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불황 장기화에 격렬해지는 밥그릇 싸움
경기 침체·공사비 급등 겹치자
관급공사 수주에 업체들 눈독
전문공사 참여 범위 변경 놓고
전문건설·종합건설 날선 대립
해체공사 감리자 우선 지정에
건축사·건설사업관리자 충돌
대한건설협회는 지난 5월 12일 종합건설업계 생존권 수호를 위한 탄원서 69만여 부를 국토교통부에 제출했다. 대한건설협회 제공
대한전문건설협회와 대한기계설비건설협회는 지난 4월 28일 국토부를 찾아 전문건설업계 불공정 경쟁체제 정상화를 촉구하는 탄원서 40만여 부를 제출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제공
부동산 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건설업계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생존을 위한 ‘밥그릇 싸움’, 영역 다툼이 치열해지고 있다.
25일 지역 건설업계에 따르면 그동안 민간공사 비중이 높았던 A사의 관급공사 비중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B사 관계자는 “관급공사 수주 경쟁이 과거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확실히 살벌해진 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같은 컨소시엄에서 ‘원팀’으로 참여했던 지역 건설사들이 최근에는 각각 다른 컨소시엄에 들어가 관급공사를 따내기 위한 수주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관급공사는 물가 상승분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수익성이 낮아 그동안 민간공사 현장이 많았던 건설사의 경우 관급공사 비중이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위기 상황이 되면 사업 안정성을 담보로 현금 창출과 수주 실적 효과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미분양 부담을 던다는 점에서 관급공사 수주는 안정적인 생존 전략으로 통한다.
중견 건설사의 경우 특히 자체 시행 민간공사가 줄어든 것은 물론, 핵심 사업지에서의 수주 경쟁에서도 대형 건설사에 밀리기 일쑤여서 관급공사 입찰에 참여하는 것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지역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부산에서의 아파트 공사는 재개발 재건축이 대부분인데, 조합들이 1군 건설사 브랜드를 달고 싶어해 중견 건설사들은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종합건설과 전문건설 간의 업역 갈등도 더욱 격화되고 있다. 앞서 대한건설협회는 지난달 생존권 수호를 위한 탄원서 69만여 부를 국토교통부에 제출하며, 4억 3000만 원 미만 전문공사에 종합건설업체의 진출을 막아 놓은 ‘보호기간’을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끝내고 업역을 전면 폐지해 달라고 주장했다. 협회는 “전문건설업계가 약속된 보호기간을 다시 늘려 달라고 하고 금액 한도도 더 높여달라고 하는 건 업역 이기주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문건설업계는 “상호시장 허용제도가 당초 직접 시공 확대, 다단계 하도급 축소를 목적으로 도입됐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종건업체의 전문공사 시장 진입 확대, 소규모 공사 입찰 과열, 수주 불균형, 편법 하도급 증가 등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업역을 원래대로 되돌려 불공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건설업계도 지난 4월 40만여 부의 탄원서를 국토부에 제출했다.
종합·전문건설업간 업역을 둘러싼 갈등은 최근 국회 법안 발의로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국민의힘 김희정 의원은 지난 18일 종합·전문건설업 간 공사 범위를 조정하는 내용의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더불어민주당 문진석 의원도 전문건설업 보호 강화를 위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두 법안 모두 종합건설업체의 전문공사 참여 제한 범위를 확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행 4억 3000만 원 미만까지인 종합건설업체 수주 제한 범위를 10억 원까지로 상향하는 것이 핵심이다. 올해 말 보호기간 종료를 규정한 일몰조항 또한 삭제하는 안도 들어가 있다.
건축사들의 철거 감리권을 놓고도 건축사와 건설사업관리자 간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건축물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건설사업관리자를 해체공사 감리자로 우선 지정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려는 것과 관련해 건축사들은 ‘셀프 감리’로 인해 철거 현장의 안전이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건설사업관리 업계는 “해체 감리는 전문 구조기술사나 건설사업관리자가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상황을 건축사의 일감이 줄면서 ‘감리’로라도 버텨야 하는 상황에 따른 업역 갈등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부산건축사협회 측은 “안전을 위한 차원이지 업역 다툼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