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아직,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영화평론가
자신들만의 세계 만들어가는 아이들
울타리 벗어나 '지켜주는 삶' 배우는
불확실한 미래를 위로하는 영화
영화 '산양들' 스틸컷. (주)시네마달 제공
미래를 정해야 하는 나이, 열아홉.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이 될 것인지 묻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보다 어느 대학에 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나이. 입시 앞에서는 이미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에게는 선택지가 많고,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결국 열아홉의 청춘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보다 ‘무엇이 될 것인가’를 증명하는 시간처럼 흘러간다.
그런데 모든 열아홉이 같은 미래를 꿈꾸는 것은 아니다. 여기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아직 찾지 못한 아이들이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시간이 텅 빈 것은 아니다. 꿈의 이름을 정하지 못했을 뿐, 무언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아끼며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알아가는 시간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산양들’은 대학 입시에서 한 발 비켜난 네 명의 소녀를 바라본다. 야생에서 제 힘을 시험해 보고 싶은 ‘인혜’, 생존용 나이프를 지니고 다니는 ‘서희’, 친구를 사귀는 게 어려운 ‘정애’, 몸이 약한 ‘수민’까지 서로 다른 성격과 사정을 가진 아이들이 우연히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낸다. 꿈이 없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특별관리대상자’로 분류되지만, 영화는 이들을 뒤처진 청춘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무엇에 마음을 쓰고,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차분히 따른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은 조류인플루엔자로 사육장 동물들이 처분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소동물들을 구출할 계획을 세운다. 마침내 디데이, 사육장에서 오리와 닭들을 무사히 빼낸 아이들은 아무도 오지 않는 산속에, 누구도 찾지 못할 공간을 만들어 동물들을 돌보기 시작한다. 이제 아이들은 학교나 집이 아닌 자신들이 만든 ‘쉘터’에서 작은 세계를 키워나간다.
아이들은 쉘터를 ‘산양들’이라 이름 짓는다. 산양은 울타리 안에서 길들여지는 가축이면서도, 이름 그대로 산을 타고 오르며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존재다. 그러니까 ‘산양들’이라는 이름에는,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길을 찾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이 겹쳐 보인다. 그래서 아이들이 만든 쉘터는 단순한 동물들의 피난처가 아니다. 학교도, 입시도, 어른들이 만든 규칙도 잠시지만 닿지 않는 자유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 역시 완전하지 않다. 아이들은 동물들을 가둔 사육장에서 꺼내왔지만, 다시 쉘터라는 공간 안에 머물게 하기 때문이다. 즉 쉘터는 동물들을 보호하기 위한 안식처이지만 학교 사육장처럼 또다시 울타리가 쳐진 곳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과 동물들은 누군가 정해놓은 공간 안에서 살아간다는 점에서 묘하게 닮아 있다.
결국 아이들의 쉘터는 어른들에 의해 발각된다. 질서나 규칙 따르기를 바라는 어른들은 쉘터를 망가뜨린다. 그런데 이때 아이들이 남은 쉘터를 스스로 무너뜨린다. 빼앗기는 것과 스스로 내려놓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다. 더 이상 지킬 수 없는 공간을 자신들의 손으로 허무는 아이들의 모습에는 좌절과 체념이 담겨 있지 않다. 자신들이 만든 세계를 끝까지 책임지고, 그것을 어떻게 끝낼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려는 마음이 담겨 있다.
‘산양들’은 자유를 꿈꾸지만 아직은 자유로울 수 없는 열아홉의 이야기다. 무엇이 될 것인지 아직 결정하지 못한 나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아끼며, 무엇을 지키고 싶은지 조금씩 알아가는 나이. 어쩌면 삶의 방향이란 처음부터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가두고 있는 울타리가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