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경영인과 손잡자 실적 쑥쑥… 인프라·접근성 적극 활용 [해외서 새 길 찾다]
[해외서 새 길 찾다] 하. 싱가포르 진출 지역 기업
대한제강, 2012년 업계 첫 진출
현지 회사 인수해 안정적 운영
현대차도 현지에 혁신센터 구축
디지털 첨단 산업단지로 탈바꿈
정부 주도로 진행되는 안정적인 개발계획, 뛰어난 인프라, 인근 국가와의 접근성, 유연한 노동정책. 새로운 시장을 꿈꾸는 기업에게 싱가포르는 도전과 기회의 장이었다. 양재생 부산상의 회장을 비롯해 지역 대표 기업인 등 33명으로 구성된 부산상의 경제사절단은 싱가포르에 진출한 기업들을 둘러보고 지역 산업과의 연계 가능성 등을 모색했다.
■현지 회사 인수한 대한제강
고 오우영 창업주가 1954년 설립한 (주)대한상사를 모태로 한 대한제강이 싱가포르에 진출한 것은 2012년. 업계 처음으로 철근가공 솔루션을 시장에 선보이는 등 전국구 철근 제조기업으로 성장한 대한제강이 싱가포르로 눈을 돌린 이유는 양국의 경기 사이클이 달라 국내 불황을 이겨낼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 건설사들이 현지에서 굵직한 토목공사를 상당수 진행하면서 철근 수요가 늘어난 것도 주효했다. 정부 차원에서 30년 단위로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국가 주도형 인프라 구축에 나서면서 연간 180만t에 이르는 철근 수요가 안정적으로 뒷받침되는 것도 한몫했다. 오치훈 대한제강 회장은 “싱가포르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며 “우리나라에서 해오던 철근 가공 솔루션을 싱가포르에서 확대 적용할 수 있다고 판단해 진출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대한제강은 싱가포르 지사를 세우고 투아스 소형 가공장을 세웠다. 국내 건설사 위주로 영업에 나서면서 월 3000톤(t) 규모의 소량 생산에 집중했다. 하지만 현지 공장 운영에 대한 노하우 부족과 높은 고정비로 진출 2년 만에 문 닫을 위기에 처했다. 대한제강은 좌절하지 않고 2015년 로컬 회사와 조인트 벤처를 설립해 원가 절감을 이뤄냈다. 이어 선조립 제품 생산 등 사업을 확대하고 보다 안정적으로 사업을 운영하기 위해 2019년 4월 40년 역사의 싱가포르 철근 가공사인 앙카사(Angkasa) 지분 50%를 인수했다.
앙카사와 협력해 공장구조를 개선하면서 2019년 당시 월 1만t에 그쳤던 생산량은 지난 2월 기준 월 1만 5000t으로 늘어났다. 신규 수주에 잇따라 성공하면서 5년 치 물량도 확보했다. 이같은 실적을 토대로 대한제강은 앙카사 지분 절반을 인수한 지 5년 만인 지난 8월 30.1%의 지분을 추가로 확보해 앙카사 대주주 지위까지 얻었다. 싱가포르에서 운영 중인 공장 3곳은 각각 1만 1203㎡(3389평), 9007㎡(2725평), 4050㎡(1225평)에 이르며, 정부 주도 굵직한 건설 사업에 참여 중이다.
오 회장은 싱가포르가 사업하기 좋은 나라 중 한 곳이라고 했다. 정치 환경이 안정돼 있고 부정부패가 적고 투명한 데다가 국가 운영방침도 일관돼 사업 리스크가 낮은 덕분이다. 하지만 임대료 등 운영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안전·소방 관련 법적 제재가 강하고 싱가포르 국민 우선 채용 정책에 따라 인력 운용이 까다롭다는 단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오 회장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선 현지 경영인들을 존중하며 신뢰를 쌓는 것이 필요하다”며 “현지에 자회사 운영 전담 조직을 파견해 의사 결정이 제때 이뤄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모빌리티 허브 구축 현대차
싱가포르 서부 주롱 혁신지구에 자리한 현대차그룹 싱가포르 글로벌 혁신센터(HMGICS)는 친환경 미래 모빌리티 산업을 가시화했다. 지난해 11월 준공된 HMGICS는 4만 4000㎡(1만 3000평) 부지에 연면적 9만㎡(2만 7000평), 지하 2층, 지상 7층 규모로 설립됐다. 소규모 제조 설비와 연구개발(R&D) 및 사무 공간, 고객 체험 시설, 레스토랑을 두루 갖춘 복합 공간이기도 하다.
기존 컨베이어 벨트 방식과 달리 인공지능(AI)과 로봇을 활용한 셀(Cell) 시스템을 도입해 한 공간에서 아이오닉 5와 자율주행 로보택시 등 여러 종류의 차량을 생산하는 것이 특징이다. 근로자의 작업 지시에 따라 각 공정별로 배치된 로봇이 업무를 수행한다. 1층에 있는 스마트팜 역시 씨앗 심기부터 수확에 이르는 전 과정을 로봇이 관할한다. 이 같은 자동화 시스템 도입으로 센터 내 노동 인력은 140명 남짓에 불과하다.
현대차그룹은 싱가포르의 뛰어난 인프라와 접근성에서 길을 찾았다. HMGICS가 위치한 주롱 혁신지구는 2016년 발표된 정부 계획안에 따라 제조업 육성과 공정 전반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첨단 산업단지로 탈바꿈 중이다. 스마트 도심형 모빌리티 허브로 적합한 지역인 셈이다. HMGICS에서 개발·실증된 제조 플랫폼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울산 EV 전용공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양재생 부산상의 회장은 “HMGICS 시찰은 도심형 미래 모빌리티 산업의 흐름을 파악하는 중요한 기회가 됐다”며 “글로벌 기업과 지역 산업이 협력·발전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끝-
싱가포르/글·사진=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