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기의 미술 미학 이야기] 예술이 테러를 대하는 방식-게르하르트 리히터의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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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11일,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세계무역센터 남쪽 타워에 충돌한 직후 모습, 사진 한스요아힘 두덱(Hans Joachim Dudeck), 퍼블릭 도메인/위키미디어 공용. 2001년 9월 11일,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세계무역센터 남쪽 타워에 충돌한 직후 모습, 사진 한스요아힘 두덱(Hans Joachim Dudeck), 퍼블릭 도메인/위키미디어 공용.

2001년 9월 11일, 여객기 두 대가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에 충돌했고, 이날 테러로 약 3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9·11은 테러인 동시에 ‘이미지의 사건’이었다. 우리는 사건 자체만큼이나 반복 재생된 그 이미지를 기억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테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1960년대 지그마어 폴케 등과 함께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내세운 게르하르트 리히터(1932-)는 ‘사진-회화’를 통해 사진 이미지를 회화로 옮긴 후, 그것을 의도적으로 흐리게 처리한다. 이 흐림은 기술적 효과가 아니라, 사진이 지닌 객관성의 신화를 붕괴시키는 전략이다. 역설적으로 초점이 맞지 않은 흐릿한 캔버스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리히터가 2005년 그린 ‘9월’(September)은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소장한 것으로 52.1×71.8㎝의 작은 유화다. 화면에는 푸른 하늘과 쌍둥이 빌딩, 검은 연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다. 그는 사진을 바탕으로 그린 뒤 화면을 긁고 문질러 형상을 흐리게 처리했다. 세계가 선명하게 보았던 장면을 그는 오히려 흐릿하게 되돌려놓는다. 리히터에게 ‘흐리기’는 오래된 회화적 방법이다. 그는 사진이 현실을 그대로 전달한다는 믿음을 의심했다.

9·11 이후 충돌과 붕괴의 장면은 이미 수없이 소비되었다. 리히터는 충격적인 이미지를 보태는 대신, 우리가 보았다고 쉽게 믿었던 사건을 다시 낯설게 만든다. 그의 흐릿한 화면은 테러의 잔혹성을 지우거나 가해와 피해의 차이를 흐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테러 직후 형성된 선과 악의 단순한 이분법에 머물지 않고, 그 이후 이어진 보복과 전쟁, 적과 동지의 구분이 만들어낸 또 다른 폭력까지 돌아보게 한다. 흐림은 판단의 포기가 아니라, 너무 빠른 판단을 멈추게 하는 각성의 장치다.

9·11 석 달 뒤, 위르겐 하버마스는 지오반나 보라도리와의 대담에서 테러를 근본주의와 폭력의 문제이면서 동시에 소통의 단절이라는 관점에서 성찰했다. 리히터의 그림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하버마스와 만난다. 테러는 우리에게 즉각 적과 친구, 선과 악을 나누라고 요구한다. 충격적인 이미지 역시 판단의 속도를 재촉한다. 그러나 ‘9월’은 그 속도를 늦춘다. 흐림은 망각이 아니라 성급한 확신의 유보다.

9·11 이후 25년이 지났다. 그러나 테러와 전쟁, 보복과 증오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테러는 세계를 둘로 가른다. 예술은 그 사이에서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폭력에 폭력으로 답하지 않는 길은 가능한가? 리히터는 ‘9월’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안다고 믿었던 것을 다시 볼 수 있게 한다. 어쩌면 그 흐릿한 화면 속에, 폭력으로 단절된 대화가 시작될 작은 틈이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미술평론가·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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