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화의 크로노토프] 오페라 옆 돔구장
피아니스트·음악 칼럼니스트
성격 상반되는 시설물 인접지 배치
야구장 소음 인한 공연 차질 우려
두 곳 모두 살리는 지혜로움 필요
해양수산부 신청사 터가 북항 1단계 복합항만지구로 확정됐다. 해양행정과 산업·사법 기능을 한데 모아 부산을 해양수도로 완성할 구상이 비로소 구체적인 공간을 얻은 셈이다. 이에 따라 인접한 해양문화지구의 쓰임은 그만큼 엄중해졌다. 도시의 공간은 시대의 비전을 담는 그릇이자 시민을 향한 행정의 약속이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무엇을 세울 것인가보다 어디에 세울 것인가다. 이는 앞으로 백 년간 북항의 가치를 규정하는 가장 결정적인 첫 단추가 되기 때문이다.
폭염과 집중호우가 반복되는 기후 환경에서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경기를 치를 수 있는 돔구장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노후한 야구장을 대신할 체육 인프라와 대형 공연시설이 필요하다는 시민의 요구도 타당하다. 전재수 시장의 개폐식 돔구장 구상은 이러한 오랜 갈증을 해결하려는 결단이다. 스포츠와 공연·관광을 결합해 북항의 새 동력을 만들겠다는 방향과 관계 기관의 협력을 끌어내는 추진력도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정책 목표의 타당성과 특정 입지의 적합성은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 법적·절차적으로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 그곳에 지어야 할 이유까지 증명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왜 완공을 앞둔 오페라하우스 바로 옆이어야 하는가다.
오페라하우스는 평범한 건물이 아니다. 오직 목소리와 악기 소리만으로 객석을 채워야 하는, 고도의 정밀함이 요구되는 하나의 거대한 악기다. 무대 상부의 막이나 조명을 매다는 플라이세트 배튼과 리프트, 무대 제어장치는 물론, 리허설 공간과 대형 무대 장치 반입을 위한 하역 동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정밀한 제작시설이기도 하다. 이미 2019년 설계 재검증에서도 하역공간과 주차 대책 등 77건이 지적됐고, 850여 곳의 균열이 확인되는 진통을 겪은 만큼 개관 전 철저한 보완 검증이 필수적이다.
우주의 미세한 빛을 포착하는 초정밀 망원경을 갖춘 천문대 바로 옆에서 굉음과 폭발을 동반하는 대형 폭죽 축제를 상시 개최한다면, 관측 장비의 센서를 마비시키는 치명적인 교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관객이 가득 찬 돔구장 내부의 순간 최대 소음은 110~130데시벨(dB)에 이르며 강한 저주파까지 동반한다. 오페라하우스라는 섬세한 악기에는 치명적이다. 게다가 부산오페라하우스의 무대를 통합 제어하는 바그너-비로의 CAT 시스템은 위험을 감지하면 즉시 멈추는 ‘세이프티 록’ 기능이 있다. 문제는 이 고도의 안전장치다. 외부에서 전해진 돌발 진동을 위험으로 오인, 센서가 작동해 공연 도중 무대가 멈춰 서는 대형 사고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 글로벌 도시들이 대표 공연예술 시설과 대형 경기장을 서로 다른 권역에 배치해 각각의 운영환경을 철저히 보호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4년, 스페인 마드리드의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 사태가 이를 증명한다. 무려 17억 6000만 유로를 들여 개폐형 돔형태의 복합시설로 개조했지만, 방음 보강에도 소음 규정을 충족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콘서트 일정이 전면 중단·변경되었으며, 약 24만 장에 달하는 티켓 환불 사태와 소음에 대한 주민들의 법적 대응이 잇따르며 도시의 신뢰가 송두리째 흔들렸다. ‘일단 짓고 보면 해결되겠지’라는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이 가장 비싼 청구서로 돌아온 뼈아픈 교훈이다.
또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 공간적 모순 앞에서 목소리를 내야 할 문화계의 침묵이다. 현재 언론과 문화계 안팎에서는 100억 원대 라 스칼라 개관 공연을 두고 치열하게 찬반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시점에서는 어떤 작품으로 문을 여느냐는 논쟁보다 극장이 정상적으로 숨 쉬며 일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지키는 일이 먼저다. 특히 개관을 준비하는 전문경영인과 예술감독 등 관련 전문가들이 이 문제에 대해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입지를 결정할 권한은 없더라도 필요한 조사와 보호 기준을 부산시에 적극적으로 요구할 책무가 있다. 언젠가 그들의 임기는 끝나겠지만, 지금의 침묵이 남길 결과는 부산이 오랫동안 온몸으로 감당해야 한다.
네모난 장부를 둥근 구멍에 억지로 끼우는 ‘방예원조(方枘圓鑿)’는 각각의 가치가 나빠서가 아니라 자리가 맞지 않아 둘 다 망가지는 어리석음을 경계한다. 오페라와 돔구장은 경쟁자가 아니다. 각자의 기능이 살아날 제자리에 놓일 때 문화적 자산과 스포츠 자산도 함께 커진다. 기존 체육 인프라의 현대화 계획과 제3의 대체 장소를 같은 기준으로 다시 비교하는 것은 공약의 후퇴가 아니라 공약을 제대로 완성하는 책임 행정이다. 체육 환경을 혁신하려는 의지가 오랜 세월 공들여온 문화 자산의 숨통을 끊는 자충수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해수부 이전을 성사한 전재수 시장의 추진력이 두 랜드마크를 모두 살리는 정밀한 검증과 지혜로운 판단, 그리고 대승적 성찰로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