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기후 불평등'의 끝은 '평등한 재앙'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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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하 사회부 차장

기자의 지인 A는 독서광이다. 그는 자신이 읽은 책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는 취미(?)가 있다. 기자 역시 A로부터 책 몇 권을 선물 받았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책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다. 어느 날 책장을 정리하다 A가 선물한 책만 모아 둔 별도의 공간, 이른바 ‘A 컬렉션’을 만들었다.

얼마 전 이 A 컬렉션에서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미국의 기후·환경 전문 저널리스트 제프 구델이 2023년 7월 출간한 〈폭염 살인〉이었다. 이 책을 고른 이유는 간단했다. 최근 부울경에도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렸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읽기 전부터 기후변화로 지구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라는 내용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이 책의 영어 원제인 ‘폭염이 당신을 먼저 살해할 것이다(The Heat Will Kill You First)’만 봐도 그랬다. 그런데 책의 내용은 생각보다 더 끔찍했다.

2021년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한 살배기 아기와 반려견을 데리고 하이킹하던 멀쩡한 가족이 폭염으로 모두 숨졌다. 당시 지면 부근 기온은 43도에 육박했다. 이보다 앞선 2003년에는 폭염이 유럽을 강타하면서 프랑스에서 평년 예상보다 1만 5000명 가까이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당시 한 여성이 집에 돌아왔더니 위층에서 홀로 숨진 노인의 시신이 부패하면서 체액이 아래층까지 스며들었다는 대목에서는 잠시 책에서 눈을 뗐다.

문득 지난 2일 경남 양산의 기온이 42.5도를 기록하며 국내 기상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사실이 떠올랐다. 표면적인 이유는 대기 중·하층의 북태평양고기압과 상층의 티베트고기압이 겹쳐 뜨거운 공기를 가둔 ‘열돔 현상’에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에서 나타난 ‘푄 현상’이 겹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열돔 현상이 기후변화와 결합해 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비유하자면 열돔 현상이라는 작은 톱니바퀴를 굴리는 더 큰 톱니바퀴가 기후변화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그 호기심에 전문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양산 폭염과 기후변화는 연관이 있어요.”

국립부경대 문우석 환경대기과학과 교수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대답했다. 문 교수의 설명은 이렇다.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기온이 빠르게 오르면서 북극과 저위도 지역의 온도 차이가 줄었다. 그 영향으로 중위도 상공을 흐르는 서풍과 제트기류가 약해진다. 이렇게 되면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고기압 같은 거대한 기압계의 세력이 강해지고 한반도까지 확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에는 북태평양고기압이 크게 확장했고, 과거 한반도까지 잘 뻗어오지 않던 티베트고기압도 상당히 팽창했다. 열돔은 과거에도 있었던 현상이지만, 기후변화라는 배경 속에서 그 위력이 한층 강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기자는 그제야 〈폭염 살인〉이 비로소 우리의 이야기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폭염은 우선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부터 쓰러뜨린다. 언론은 이미 매년 여름이면 무더위에 그대로 노출되는 야외 노동자나 쪽방촌 어르신 등의 현실을 보여주며 ‘기후 불평등’의 문제를 제기해왔다. 하지만 폭염이 갈수록 극단적으로 변한다면 그 위험은 취약계층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다. 종국에는 누구도 피하기 어려운 ‘평등한 재앙’으로 진화할 수 있다. 구델이 책에서 보여주듯 건강한 사람조차 어느 날 평범한 야외활동을 하다 갑자기 쓰러질 수 있는 세상 말이다.


황석하 기자 hsh0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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