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의약품은 용도에 맞게
19세기 영국의 저명한 외과 의사 로버트 리스턴의 별명은 ‘날아다니는 칼’이었다. 수술 시작과 동시에 그의 칼은 현란하게 춤을 췄고, 수술도 빨리 끝났다. 다리 절단과 봉합에 3분이 걸리지 않았다는 기록도 있다. 제대로 된 마취 기술이 없던 시절이었다. 수술이 길어지면 환자의 고통도 연장되고 사망률도 올라갔다. 손 빠른 의사가 최고였다.
당시 의사들은 술이나 아편으로 환자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도 했다. 몽둥이로 환자를 기절시키는 민간요법도 있었는데, 힘 조절에 실패해 사망 사고가 나기도 했다.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수술에 들어가면 환자는 사지를 비틀며 괴로워했고 쇼크사도 흔했다.
19세기 말 에테르, 클로로포름 같은 흡입용 마취제가 퍼졌다. 잠든 상태에서 수술을 받는 길이 열렸지만, 부작용도 컸고 사고도 많았다. 다행히 1930년대 ‘티오펜탈’이라는 정맥 주사용 마취제가 나오는 등 꾸준히 마취 기술이 발전해, 지금에 이르렀다. 마취 기술이 발달할수록 수술이 가능한 범위가 늘고 수술 성공률도 올라갔다.
마취제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는 비슷하다. 마취제 성분이 뇌 안으로 침투해, 수용체라고 불리는 특정 단백질과 반응한다. 그 결과로 중추신경계를 억제하는 신경전달물질 ‘가바’가 활성화되면, 의식이 잠들어 버린다. 통증 등 외부 자극을 받는 수용체의 기능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어쨌든 마취제는 수술 과정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환자의 뇌를 자극하고 인위적인 반응을 이끌어낸다.
1989년 마취제로 승인된 프로포폴도 같은 원리로 작용한다. 다만 물과 잘 섞이지 않고 지방에는 잘 녹는 성질이 있다. 그 덕에 혈액을 타고 뇌혈관장벽을 빠르게 통과해 반응을 일으킨다. 뇌에서도 빠르게 빠져나가, 환자는 숙취 없이 깨어날 수 있다. 그 덕에 몇 분 만에 깨어나도 뇌는 오래 잠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고, 기분이 개운해지고 미량의 도파민도 나온다.
최근 부산의 한 성형외과 원장이 미용 시술을 빙자해 환자들에게 프로포폴을 215차례 불법 투약했다가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원장 부인도 프로포폴 중독으로 불법 투약을 받았다고 한다.
모든 약은 처방에 맞게 써야 부작용이 없다. 마취제는 수술 과정에서의 육체적 고통을 덜어주는 용도다. 마음의 고통을 덜어줄 목적으로 쓰면 중독이라는 부작용을 피할 수 없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