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앤피플] 24시간 주식 거래 시대가 온다
취침 전·기상 후 미국 증시 보고
출퇴근길 프리·애프터마켓 이용
잠자는 시간 빼고는 투자 일상화
KRX, 정규장 외 거래 시장 확대
자본시장 경쟁력 강화 기대 속
단타 급증·가격 왜곡 등 우려도
그래픽=류지혜 기자 birdy@
40대 직장인 김주식(가명) 씨. 김 씨는 하루를 미국 증시 확인으로 시작한다. 오전 7시 기상 알람이 울리면 가장 먼저 주식 앱을 열어 밤사이 미국 증시와 보유 종목의 주가를 확인한다. 최근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다시 심화되며 시장이 약세를 보이자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는 올해 상반기 급등한 국내 증시에서 차익을 일부 실현한 뒤 미국 주식을 사들여 현재 국내 주식 70%, 미국 주식 30% 비중으로 투자하고 있다.
■‘잠자는 시간 빼곤 주식’ 일상화
출근 준비를 하던 김 씨는 지난 6월 고점을 찍은 뒤 하락세를 보이는 국내 증시가 오늘은 좀 오를까 노심초사한다. 오전 8시 출근길 지하철. 그는 대체거래소 프리마켓이 시작되자 국내 증시 흐름을 살핀다. 눈여겨보던 A 종목이 급락하자 정규장까지 지켜본 뒤 매수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다.
회사에 도착하고도 그는 틈틈이 앱을 통해 프리마켓 시황을 확인한다. 오전 9시. 정규장이 열리자 김 씨는 장 초반 시황을 살핀다. 프리마켓 때와 달리 A 종목의 주가가 상승세를 타자, 추격 매수 대신 다음 기회를 기다리기로 했다.
김 씨는 ‘장 시작 후 30분은 매도, 장 마감 전 30분은 매수’라는 증권가의 오래된 경험칙을 떠올리면서도 정규장 내내 매매 타이밍을 본다. 특히 주가가 약세를 보이는 점심시간 전후에는 매수 기회를 집중적으로 살핀다.
오전 11시 50분에는 많이 하락한 B 종목을 추가 매수했다. 오후에도 하락세가 이어지자 지정가를 낮춰 주문을 걸어뒀다. 예상보다 낮은 가격에 주문이 체결되자 ‘잘 샀다’는 생각과 함께 ‘더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도 스친다.
오후 3시 40분부터 시작된 애프터마켓에서도 거래는 이어졌다. 퇴근길인 오후 6시 10분에는 정규장 때 걸어둔 주문이 잇따라 체결됐다. 그는 ‘조금 더 기다렸다가 살 걸…’ 아쉬움을 곱씹는다.
저녁 식사 후에는 다시 미국 증시로 눈을 돌렸다. 오후 8시 미국 프리마켓에서 아직 수익권에 있는 C 종목에 지정가 매도 주문을 냈고, 오후 10시 30분 정규장이 열리자 곧 매도가 체결됐다. 이어 최근 낙폭이 컸던 우주항공주와 원전·전력주를 분할 매수하다 보니 어느새 자정이 넘었다.
■‘6시간 30분→12시간’ 거래시간 확대
온종일 주식 투자와 함께하는 김 씨의 하루는 이제 전업 투자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올해 상반기 코스피 급등을 계기로 시장에 뛰어든 수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국내와 미국 주식에 함께 투자하는 이들은 이미 한국거래소 정규장과 대체거래소 프리·애프터마켓, 미국 증시 정규장과 프리·애프터마켓을 오가며 하루 24시간을 주식시장과 함께한다. 지난해 3월 국내 첫 대체거래소인 넥스트레이드가 출범하면서 국내 증시도 미국처럼 장전·장후 거래가 가능해졌다. 넥스트레이드는 오전 8시부터 8시 50분까지 프리마켓, 오후 3시 40분부터 8시까지 애프터마켓을 운영한다. 국내 주식 거래시간은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 출범 이후 기존 오전 9시~오후 3시 30분(6시간 30분)에서 오전 8시~오후 8시(12시간·장 전환 준비 시간 포함)로 대폭 확대됐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프리마켓에서 미국 증시 변동에 보다 빠르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또 장 마감 후 기업 실적이나 정부 정책이 발표돼도 다음 날까지 기다리지 않고 애프터마켓에서 거래할 수 있다.
정규장을 운영하는 한국거래소도 거래시간 확대에 나섰다. 당초 프리·애프터마켓을 동시에 도입할 계획이었지만 일정을 조정해 애프터마켓은 다음 달 먼저 도입하고, 프리마켓은 증권사 시스템 개발과 단일보드(Single Board) 구축에 맞춰 내년 말 이후 선보일 예정이다. 단일보드는 프리마켓과 정규장, 애프터마켓을 하나의 주문 체계로 연결해 미체결 주문이 다음 시장으로 자동 이어지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한국거래소의 프리·애프터마켓 도입은 단순히 장을 몇 시간 더 여는 문제를 넘어, 국내 증시를 미국과 유럽 등 주요 시장과 경쟁할 수 있는 거래 환경으로 바꾸는 시장 선진화 작업으로 평가된다.
넥스트레이드의 프리·애프터마켓이 운영되고 있지만, 모든 종목이 거래되는 것이 아니다. 현재 넥스트레이드에서는 코스피·코스닥 대표 종목을 중심으로 약 650개 종목이 거래되고 있다. 종목 수로는 한국거래소 전체 상장사의 약 4분의 1 수준에 그친다. 이런 점에서 금융당국은 한국거래소가 모든 종목에 대해 장전·장후 거래를 확대하면 해외 투자자의 시장 접근성이 높아지고, 국내 투자자의 해외시장 이탈도 줄어 자본시장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종 목적지는 24시간 주식 거래
금융당국은 궁극적으로 24시간 거래 체계를 목표로 한다. 미국은 프리·애프터마켓이 활성화돼 있고, 유럽도 장외·시간외 거래가 활발하다. 국내 증시 거래시간이 확대되면 해외 투자자들이 자국 거래시간과 겹치는 시간대에 한국 주식을 거래할 수 있어 시장 접근성이 높아진다.
미국 주식은 거래 불가 시간이 8시간임에 반해, 국내 증시는 12시간으로 더 길다. 이 같은 거래 공백은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증시 이탈을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한국거래소는 원화시장 개방 확대와 외국인 투자환경 개선, 기업 밸류업, MSCI 선진국지수 편입 추진 등과 함께 거래시간 확대도 자본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시장 선진화 과제로 보고 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국내 투자자들은 이미 미국 주식, 가상자산, 해외 ETF 등을 시간 제약 없이 거래하는 데 익숙해졌다. 이런 환경에서 국내 증시만 제한된 거래시간을 유지하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며 “거래 시간 확대는 국내 증시를 글로벌 시장 흐름에 맞게 재편하는 과정”이라고 밝혔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거래시간 확대가 국내외 투자자들의 편의성과 시장 접근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 직장인들도 출근 전이나 퇴근 후 원하는 시간에 거래할 수 있고 해외 증시 변동에도 보다 빠르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려도 적지 않다. 거래시간이 길어질수록 투자자들이 시장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지고 단기 매매가 늘어날 수 있다. 특히 최근처럼 특정 업종이나 종목에 투자금이 집중되는 장세에서는 변동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래가 분산돼 호가가 얇아지는 시간대에는 적은 물량에도 가격이 크게 움직일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자본시장연구원 이성복 선임연구위원은 ‘주식시장 거래시간 연장 논의 동향과 과제’ 보고서를 통해 “거래시간 확대로 유동성이 시간대별로 분산돼 가격 왜곡이 발생할 수 있고, 시장 전체적으로 가격 발견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해외 투자자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거래시간을 연장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거래시간 연장에 필요한 관련 제도를 보완하고 시장 안정성을 위한 인프라도 보강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