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이름 비공개, 인권 보호 기대 속 책임 회피 우려도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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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털기’ 등 악성 민원 막으려
부산시 홈페이지 수정 작업 중
앞서 16개 구·군도 익명 처리
타 지자체, 팀·과장 이상 공개도

부산 한 구청에 공무원 이름과 사진이 사라진 ‘직원 좌석 배치도’. A구청 제공 부산 한 구청에 공무원 이름과 사진이 사라진 ‘직원 좌석 배치도’. A구청 제공

부산시가 악성 민원 등에서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시청 홈페이지에 직원 이름을 비공개하는 작업에 나섰다. 부산 16개 기초지자체도 올 3~6월 구·군청 홈페이지에 공무원 이름을 연이어 지웠다.

신상 공개와 악성 댓글에 시달린 김포시 9급 공무원이 숨진 후 많은 지자체가 직원 이름 비공개에 나서면서 인권 보호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하지만 공무원 책임 회피로 이어지거나 민원 소통에 불편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부산시는 지난달 26일 부산시청과 직속기관·사업소 홈페이지 등에서 공무원 이름 비공개 처리 작업을 시작했다고 2일 밝혔다. 시 홈페이지는 선출직인 박형준 시장을 제외한 모든 직원 이름이 빠지고, 부서·직위·담당업무·전화번호 등만 남겨졌다. 시 뉴미디어담당관 관계자는 “이달 5일까지 비공개 작업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는 과도한 민원에서 공무원을 보호하기 위해 이름 비공개를 결정했다. 시는 올 5월 행정안전부에서 두 차례 권고 공문을 받았고, 다른 시도에서도 비공개로 전환한 사례 등도 고려했다. 17개 시도 중 12개 시도가 이날 기준 홈페이지에서 공무원 이름을 가린 상태다.

부산 16개 구·군도 홈페이지 등에서 공무원 이름을 지웠다. 해운대구청 관계자는 “직원 이름이 공개되면서 집단·악성 민원에 악용된 사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자치단체 조치에도 익명 전환만으론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악성 민원인이 마음 먹으면 담당 공무원 신상을 알아낼 수 있고, 악성 민원에 대한 직접적인 대책으로 보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박형준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공무원들 이름이 비공개 처리된 부산시 홈페이지. 부산시청 홈페이지 캡처 박형준 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공무원들 이름이 비공개 처리된 부산시 홈페이지. 부산시청 홈페이지 캡처

오히려 정상적 민원 소통에 불편을 줄 수 있고, 공무원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러한 우려에 대해 시 총무과 관계자는 “공무원이 불친절하게 응대하면 시청 내부에선 누군지 파악이 가능하다”며 “이름만 비공개될 뿐 민원을 제기하면 최대한 빠르게 응대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기도는 팀장급 이상, 광주·세종·인천·전북 등은 과장급 이상 공무원 이름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최대한 책임감을 부여하면서 소통 저하를 막기 위한 취지로 보인다. 경기도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응대 경험이 많은 팀장급 이상 직원은 더 많은 민원을 전담할 수 있도록 이름 공개를 유지했다”고 밝혔다.

시 산하 공공기관이나 부산에 본부를 둔 공기업 등은 아직 직원 이름 비공개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부산도시공사 관계자는 “행정안전부에서 권고 공문이 와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토지 보상 등에 대한 민원이 많은 편”이라며 “민원 서비스 질이 떨어질 점 등을 고려하면 조심스러운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우영 기자 verda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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