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밀빵 냄새 피어오르는
빵은 사랑받을 운명이다
마음을 움직이게 하니까
존재만으로 행복하게 하는 것
김정화 수필가
동네 차고지 옆에 대형 베이커리 카페가 생겼다. 이제나저제나 기회만 엿보던 나도 마침 시간이 넉넉한 백수 친구를 앞세워 유혹의 진원지에 입성했다. 입구부터 벽면 한쪽이 보드라운 빵으로 둘러싸였다. 시그니처 메뉴라는 무화과 캄파뉴와 생딸기 쿠키슈, 팽오쇼콜라, 버터 크루아상, 유자 스콘 등등. 빵 이름 외우기는 언제나 어렵지만, 친절하게도 저마다 이름표를 달고 있으니 눈으로 한 바퀴 훑어보고 나면 입안까지 달달해진다. 주식이 밥인 나라에서 언제부터 이렇게 빵들을 좋아했었나.
하기야 나도 어릴 때, 엄마가 비 오는 날이면 굵은 양대콩을 넣고 쪄주던 술빵부터 일터에서 새참으로 받은 팥빵을 갖다주었을 때면 얼마나 행복했던가. 엄마가 모 심다가 쓰러졌을 때도 일복 속에 박하사탕 몇 알과 곰보빵 한 개가 들어 있었다. 그것이 생전에 어린 자식에게 당신 몫을 남겨 준 마지막 먹거리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우툴두툴한 껍질을 얹은 소보루빵을 나는 늘 눈물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즈음에 국내 유명기업에서 만든 샌드위치 빠다빵이 인기였다. 읍내 점방 앞을 지날 때면, 진열장 한켠에서 네모 빵 사이로 두툼한 빠다를 듬뿍 내비치며 군침을 돌게 하였으나, 시골 아이들에게는 언감생심 선망의 대상이었다. 세월은 빠다를 버터로 바꾸었지만, 내 추억의 번역만큼은 절대로 버터빵이 되지 못했다.
점심으로 녹차 물에 공깃밥 한 그릇 말아 보리굴비 푸짐히 뜯고도, 기어코 아이스커피에다 촉촉한 빵까지 골고루 고른다. 다이어트는 다시 내일로 미루고 뱃살과는 잠시 휴전을 청하며, 최근 판정받은 당뇨 전 단계라는 경고도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쳐둔다. 인간이 만오천 년 동안 먹었던 밀인데 하루아침에 뚝딱 끊을 수도 없는 일, 분명 한의학의 ‘본초서’에서도 소맥이 부인들의 히스테리를 진정시키는 곡물로 소개되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빵 조각 앞에서 수다를 떠는 시간도 나름의 약효를 누리는 셈이다.
버터 향이 달콤한 브리오슈가 옛날 보름달빵을 그대로 닮았다. 왜 인간은 밀가루빵에 달 이름을 얹어 놓았을까. 빵 이전에는 달떡이라는 이름도 있었지. 달나라를 다녀온 우주비행사들의 인터뷰가 생각났다. 그들은 직접 고른 평소의 음식을 달까지 가져갔지만, 한결같이 가족이 모인 지구의 식탁이 그리웠다고 했다. 옛사람들이 둥근 빵에 ‘달’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달처럼 둥글게 앉아 먹던 두레 밥상의 풍경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일까.
그나저나 우주인들의 금지 식품 중에 빵이 포함되었다는 사실에는 적잖이 맥이 풀렸다. 무중력의 공간에서는 가루가 가라앉지 않고 사방으로 둥둥 떠다니기 때문에 대참사가 일어나는 까닭이란다. 빵 부스러기가 우주인의 눈에 들어가거나 우주선의 정밀한 기계 틈새로 스며들어 고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어느 공간에 있든 하나쯤은 포기해야 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우주여행이라지만 빵 없이 무슨 재미로 사나. 역시 지구는 밀빵 냄새 피어오르는 사랑스러운 별이다.
얼마 전, 벽에 적힌 낙서를 하나 보았다.
“차라리 빵으로 태어날 걸.”
웃음이 나면서도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낙서의 장본인이야 빵을 향한 애정을 익살스럽게 드러낸 표현이겠지만, 빵은 이미 사랑받을 운명을 타고났다. 색이 희든 검든, 주근깨가 촘촘히 박혀 있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달콤함과 고소함과 따뜻함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충분히 움직이게 하니까. 세상에는 존재만으로도 타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