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A, 전략비축유 4억 배럴 긴급 방출키로…역사상 최대 규모
사무총장 "석유 시장 도전 전례없어…회원국 만장일치"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 여파로 걸프 지역 원유 공급망이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9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국제유가가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선을 돌파한 9일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에 설치된 모니터에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11일(현지시간) 중동 전쟁으로 인한 국제 에너지 위기를 완화하기 위해 4년 만에 전략 비축유 방출을 결정했다. 이번에 긴급 방출할 비축유는 4억 배럴로, IEA 역사상 최대 규모다.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IEA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IEA 32개 회원국은 중동 전쟁으로 인한 석유 시장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각국의 비상 비축유 중 4억 배럴을 시장에 공급하기로 오늘 만장일치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IEA는 지난달 28일 시작된 중동 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흐름이 방해받아 현재 원유, 석유제품 수출량이 분쟁 전의 10% 미만으로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파티 비롤 사무총장은 "현재 직면한 석유 시장 도전은 규모 면에서 전례가 없기에 IEA 회원국들이 전례 없는 규모의 비상 공동 대응으로 화답한 걸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IEA에 따르면 전략 비축유는 각 회원국의 상황에 따라 적합한 기간에 걸쳐 시장에 공급될 예정이다. 일부 국가는 추가 비상조치를 통해 이를 보완할 예정이다.
전세계 원유소비량은 하루 약 1억 배럴이다. 4억 배럴은 산술적으로 4일치 소비량이지만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부족해진 공급량을 메우는 목적인 만큼 수십일치가 될 수 있다. 전략 비축유는 송유관, 하역 시설의 제한으로 과거 사례를 볼 때 하루 300만∼500만 배럴씩 방출될 수 있다. 각국은 이날 자국이 보유한 비축유 방출 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카테리나 라이에 독일 경제장관은 IEA가 요청한 방출량이 4억 배럴이라는 점을 확인하며 독일 역시 이 계획에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방출 계획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라이에 장관은 미국과 일본이 IEA 방출 물량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고 전했다. 오스트리아 역시 IEA 요청에 따라 자국 비축유 일부를 방출한다고 밝혔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한국 산업통상부 관계자도 이날 "우리나라도 IEA의 전략적 비축유 공동 방출과 관련한 논의에 긴밀히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는 IEA 합의와 별도로 선제적으로 비축유 방출에 나서기로 했다.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이날 총리 공저(公邸·공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르면 16일 비축유를 단독 방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간 비축유 15일분과 국가 비축유 1개월분을 방출한다고 설명했다. 전략 비축유 제도는 1973년 석유 파동을 겪은 후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해 1974년 IEA가 설립되면서 함께 도입됐다. IEA는 회원국들에 순 석유 수입량 기준 최소 90일분에 해당하는 비상 석유 비축 의무를 부과한다. 이 비축분은 국가가 직접 통제하거나 민간 기업이 보유한다. IEA에 따르면 회원국들은 현재 12억 배럴 이상의 비상 비축유를 보유하고 있다.
IEA 회원국들은 지금까지 총 다섯번 공동 방출을 결정했다. 이번에 전략 비축유를 방출하게 되면 역사상 6번째로, 물량 규모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IEA가 처음 전략 비축유 방출을 결정한 건 1991년 걸프전 때로 당시 방출 물량은 약 2500만 배럴에 그쳤다. 이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멕시코만 정유·생산시설이 파괴됐을 때 약 6000만 배럴을 방출했다. 2011년 리비아 내전으로 석유 생산량이 급감했을 때도 6000만 배럴 방출을 결정했다. 가장 최근 사례인 2022년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 이후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6270만 배럴, 1억2000만 배럴 등 총 1억8270만 배럴을 방출했다. 이번에 방출하게 될 4억 배럴은 그의 배가 넘는 규모다.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