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격랑 건넌 해수부 ‘해양수도 부산 시대’ 열며 미래로”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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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MI 해수부 30년사 보고서 발간
영토 경쟁 탓 전담 조직 공식 출범
이명박 정부 때 해체·이후 재출범
세월호 참사로 조직 변화 겪기도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청사. 부산일보DB 부산 동구 해양수산부 청사. 부산일보DB

행정 기능이 아닌 ‘바다’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한 정부부처, 해양수산부가 10일 출범 30주년을 맞았다. 유엔해양법협약 발효에 따른 해양영토 경쟁 대응을 위해 13개 부처 기능을 통합해 출발한 해수부는 해체와 재출범의 풍파를 넘어 지난해 12월 부산 이전을 통해 비로소 ‘해양수도’의 닻을 올렸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1996년 8월 10일 개청한 해양수산부의 30년 역사와 성과를 담은 ‘해양수산 통합행정 30년, 바다와 함께 미래로’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에는 해수부 출범의 시대적 배경부터 각 정부별 조직 개편 과정, 분야별 정책 성과가 담겼다.

보고서에 따르면 해수부의 모태는 해양영토 경쟁이 본격화되던 1990년대 초반으로 올라간다. 1994년 유엔해양법협약 발효로 연안국의 관할권이 12해리에서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대폭 확대되면서, 한·중·일 3국 간 중첩 해역 발생과 대륙붕 경계 획정 등 복잡한 해양외교 현안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여기에 1996년 예정된 어업협상 대응과 외국 어선의 불법조업 근절을 위해 전담 행정조직이 필요하다는 정치권의 요구가 더해졌다. 이에 수산청과 해운항만청을 통합하고 13개 부처에 흩어져 있던 해양수산 업무를 일원화하면서 1996년 8월 독립 부처로서 해수부가 공식 출범했다.

출범 후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1997년 김대중 정부의 정부조직개편안에 따라 한때 폐지 위기에 몰렸으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주례회동에서 존속을 요청하고 김대중 당선인이 이를 수용하면서 조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후 ‘동북아 물류중심 건설’을 내건 노무현 정부 들어 조직이 대폭 확대됐다. 항만 개발에 민자사업을 적극 도입해 효율적·경쟁적 시스템을 구축하고 '2012 여수세계박람회' 유치를 확정 짓는 등 굵직한 성과를 낸 시기였다. 다만, 2007년 태안 앞바다에서 발생한 국내 최대 규모의 유류오염 사고인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건’으로 위기대응 능력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후 해수부는 정권 교체와 함께 해체라는 아픔을 겪었다. 이명박 정부는 ‘기능 중심’의 정부 조직 개편을 추진했고, ‘영역(바다)’ 중심이라는 이유로 해수부는 국토해양부와 농림수산식품부로 분화·흡수됐다.

부처 해체 5년 만인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해수부는 재출범했다. 글로벌 해양 주권 경쟁이 심화되는 흐름 속에서 분산됐던 해양수산 행정 기능이 다시 하나로 묶였다. 그러나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면서 해양경찰청이 해체되고 해양경비 업무가 국민안전처로 이관되는 등 다시 한번 큰 조직적 변화를 맞기도 했다.

격동의 시기를 거쳐 들어선 이재명 정부는 ‘해양수도 부산’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이어 지난해 12월 해수부 본부를 세종에서 부산으로 전격 이전하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해수부 부산 시대’의 막을 올렸다.

황종우 해수부 장관은 발간사를 통해 “해수부의 성과 뒤에는 허베이 스피리트호 사고, 세월호 참사, 한진해운 파산 등 가슴 아픈 시련도 적지 않았다”며 “해수부 전 직원들은 깊은 반성과 성찰을 토대로 국민 여러분의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더욱 치열하게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출범 30주년을 맞은 해수부는 ‘신해양시대 초일류 해양강국 건설’이라는 비전 아래, 핵심 과제들을 담대하게 추진해 세계가 벤치마킹하는 통합 해양행정기관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박혜랑 기자 ra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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