면 선거제도 개편, 총선 연대, 신당 또는 정당재편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의 친명·중도·실용세력 일부와 국민의힘의 개헌론자, 여기에 제3지대가 87년 체제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만나는 상황도 전혀 상상 밖의 일은 아니다”라며 “개헌저지선에 안주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자체 개헌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의장이 여야 협의로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후반기 국회에서 논의가 재개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다만 골프 회동 논란과 연임 문제를 둘러싼 불신이 겹치면서 진전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