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윤경 칼럼] 2030의 분노가 향하는 곳
논설주간
떡 하나 더 주는 식 정책에 실망감
극우 프레임 덧씌우기에는 모멸감
주류 기득권 세력 위선에 분노 표출
6·3 지선 집단 표심, 선관위 시위
청년의 정치적 세력화·조직화 신호
기성세대에 던지는 마지막 경고장
2010년대 중반 우리 사회는 새로운 유형의 신입사원을 맞이하게 된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보다 워라밸을 추구하고 개인화된 신인류의 등장이었다. 회식, 야근,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명하복의 조직 문화를 거부하며 ‘칼퇴’를 일상화하고 개인의 시간과 행복이 존중받길 원했다. 회사 역시 월급을 주는 곳이 아니라 성장과 존중을 제공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생각이었다. 기성세대에게 이들은 싸가지 없고, 끈기 없고 다루기 힘든 존재였다.
이즈음 등장한 책이 임홍택 작가의 〈90년생이 온다〉였다. ‘조직도 소비시장도 뒤흔든 90년대생의 코드 읽기’라는 카피에서 보듯 기존 세대와는 전혀 다른 생존 전략을 구사하는 이들은 연구와 분석을 통해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였다. 이들에게 꼰대로 찍히지 않기 위해서는 공부하는 수밖에 없었다. 꼰대력을 테스트하는 리스트까지 나돌았다. 2019년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서 전했다는 메시지가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였다.
그 사이 90년대생을 넘어 2000년대생이 왔다. 기성세대는 이들을 위해 얼마나 미래를 준비해 왔을까. 이들이 기성세대를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고 분노를 키워온 결정적 시기가 문재인 정부 집권기와 맞물려 있다는 게 아이러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지만 이들에게 세상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았고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약육강식의 정글이었다.
‘아빠 찬스’를 이용한 입시 비리로 상징되는 조국 사태는 이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이들이 더 분개한 것은 기득권 세력의 위선이고 내로남불이었다. 인국공(인천국제공항) 사태도 이들의 분노 게이지를 높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인국공을 방문한 후 아무런 정식 절차 없이 비정규직 1900명을 공사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들 눈에 과정의 공정은 온데간데없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우리 선수들 출전 시간을 빼앗은 것도 동포애가 아닌 공정의 문제로 인식했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이들의 분노에 답하고 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나서기보다는 정치적 이용 대상으로만 소비했다. 소위 민주화 세대라 자처하는 운동권 출신 586의 눈에 2030은 그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보수화하고, 심지어는 극우화한 개념 없는 세대였다. 그러는 사이 이들의 분노는 더 자라고 조직화했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주는 식의 청년 정책에 대한 실망감, 극우 프레임에 대한 모멸감이 청년 세대의 분노를 키웠다. 그게 정치적으로 세력화하고 표출되기 시작한 게 이번 6·3 지방선거다.
더불어민주당으로 기울었던 서울시장 선거가 국민의힘 오세훈 후보 당선으로 결론 나자, 출구 조사 통계를 기반으로 2030 세대의 생존 투표라는 분석이 등장했다.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분노가 투표로 분출했다. 이들에게 기득권은 민주당이다. 자신들을 살인적 경쟁 환경에 몰아넣고 계층 사다리마저 걷어찬 책임을 우리 사회의 주류가 된 민주당에 묻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국힘을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언어로 풀이하자면 민주당은 재수 없고 위선적이며 국힘은 그냥 바보다.
이들의 눈에 6·3 지방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기득권 세력의 무능과 위선이 드러난 상징적 사건이다. 참정권이야말로 절차적 공정이 구현되는 헌법적 과정으로 반드시 지켜져야 할 권리다. 말로는 민주주의를 앞세우면서 정작 가장 기본적 절차 하나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는 기득권 세력에 그동안 쌓여왔던 분노가 폭발했다. 스타벅스 커피의 비뚤어진 5·18 마케팅에 대통령부터 나서 분개하던 집권 세력이 선관위 사태에는 온도차를 보이는 것 자체가 위선이다. 스타벅스보다 못한 참정권이라는 자조가 그래서 나왔다.
따지고 보면 2030의 분노는 우리 사회만 겪고 있는 문제도 아니다. 경기 침체와 젊은 층 분노, 기성 정당 심판의 연쇄 작용은 세계적 트렌드다. 미국의 2030이 민주당에 반기를 들고 트럼프 지지로 돌아선 것도, 유럽 청년의 분노가 급진 정치 세력과 포퓰리즘 지지로 흐르는 것도 본질적 맥락에서 비슷한 흐름이다. 이를 진보와 보수의 프레임으로 이해해선 답이 안 나온다.
청년들의 질문은 ‘나는 부모보다 더 잘 살 수 있을까’이다. 그 질문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순간 좌절은 분노로 바뀐다. 이런 청년의 분노를 외면하는 사회는 갈등과 분열을 겪고 청년들에게 기회를 열어 준 사회는 그 분노를 변화와 성장의 동력으로 바꿨다. 6·3 지선에서 나타난 2030의 표심 결집과 선관위에 대한 시위는 기성세대에 던지는 마지막 구조 신호이자 경고장일지 모른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