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 수단’ 탄핵 넘쳐나는 국회… 타협·대화가 사라졌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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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이후 발의 건수 36건
거야 21·22대 국회 절반 차지
대통령 탄핵도 수시로 거론돼
협치 실종·극한 대립 주 원인
"정치 없고 정적 타도에만 혈안"

국민의힘 추경호(왼쪽 두 번째)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오른쪽 두 번째) 원내대표가 3일 국회의장실에서 회동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추경호(왼쪽 두 번째) 원내대표와 더불어민주당 박찬대(오른쪽 두 번째) 원내대표가 3일 국회의장실에서 회동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여의도 국회에 ‘탄핵’이 넘쳐나고 있다. 야당이 집권세력의 독주를 막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선택했던 탄핵이 일상적인 정치 공세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각종 의혹을 수사 중인 검사들에 대한 대규모 탄핵이 추진되면서 ‘방탄 탄핵’ 논란도 거세다. 탄핵의 일상화는 대통령 거부권의 일상화와 함께 극단화된 대결 정치의 산물이다. 그러나 심각한 행정권 침해를 부르는 탄핵을 무분별하게 할 경우 민주주의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탄핵 남발 현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1988년부터 임기를 시작한 13대 국회부터 22대까지 탄핵 발의 건수는 36건인데, 21·22개 국회에서 절반인 18건의 탄핵안이 발의됐다. 특히 민주당이 압도적 다수당이 된 22대 국회는 임기가 한 달 정도 지난 상태에서 벌써 5건의 탄핵안이 발의됐다. 전날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백현동 특혜 개발 의혹’과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 의혹’ 등을 수사한 검사 4명에 대한 탄핵안은 민주당이 단독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탄핵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곧바로 이들 검사들에 대한 ‘직무정지’가 이뤄진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 최소 수 개월 동안 수사에서 손을 떼야 하는 것이다.

21대 이전까지 국무위원 탄핵안 발의는 신중하게 이뤄졌다. 기각 시 역풍이 우려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안을 제외하고 이전에 발의된 6건의 장관 탄핵안은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도 못했다. 대통령제 역사가 훨씬 긴 미국에서도 올해 초 하원에서 무려 148년 만에 사상 두 번째 장관 탄핵안이 통과돼 큰 논란이 됐다.

그러나 21대 국회부터 시작된 윤석열 정부와 ‘여소야대’ 국회의 출현 이후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협치가 실종되고 행정부와 거야가 장악한 입법부가 정면충돌하면서 탄핵안 발의가 수시로 이뤄지고, 대상에 대한 금기도 깨졌다. 민주당은 지난해 9월 헌정사 최초로 검사(안동완) 탄핵안을 처리한 이후 8명의 일선 검사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이후 2명은 철회)했다. 검찰총장도 아닌 일선 수사 검사을 겨냥한 탄핵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는 당장의 수사 방해를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대통령 탄핵도 무시로 거론된다. 16대에 노무현 대통령, 20대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본회의에서 가결된 것을 빼놓고는 사실상 ‘경고성 탄핵’에 그쳤던 과거와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국민청원에 문 대통령 탄핵 동의가 146만여 건에 달했는데, 3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담은 국민동의 청원도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를 근거로 탄핵안이 인용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여야 지지층이 경쟁하듯 탄핵 세몰이를 하면서 진영 간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지금처럼 탄핵안이 남발되면 야당이 집권했을 때도 국정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라며 “대화와 타협이라는 정치의 본령은 온데간데 없고, 오직 현재의 정적을 무너뜨리려는 데만 혈안이 된 적대 정치가 극단까지 간 것 같다”고 개탄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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