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방치에 세금, 철거 땐 혜택… 집주인 동기 부여 관건 [부산 '빈집 SOS']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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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제에서 찾는 해법

집주인 일일이 찾아 동의 힘들어
사유재산권 침해 등 소송 걸림돌
이행강제금 현장에선 무용지물
주인 직접 철거 시 인센티브 제공
빈집세 부과 등 페널티도 고려를

빈집 정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소유주의 방치이다. 현행 법과 제도로는 방치에 따른 불이익이나 철거를 유도할 인센티브가 없는 실정이다. 사진은 부산 동구의 한 주택가. 이재찬 기자 chan@ 빈집 정비의 가장 큰 걸림돌은 소유주의 방치이다. 현행 법과 제도로는 방치에 따른 불이익이나 철거를 유도할 인센티브가 없는 실정이다. 사진은 부산 동구의 한 주택가. 이재찬 기자 chan@

빈집 정비 속도가 더딘 표면적인 이유는 지자체의 예산 부족이다. 하지만 정비 예산이 있어도 빈집 소유자 확인이 어렵고, 소유자를 찾더라도 철거 동의를 얻는 것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빈집 소유주 스스로 철거나 매매를 하도록 할 유인이 없다는 점은 빈집 방치를 부추긴다. 빈집 문제의 근원적 해결을 위해 소유주들을 빈집 문제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이끌어내야 한다. 세제를 이용한 강력한 인센티브(당근)과 페널티(채찍)가 필요한 이유다.

■체감 어려운 ‘철거 인센티브’

부산은 피란 등의 굴곡진 역사를 거치며 구릉지와 산복도로 주변에 주거지가 우후죽순 형성됐고, 고령화와 인구 유출로 빈집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피란 1세대 원거주민들이 잇따라 세상을 등지고, 자녀들은 뿔뿔이 흩어지며 빈집만 덩그러니 남는다.

‘원도심 산복도로 협의체’에 따르면, 원도심 빈집의 상당수는 원거주민 사망으로 출가한 자녀들에게 법적 상속이 이뤄졌고, 상속인이 여러 명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자체가 행정정보시스템을 이용해 소유자를 일일이 찾아내는 데엔 인력 부족 등으로 한계가 있다. 또 여러 명의 소유자를 찾아 철거 동의를 얻어내기도 쉽지 않다. 지자체장은 붕괴 위험 등 안전상 문제가 있는 빈집을 직권으로 강제 철거할 수 있지만, 사유재산권 침해와 건축법 위반으로 빈집 소유자로부터 소송을 당할 수 있어 적극적인 행정 절차를 수행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처럼 관이 주도하는 빈집 정비는 한계가 있는 만큼, 소유주의 자발적인 빈집 철거를 유도하기 위해 강력한 인센티브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빈집을 철거하면 재산세 과세 대상이 주택에서 토지로 바뀌어 세금이 오히려 증가해 자발적인 빈집 철거를 저해하는 문제가 발생하자, 정부는 철거 전 납부하던 주택 세액으로 재산세를 5년간 인정해주는 특례를 올해부터 적용한다. 또 빈집 철거 시 토지에 대한 재산세를 종합합산과세가 아닌 세 부담이 적은 별도합산과세 방식으로 적용하는 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3년으로 늘린다.

그러나 현장에선 이러한 재산세 인센티브가 소유주들을 움직이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빈집 철거 후 재산세 경감 시한이 끝날 때까지 땅을 매매하거나 재개발해야 하지만, 빈집이 밀집한 낙후 지역에서는 매매나 재개발 수요가 적다. 결국 특례 기간이 끝나면 다시 큰 세금 부담이 부메랑처럼 돌아오기 때문에 철거 자체를 아예 처음부터 꺼릴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원도심의 한 빈집 소유주는 “투기나 세금 회피 목적이 아닌 경우에는 파격이라고 느낄 정도로 재산세 등 강력한 세제 인센티브를 줘야 소유주들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빈집세로 강력한 ‘페널티’ 고려를

방치된 빈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부담이 될 수 있도록 강력한 페널티를 병행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빈집 및 소규모주택 정비에 관한 특례법’에 따르면, 지자체는 빈집 소유자가 안전 조치나 철거 등 행정 명령을 60일 이내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강제금을 1년에 최대 2회, 이행 시까지 반복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소유주 확인이 어려운 빈집이 적지 않고, 소유주 대부분이 취약 계층이어서 납부 여력이 부족하다. 이행강제금 부과에 대한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소유주들의 반발도 우려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행강제금의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부산 지역에 이행강제금이 부과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

이에 따라 행정적 페널티가 아닌 ‘빈집세’ 도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빈집세는 주택을 보유하면서도 거주나 임대를 하지 않은 빈집에 대해 부과하는 세금이다. 주택 보유세의 일종으로, 캐나다, 영국, 미국 등 빈집 문제가 심각한 일부 선진국들은 빈집세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와 수도권 비대화 등 빈집 발생 원인이 우리나라와 가장 유사한 일본은 도시재생 사업을 통해서도 가파른 빈집 증가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자, 교토시가 처음으로 조례를 통해 빈집세를 도입해 2026년부터 시행한다.

빈집 소유주가 대부분 노령층과 취약 계층이어서 빈집세 도입은 조세 저항과 체납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지방세연구원 허원제 지방세연구실장은 “‘빈집세’라는 세로운 세금 항목을 만드는 것보다 기존에 있는 지방세인 ‘소방분 지역자원시설세’를 부과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이는 소방과 안전사고 방지·개선을 위한 세금으로, 화재와 붕괴 위험이 있는 빈집에 대한 과세 목적과 의의에 부합한다. 세 부담이 처음엔 적지만 점진적으로 커지며, 빈집세와 같은 상징적인 부담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부산 지역 빈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무허가 빈집에 대한 페널티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원도심 지자체의 경우 전체 빈집의 약 60%가 무허가다. 부산의 다른 지자체도 피란 등 부산의 역사적 특성상 무허가 빈집의 비율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구청 박근희 건축과장은 “무허가 빈집에 철거나 리모델링 비용을 지원하거나 인센티브를 주는 건 형평성 문제가 있다. 빈집세 등의 세제 페널티를 통해 소유주 의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허 실장 역시 “무허가 빈집은 철거 시 주는 재산세 등의 세제 혜택 대상에서는 제외하고 페널티만 부여하는 게 허가 빈집과의 형평성 측면에서 맞다”고 전제한 뒤 “무허가 빈집이 많은 부산의 경우 조례 제정을 통해 세제 페널티를 부과하면 현장의 반발 등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전국적으로 세제 페널티가 적용된 이후 부산의 특성에 맞게 세제를 보완해야 정책 효율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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