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어떤 미안
평일 오전 열 시쯤의 골목 산책
어떤 오해
미안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왠지 미안
임성용 소설가
한동안, 월요일 아침마다 도시 외곽으로 강의 가는 아내를 태워줬다. 매주 그러다 보니 강의 끝나기를 기다려 점심을 먹고 귀가하는 패턴이 만들어졌다. 덕분에 월요일 아침마다 두 시간을 낯선 동네에서 홀로 보냈다. 주로 차에 앉아 책을 읽거나 근처 골목을 산책 삼아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다니며 때 묻은 대문이나 이끼, 담벼락 위의 고양이와 화분들을 구경했다.
가끔은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평일 오전 열 시쯤의 골목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은 주로 할머니 할아버지들이다. 자잘한 살림을 하거나 둘 셋 모여 담소를 나누다가 내가 지나가면 빤히 쳐다본다. 덩치 크고 비교적 젊은 남자 인간이 이 시각 이 골목에 도대체 왜 있냐? 고 눈빛으로 묻는다. 구경 온 사람은 나인데, 졸지에 구경거리가 된다. 대부분 내가 고개를 슬쩍 숙이고 그 앞을 지나치는 것으로 상황이 끝났다. 하지만 나의 반복된 산책이 어떤 오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 동네 골목을 세 번째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 대문 열린 집 마당에서 파를 다듬고 있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누고? 재석이 아들이가? 아부지한테 왔나.
예? 아, 아닙니다.
글마 누고?
할머니는 내가 잠깐 당황한 사이, 갑자기 실존에 대한 증명을 요구했다.
아… 그냥 동네 구경하고 있습니다.
구경? 요 동네 볼 끼 뭐 있다꼬.
아, 예, 그냥…
며칠 전에도 안 왔나? 참말로 재석이 아들 아이가?
예, 아닙니다.
둥글둥글한 기, 영판인데?
허허 아닙니다.
민망한 웃음을 흘리고 서둘러 골목을 꺾어 지났다. 휘적휘적 동네를 돌아 돌아오니 주민센터 옆에 한 할머니가 무언가를 휘젓고 있었다. 붉고 초록의 꽃무늬가 잔뜩 그려진 원피스를 입고, 그 위에 ‘노인 일자리사업’이 새겨진 형광색 조끼를 걸쳤다. 도대체 뭘 하고 있나 지켜보니 쓰레기 집게로 주민센터 경계에 심긴 대나무를 툭툭 치고 있다. 대나무 두세 그루가 튀어나온 건물 난간에 갇혀 하늘로 머리를 뻗지 못하고 구부러져 있다. 할머니는 그게 안쓰러웠나 보다. 그런데 휘젓는 집게에 도무지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내가 슥 끼어들어 대나무를 밀어 머리를 난간 바깥쪽으로 냈다.
그래, 그라이 됐다. 아이고, 고맙소. 내가 힘이 없어가.
아입니다.
야도 고개가 얼매나 불편컷노. 내 가마이 보이 안 되겠어. 심은 사람들도 참, 잘 보고 안 하고, 고개가 얼매나 불편애. 내 오늘 대나무에 적선했다.
예…
근데, 가마이 보자, 재석이 아들이가?
예? 아닌데예.
아부지한테 왔나?
진짜 아인데예.
아인가? 내 눈이 어둡아가.
허허.
웃음을 흘리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 동네를 더 어슬렁거리다가는 진짜 재석이 아들이 될 판이다. 걸으며 생각했다. ‘재석이 아들은 나를 닮았구나. 그리고 아버지를 잘 보러 오지 않는구나. 뭔가 사연이 있나? 짜슥, 그래도 자주 좀 오지.’ 하고 허공에 지청구를 날리고 보니, 열없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리고 오해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다. 나의 반복된 이 동네 산책이 ‘아버지를 보러 와서 매번 망설이다 돌아가는 재석이 아들’로 소문이 난다면, 그 소문을 들은 재석 씨는 어떤 마음이 들까…
그렇게 생각하니, 일면식도 없는 재석 씨와 그 아들에게도 미안해졌다. 동시에 미안함 뒤로 부아가 슬쩍 일었다. 지금 이게 내가 미안할 일인가? 이 상황은 재석 씨 아들의 격조함 탓인 것 같은데, 동네 사람들의 오지랖도 더해진 것 같고. 아닌가? 둥글둥글한 내 살집 탓인가? 거 참, 미안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왠지 미안해지는 이런 상황은… 근데 재석 씨 아들은 왜 격조하지? 부자간에 기구한 사연이라도 있나? 아니 근데, 그게 왜 내가 미안할 일이냐고! 하고 보니, 도돌이표다. 쩝.
차를 향해 걸으며 다짐했다. 둥글둥글한 몸피를 좀 줄이자. 그리고 한 동네를 여러 번 산책하지는 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