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웃고 넘어가기엔 찜찜한 유행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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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유행/도우리
새로운 유행 빠르게 생기고 사라져
두려움 질투 혐오 반영한 단어들
누군가에겐 고통으로 느껴지기도
일상 지배한 문화 현상 속내 추적


MBTI는 한국의 성격 공용어라는 말이 나올만큼 한국에서 유독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MBTI는 한국의 성격 공용어라는 말이 나올만큼 한국에서 유독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MBTI는 한국의 성격 공용어라는 말이 나올만큼 한국에서 유독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MBTI는 한국의 성격 공용어라는 말이 나올만큼 한국에서 유독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인강 인기 강사는 TV 예능 프로그램까지 진출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인강 인기 강사는 TV 예능 프로그램까지 진출할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오락으로 즐기는 유행어 뒤에는 혐오 정서가 숨어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오락으로 즐기는 유행어 뒤에는 혐오 정서가 숨어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불편한 유행> 책 표지. 산지니 제공 <불편한 유행> 책 표지. 산지니 제공

에겐과 테토, 나락, 누칼협, 랜선집사, MBTI, 연애프로그램, 쫀득쿠키…. 새로운 유행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사라진다. 누군가에겐 즐기는 오락거리지만,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주제이다. 모두가 웃고 있을 때 누군가는 불편함에 눈살을 찌푸리기도 한다. <불편한 유행>은 2022년부터 2025년까지 3년 동안 저자가 쓴 대중문화 비평 칼럼을 모은 책이다.

한국 사회를 휩쓴 문화 현상을 비틀어 바라보며, 가볍게 소비되는 유행이 실은 모순과 갈등, 차별과 혐오를 품고 있는지 조명한다.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유행을 즐겨온 독자에게 저자는 낯선 시각과 생각할 거리를 건넨다. 31개의 유행어에 숨은 속내를 짚으며 불편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의 시작은 ‘남미새’(남자에 미친 새*의 줄임말)이다. 이는 단순히 남성에게 의존하는 여성을 조롱하는 말이 아니다. 남미새는 ‘페미니즘 리부트’를 함께 통과해 온 청년 여성(특히 결혼적령기라는 시간 압력을 받는 나이대)들이 남성과의 결합 여부로 서로의 관계가 재편되는 상황 속에서 부상했다. 지금의 청년 여성은 남성과 연애 혹은 결혼이 당연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비연애, 비혼 여성 청년을 미성숙한 어른으로 취급하며 ‘잠재적 출산 대상’으로 인식한다. 결혼, 출산 지원 제도는 있지만, 다른 삶을 살려는 여성 청년을 위한 제도는 없다. 남미새는 결국 남자 연예인에 빠진 여성을 지칭하는 ‘빠순이’, 정치인 여성 팬덤을 놀리는 ‘개딸’과 계보가 이어지는 여성에 대한 멸칭이다.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같은 온라인 공간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까지 ‘에겐’과 ‘테토’ 밈이 화제였다. 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에서 따온 이 단어는 외모, 말투, 라이프스타일, 취향 등을 기준으로 네 가지 유형(테토녀, 에겐녀, 테토남, 에겐남)으로 나눈다. 이 밈은 여자의 연애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확산했다. ‘잘 맞는 짝’을 빠르게 찾는 방법으로 인기몰이를 했지만, 각자의 고유한 취향이나 선호, 혹은 특정한 조건이 아니라 남성다움과 여성다움으로 짝을 찾겠다는 것에는 모순이 있다.

저자는 이 담론을 ‘이대남’으로 대표되는 극우 남성성, 폭주하는 남성성을 피하고 ‘무해한 남성성’을 찾으려는 여성의 시도로 해석한다. 연애와 결혼이 필수가 아닌 시대에 최대한 리스크가 없는 완벽한 선택을 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이다. 데이트폭력이나 감정 착취, 독박 육아, 독박 가사 노동 같은 가부장제의 불평등을 겪지 않기 위한 여성의 열망이 표출된 것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인강 강사가 아이돌급 인기를 자랑하며 그들의 굿즈가 팔리고, 강사를 덕질하는 팬 계정이 생기는 현상도 설명한다. 일타 강사, 스타 강사는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까지 접수할 정도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반면 공교육 교사가 등장하는 장르는 사회 뉴스나 시사 다큐멘터리다. 똑같이 교사의 고충을 호소해도 인강 강사는 ‘오은영 박사’의 의학적 지원과 대중의 위로를 받고, 공교육 교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에 이르러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다.

이 같은 현상은 우리 사회의 입시 중심주의와 얽혀 있다. 전 생애를 교육과 경쟁에 매달리는 현실을 반영한다. 교사의 권위와 실력이 오로지 입시 성공에만 달린 지금, 공교육 교권의 침해와 학교폭력의 위협에 노출된 학생들, 인강 강사에 대한 숭배는 한패거리라고 진단한다.

한국에서 유독 과몰입하는 MBTI 유행에 관한 글도 흥미롭다. MBTI는 이제 성격 공용어로 토착화됐고, “너 T야?”라는 말은 놀림을 넘어 혐오, 왕따가 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MBTI를 향한 한국인의 열정은 이제 초인간인 하느님, 과거 인물인 세종대왕의 MBTI까지 추측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 같은 현상에는 내 편인지 아닌지를 빠르게 파악하려는 속내와 사람에 대한 불안이 숨어 있다.

다양한 유행어를 분석한 이 책은 무엇에 열광했고, 무엇을 외면했는지 돌아보며 다가올 사회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도우리 지음/산지니/232쪽/1만 9800원.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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