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개명 열풍’…자신에게 선물하는 새 이름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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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개명 원칙적 허용 이후
매년 11만~15만 명 이름 바꿔
“부끄러워”“놀림 받아” 등 사유
‘더 나은 인생’ 꿈꾸며 바꾸기도
개명으로 얻는 ‘만족’ 가장 중요

일러스트=류지혜 기자 birdy@ 일러스트=류지혜 기자 birdy@

‘이름’. 사전적 의미에서 이름은 사람의 성 아래에 붙여 다른 사람과 구별해 부르는 말이다. 이름은 다른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그 사람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세상으로부터 이름을 부여받는다. 지금은 작명소에서 이름 짓는 일이 흔한 일이지만, 그 옛날에는 부모가 직접 자녀의 이름을 짓기도 했고, 할아버지나 웃어른, 이웃이나 학식이 꽤 높은 지인이 대신 지어주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게 한번 지어진 이름은 평생 바꿀 수 없다고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했다. 촌스럽게 느껴지거나, 놀림감이 된다는 이유 등으로 이름이 맘에 들지 않더라도 평생 꾹 참고 살아야 했던 때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다. 2005년 대법원이 개인의 성명권을 존중하며 권리의 남용, 악용이 아닌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개명을 허가해야 한다는 판결을 한 뒤 성명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행복 추구와 인격권의 일부로 받아들여지며 개명을 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들이 개명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개명 이후 삶이 어떻게 달려졌을까. 개명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강종문온이름연구소 강종문 소장이 고객과 개명 관련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강 소장은 성명학 풀이와 대면 상담을 통해 고객의 본래 이름이 좋은 이름인지, 나쁜 이름인지 살펴본 뒤 개명의 필요성이 있거나, 고객이 개명을 간절히 희망할 경우 새 이름을 추천한다. 강선배 기자 ksun@ 강종문온이름연구소 강종문 소장이 고객과 개명 관련 상담을 하고 있는 모습. 강 소장은 성명학 풀이와 대면 상담을 통해 고객의 본래 이름이 좋은 이름인지, 나쁜 이름인지 살펴본 뒤 개명의 필요성이 있거나, 고객이 개명을 간절히 희망할 경우 새 이름을 추천한다. 강선배 기자 ksun@


■한 해 11만~15만여 명 이름 바꾼다

우리나라에서 개명 사람은 얼마나 될까? 통계를 보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놀랍다. 우선,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의 연도별 개명 현황(2008년부터 집계)을 보면, 2008년 12만 6005명이었던 개명 인구는 이듬해 15만 9746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지난해까지 매년 11만~15만여 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개명한 인구 비율이 국민의 6%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들이 주로 개명을 많이 한다고 알고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가족이나 지인, 직장 동료 등 개명을 한 이들이 적지 않다.

높아진 법원의 개명 허가율은 우리 사회에 ‘개명 열풍’을 불러왔다. 개명 열풍에는 개명 절차의 간소화도 한몫했다. 과거에는 개명 신청 사유를 최대한 기구하고도 구구절절하게 써내야 했지만, 최근엔 객관식으로 간단하게 개명 사유를 체크하면 된다. 정부의 행정 정보 시스템과 민간의 전산 시스템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법원의 개명 허가 이후에 개명 당사자가 바뀐 이름을 신고, 변경해야 하는 수고로움도 예전에 비해 크게 줄었다.

그렇다면 개명을 통해 얻은 새 이름 중 인기 있는 이름은 무엇일까.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에 있는 ‘개명 신고 이름 현황’(2011년부터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개명 허가를 거친 새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은 ‘지안’(1176명)이었다. 다음으로 ‘지원’(711명), ‘서연’(695명), ‘유진’(640명), ‘수연’(628명), ‘서현’(588명), ‘지우‘(568명), ‘수현’(561명), ‘지윤’(550명), ‘정원’(537명), ‘서윤’(532명), ‘이서’(472명), ‘도연’(457명), ‘지유’(44명) 등의 순이었다. 10년 전인 2012년에는 ‘지원’(1415명)이 가장 많았고, ‘서연’(1312명), ‘서영’(1099명), ‘서현’(1091명), ‘수연’(1062명), ‘지윤’(948명), ‘민서’(937명), ‘민정’(929명), ‘서윤’(899명), ‘민주’(886명), ‘유진’(874명), ‘수현’(867명) 등의 순이었다. 순위 변화는 있지만 ‘서연’, ‘서현’, ‘수연’, ‘서윤’ 등은 여전히 선호하는 이름이다.

근래에 가장 인기 있는 이름은 ‘지안’이다. ‘지안’은 2016년 555명(19위)에 불과했지만, 2018년 1020명(2위) 거쳐 지난해까지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5년간 통계를 보면 지안에 이어 ‘지원’, ‘서연’, ‘수연’, ‘유진’이 1~5위를 차지했다.

또 다른 특징도 보인다. 대부분 여성 이름이라는 점이다. 성별로 따져보면 개명을 하는 사람 중 여성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지난해 전국에서 개명한 11만 1619명 중 여성은 7만 6058명, 남성은 3만 5561명이었다. 개명 인구 10명 중 7명이 여성인 셈이다.

성명학은 이름의 좋고 나쁨이 운명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이름을 짓거나 풀이하는 학문이다. 성명학도 그 풀이 방법이 다양하게 파생돼 있다. 성명학은 이름의 좋고 나쁨이 운명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이름을 짓거나 풀이하는 학문이다. 성명학도 그 풀이 방법이 다양하게 파생돼 있다.

■“놀림 받아” “새 출발” 다양한 개명 사유

안이서(45) 씨는 올해 개명했다. 본래 이름은 소연. 부모님이 잘 아는 이웃이 지어준 이름이다. 그는 개명 이후 주변에 바뀐 이름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바뀐 이름으로 자주 불러달라”는 당부도 덧붙인다. 안 씨는 “사주에서 부족한 것을 보완해준다는 이름으로 바꿨는데, 누군가가 지어준 이름이 아닌 내가 선택한 이름으로 살아갈 수 있어 좋고, 무엇보다 새 이름을 주변에서 불러줄 때면 기분이 좋고 힘이 난다”고 말했다.

이정연(47) 씨는 4년 전 이름을 바꿨다. 40여 년을 ‘명순’이라는 이름으로 살았던 그는 학창 시절에는 이름이 부끄럽다 생각하지 않았지만, 가족과 지인들이 개명을 권하면서 용기를 냈다. 그는 “이름을 바꾸고 대인 관계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박영옥(68) 씨는 10년 전 ‘곡지’라는 이름에서 어릴 적 동네에서 불렸던 아명으로 개명했다. 지독한 남아 선호 사상 속에서 딸이 많은 집에서 아들을 낳기 위해 지은 이름이었다. 박 씨는 “지금은 은행에서 번호를 부르지만, 옛날에는 이름을 불렀고 아직도 병원 등에서 이름을 부르는 일이 많다”며 “이름을 바꾼 뒤 거리낌이 없어져 좋다”고 말했다.

개명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강종문온이름연구소 강종문 소장은 “출생 신고가 잘못된 이름, 촌스러워 놀림감이 되는 이름, 남아 선호 사상이 반영된 여성의 이름, 선후대 항렬을 맞추다 어색해진 이름, 다른 성별로 착각할 수 있는 이름, 유명인이나 범죄인과 같은 이름, 사주나 성명학적으로 안 좋은 이름 등 개명 사유는 다양하다”며 “경제적인 문제나 시험, 구직, 자녀 문제 등 일이 잘 안 풀릴 때나 현실의 삶에 만족하지 못할 때 개명하기 위해 작명소를 찾는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한글 이름을 한자 이름으로, 반대로 한자 이름을 한글 이름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 특히 놀림감이 돼 개명을 신청한 법원의 사례를 보면 장매춘(40대), 나죽자(50대), 김창녀(30대), 박도치(40대), 허방구(30대), 공석두(10대) 등 다양하다. 연령별로는 20~30대는 시험이나 구직, 40~50대는 자녀 문제나 경제 문제로 개명하려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는 “개명하는 사람들이 갖는 공통점은 더 좋은 미래나 운명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최근엔 퇴직 후 제2의 삶을 시작하며 이름을 바꾸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자신이 직접 지은 이름으로 여생을 살아가겠다는, 즉 새 출발의 의미다.




■좋은 이름은 만족감·자신감 주는 이름

강 소장은 작명소를 찾은 이들의 사연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딸이 임신할 수 있도록 딸 이름을 바꾸고 싶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이름을 지어달라” “결혼운이 들어오는 이름을 추천해달라” “미국에 이민을 가는데 미국에서 잘 살 수 있도록 미국에서도 쓸 수 있는 이름을 지어달라” 등이다. 다른 작명소에서 지은 이름이 좋은 이름인지 확인하러 오는 경우도 많다. 가족 중 한 사람이 개명한 후 좋은 변화가 생기면 다른 가족들도 함께 개명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고 한다.

강 소장은 “본래 이름이 가진 운명이나 성격 등을 성명학으로 70% 정도 풀이한 뒤, 나머지 30%는 상담을 통해 그 사람의 과거 삶을 들여다보며 재물, 관운, 자녀운 등 성명학적으로 약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는 데 주안점을 두고 이름을 추천해준다”며 “성명학적으로 매우 좋은 이름이라도, 발음이 어렵거나 어감이 안 좋은 이름은 제외한다”고 설명했다.

여러 후보 이름 중 최종적으로 선택되는 이름은 대부분 듣기에 좋은 이름, 예쁜 이름이라고 한다. 새 이름을 고르는 데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길하면서 예쁜 이름을 지어달라고 하는 건 당연지사. 나아가 중성적인 이름으로 추천해 달라거나, 복고풍으로 이름으로 지어 달라고 하는 등 개성을 추구하며 개명의 방향을 잡아주는 이들도 크게 늘었다.

좋은 이름이란 어떤 이름일까. 강 소장은 성명학적으로 상서로운 기운과 소리를 가진 이름이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무엇보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부끄럽거나 위축되지 않고 만족스럽고 자신감이 생기는 이름이 좋은 이름이라고 강조한다. “개명한다고 해서 무조건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을 거라고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밝고 좋은 이름을 불러주면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성격이 바뀌고, 삶과 운명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며 새 출발에 큰 힘이 돼 준다는 건 분명합니다.” 글·사진=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강종문온이름연구소 강종문 소장은 “좋은 이름이란 성명학적으로 상서로운 기운과 소리를 가진 이름이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부끄럽거나 위축되지 않고 만족스럽고 자신감이 생기는 이름”이라고 말했다. 강선배 기자 강종문온이름연구소 강종문 소장은 “좋은 이름이란 성명학적으로 상서로운 기운과 소리를 가진 이름이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을 때 부끄럽거나 위축되지 않고 만족스럽고 자신감이 생기는 이름”이라고 말했다. 강선배 기자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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