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사람에게 날씨 걱정을 다 듣다니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김영한 논설위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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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무더위가 이어진 지난 14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파라솔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며 한여름 해변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연일 무더위가 이어진 지난 14일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을 찾은 시민과 관광객들이 파라솔 아래에서 휴식을 취하며 한여름 해변의 여유를 즐기고 있다. 연합뉴스

잠드는 순간까지 ‘덥다’ 소리를 되뇌던 여름도 사그라들고 있다. 어느덧 서늘한 바람이 스치고, 그늘에 들면 더위도 견딜만해졌다. 역시 지구가 도는 건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돌아보면 올여름 부산·울산·경남 사람들 삶은 간단치 않았다. 물론 날씨 때문이다. 장마철이라더니 비 구경하기 힘들었고, 보통 여름이겠거니 만만히 여기다 큰코다쳤다. 2026년 부울경 여름은 ‘더웠다’ 한마디로는 부족하다. 국내 기상 관측 역사를 새로 쓰며 우리를 멘붕에 빠트린 부울경 올여름을 다시 한 번 되짚어 본다.


여름 맞아? 방심하다 당했다

장마철이 됐지만 부산·울산·경남엔 비는커녕 햇빛만 쨍쨍했다. 장마도 6월 30일 시작돼 평년보다 7일이나 늦게 ‘지각 개장’했다. 하지만 기온은 평년 수준이었고, 맑은 날씨가 이어졌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될 때만 해도 흔한 여름 수준이 예상됐다. 기상청이 올해 처음 도입한 폭염중대경보 첫 발령 지역이 경북 포항과 경산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2일이었다. 관계부처에 비상이 걸렸지만 이때만 해도 ‘그 지역들이야 원래 더운 곳이니’ 했다.

하지만 7월 하순, 부울경 날씨가 심상찮아졌다. 7월 28~31일 경남 일최고기온이 4일 연속 역대 1위를 찍은 것. 이름도 생소한 ‘티베트고기압’ 용어도 이 즈음 뉴스에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7월 말 밀양, 부산, 거창, 진주가 연이어 일최고기온 신기록을 세우며 평년과 다른 판도를 예고했다.


경남 양산 낮 최고기온이 42.5도를 기록한 지난 2일 양산시 양산남부시장에서 한 상인이 부채질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남 양산 낮 최고기온이 42.5도를 기록한 지난 2일 양산시 양산남부시장에서 한 상인이 부채질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프리카’ 넘어버린 ‘양프리카’

올여름 주인공은 단연 양산이었다. 8월 2일 오후 1시 26분, 무려 42.5도를 찍으며 122년 대한민국 기상 관측 사상 최고기온 챔피언을 차지해버렸다. 2018년 강원 홍천(41도) 기록을 7년 만에 갈아치웠다. 양산은 7월 29일 이후 닷새 연속 40도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이 기록도 역대 처음이다.

덕분에 역대 최고기온 기록 1~3위 자리를 양산이 싹쓸이했다. 2위는 41.6도(8월 1일), 3위는 41.4도(7월 31일)이다. SNS에는 ‘양산 다녀온 옥수수가 팝콘이 아니라 숯으로 연성됐다’는 짤이 밈으로 떠돌았다. 당연히 ‘양프리카’ 수식어도 물려받았다.

양산의 미친 더위는 기온 상승 최적 조건이 두루 갖춰졌기 때문이다. 이중 고기압이 대기를 짓누르며 기온을 올렸고, 고온다습한 서·북풍이 영남알프스를 넘으며 푄현상을 불렀다. 양산은 분지 지형이라 열기가 잘 빠져나가지도 않았고, 바싹 마른 땅도 한몫했다.


더위야, 잠은 좀 자자

입추(지난 7일)가 지나고도 부울경은 밤낮 없이 뜨거웠다. 역시 양산이었다. 양산은 7월 17일부터 8월 10일까지 무려 25일간 열대야 행진을 이어 갔다. 양산 지역 역대 최장 기록이다. 부산도 7~8월에 걸쳐 22일간 이어진 ‘열대야 챌린지’에 성공했다. 열대야는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오전 9시까지 기온이 25도 이상 유지되는 현상이다. 창원 북부와 거제는 숨은 ‘열대야 피해 지역’이었다. 두 곳은 7~8월 두 달간 30일 넘게 열대야에 시달렸다.

사악한 밤더위는 8월 11일 상층 티베트고기압이 북쪽으로 물러나며 겨우 끝났다. 밤까지 이어지는 열섬 현상이 사그라들었고, 공기에 습도도 줄었다. 하지만 양산은 역대 부울경 열대야 순위에서는 1위 달성에 실패(?)했다. 1994년 29일간 열대야를 이어간 창원이 1위 자리를 지켰다. 부산도 2024년 26일간 열대야를 기록했다.


서울 사람이 부산 날씨 걱정

올여름 날씨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지역 양극화’였다. 7월 폭염일수가 15일을 넘은 곳은 모두 국토 남쪽에 몰려 있다. 대구(22일), 의성(20일), 밀양(20일) 등이 특히 심했다. 반면 7월 서울(2일), 인천(1일)은 상대적으로 쾌적했다.

지역 간 차이를 만든 건 비였다. 비가 중부만 골라 내리며 더위를 눌렀기 때문이다. 반면 남부에서는 비 구경이 힘들었고, 폭염을 고스란히 받아내야 했다.

서울도 8월 들어 34~38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가 덮쳤다. 지난 7일엔 38도를 찍으며 “죽겠다” 소리가 나왔지만, 비슷한 시기 40도를 오르내린 부울경에 댈 정도는 아니었다. 이즈음 서울 사는 친척이나 지인에게서 “아직 살아 있냐”는 안부 전화를 받았다는 사람이 여기저기서 나타났다.


지난 12일 경남 밀양시 교동 밀양종합운동장 주차장에 경기도·강원도 등에서 온 소방차량이 집결해 있다. 정부는 농업용수공급을 위해 지난 11일 오후 9시를 기해 국가소방동원령을 내렸다. 연합뉴스 지난 12일 경남 밀양시 교동 밀양종합운동장 주차장에 경기도·강원도 등에서 온 소방차량이 집결해 있다. 정부는 농업용수공급을 위해 지난 11일 오후 9시를 기해 국가소방동원령을 내렸다. 연합뉴스

밀양에서 횡성·의왕 소방차 구경

폭염에 가뭄까지 덮치자 “해도 너무 한다” 소리가 나왔다. 농업 비중이 큰 경남 물 부족이 특히 극심했다. 6월 중순부터 시작된 가뭄이 두 달째 이어졌고, 7월 경남 강수량은 68.0mm로 평년(304.7mm)의 21.9% 수준에 불과했다. 이 역시 역대 가장 적은 기록. 김해 북창원 양산 의령 함양 밀양 등이 7월 역대 최소 강수량 기록을 새로 썼다. 7월 울산에도 고작 28.0mm의 비가 내렸다.

저수지 바닥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지니 더 지켜볼 수 없었다. 급기야 나라가 나섰다. 전국에서 소방물탱크차 200대와 소방관 400명이 경남으로 출동하는 국가소방동원령이 떨어졌다. 폭염에 따른 국가소방동원령 발령은 지난해 강원 강릉에 이어 사상 두 번째다. 올해 부울경은 폭염과 가뭄이 서로를 강화하며 발생한 복합재난 지역이 됐다.


저 푸른, 아니 ‘초록초록한’ 낙동강

더위와 가뭄의 시간이 지속되자 낙동강과 그 지류를 녹조가 뒤덮었다. 6월 22일 낙동강 물금·매리 지점과 칠서 지점에 내려진 조류 경보 ‘경계’ 단계는 한 달가량 지속됐다. 상황이 좀 나아지나 싶더니 8월 10일 두 지점에 다시 경계 경보가 내려졌다.

소동도 잇따랐다. 창원에선 수돗물에 냄새 물질이 검출됐고, 양산 논과 밭에도 녹조가 밀려들었다. 낙동강 유역 주민 소변에서 유해 남세균이 만드는 독소가 검출됐다는 환경단체 고발도 이어졌다.

환경당국이 녹조를 줄이겠다고 낙동강 하류 보를 열었더니 오히려 남조류가 11배나 폭증하는 ‘레전드 역효과’가 났다. 상류 녹조를 하류로 몰았다는 비난이 뒤따랐다.

지난 3일 낙동강 창녕함안보 상류인 경남 창녕군 남지읍 남지철교 주변으로 녹조 현상이 두드러진다. 낙동강네트워크 제공 부산일보DB. 지난 3일 낙동강 창녕함안보 상류인 경남 창녕군 남지읍 남지철교 주변으로 녹조 현상이 두드러진다. 낙동강네트워크 제공 부산일보DB.

더위가 태풍도 막았다?

얼마나 더웠던지 부울경 사람들은 “태풍 안 오느냐” 넋두리도 자주 내뱉았다. 하지만 올해 태풍들은 한반도 고기압 ‘포스’에 기가 죽었는지 모두 한반도를 비껴갔다. 올해 8월 22일 현재 발생한 태풍은 18개. 모두 올라오기도 전에 소멸하거나 한반도 대신 중국·일본으로 향했다.

더위가 태풍을 막은 것 아니냐고?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여름철 태풍은 보통 북태평양고기압 가장자리를 따라 이동하는데 올해는 고기압 세력권이 한반도 주변까지 확장하며 태풍 이동 경로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국내외 기상 소식을 종합하면 올해 강한 엘니뇨로 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높아져 태풍 활동이 활발하다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과거 피해 사례를 보면 늦은 태풍일수록 피해가 컸다. 좋은 것도 있었다. 워낙 더워 모기 활동이 잠잠했다.


‘살고 보자’…야구도 축제도 스톱

더위는 프로스포츠와 축제도 멈춰 세웠다. 한국야구위원회는 8월 들어 폭염으로 프로야구 전 경기를 한동안 취소하는 역대급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취소된 경기가 30개쯤 된다. 프로 축구에서는 경기를 봄과 가을에 여는 ‘추춘제’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나왔다.

여름 축제들도 휘청였다. 지난 1일 경남 거제시 사등해수욕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해변문화축제가 취소됐고, 에덴밸리 리조트 루지장을 오르는 이색 스포츠 행사인 ‘2026 양산 어필(UP-HILL) 레이스’도 취소됐다. 밀양시는 극한 가뭄에도 지난 7~9일 사흘간 물 900t이 들어가는 ‘밀양수페스티벌’을 강행했다 빈축을 샀다.


김영한 논설위원 kim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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