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망신당하는 심판
“심판 판정도 경기의 일부분이다.”
스포츠계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말이 있다. 심판 판정이 잘못되더라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잘못된 판정을 잊고 경기에 집중해야 한다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읽히지만, 잘못된 판정에 울분을 삭혀야 하는 선수와 감독의 심정을 생각하면 늘 안타깝다.
스포츠 경기에서 심판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그래야만 한다.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서 중심을 잡고 경기를 이끌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판정에 불복해 항의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선수나 감독 할 것 없이 퇴장까지 할 수 있는 강력한 권한이 심판에게 있다.
하지만 심판 판정에 오류가 많다는 사실이 누적되면서 스포츠에 과학기술이 접목되기 시작했다. 수년 전부터 축구와 야구 등 각종 스포츠에서는 앞다퉈 과학기술을 도입해 운용하고 있다. 심판의 권위보다는 “스포츠는 공정해야 한다”는 기본 명제가 더 중요시 되는 요즘이다.
스포츠계에 과학기술이 도입되면서 망신을 당하는 심판들이 많아졌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가 대표적이다.
MLB는 올 시즌부터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을 도입했다. ABS는 투수가 던진 공의 스트라이크와 볼 판정을 심판이 아닌 로봇이 하는 시스템이다. 한국프로야구(KBO)에서는 지난해부터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MLB의 시스템은 우리와 조금 다르다. 한국은 전적으로 ABS에 판정을 맡기지만, 미국은 ‘챌린지’ 형태로 운영된다. 기본 판정은 주심이 내리고, 양 팀이 경기 당 두 차례까지 판독을 요청할 수 있다. 판독이 신청되면 전광판에는 공의 궤적과 스트라이크존 통과 여부가 표시된다. 심판의 판정 정확성이 관중과 시청자에게 실시간으로 공개된다. 심판이 미세한 오차로 오심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명백한 오심이 발생할 경우 즉각적인 비판이 쏟아진다. 3만~4만 관중 앞에서 심판이 망신당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망신도 망신이지만 ABS가 단순한 판정 보조 시스템을 넘어 심판 평가 장치로 활용될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오면서 심판들이 긴장하고 있다. 심판들에게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오심으로 경기 결과가 바뀌었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보다 정확한 판정을 해야 한다는 각성의 계기가 마련된 측면도 있다.
공정성이 뒷받침되지 않은 절대적인 권위가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김진성 기자 paper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