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 징용공 숨기다 부친 희생… 아들은 평생 강제동원 진실 기록
지난달 31일 후쿠오카시 바이코엔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 기념 아리랑 문고 자료실’에서 만난 오이타대학 명예교수 모리카와 토미에(80) 씨.
지난달 31일 후쿠오카시 바이코엔의 한 주택가. ‘후쿠오카 아시아문화센터’ 간판이 걸린 흰 건물 4층에 들어서니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 탄광, 공해, 전쟁, 조선인 강제동원을 다룬 책과 자료집이 빼곡히 꽂혀있다. 2018년 2월 문을 연 ‘기록작가 하야시 에이다이 기념 아리랑 문고 자료실’이다. 하야시 에이다이는 평생 군함도와 치쿠호 탄광 등 일본 내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파헤친 기록작가로, 저서만 51권에 달한다.
자료실은 오이타대학 명예교수 모리카와 토미에(80) 씨가 운영하고 있다. 모리카와 씨는 1994년부터 20년 넘게 작가의 취재에 동행하고 원고를 검토해온 조력자다. “같이 취재를 갔더니 같은 질문을 세 번쯤 해요. 사람은 잊기도, 사실과 다르게 말하기도 하니 세 번을 물어도 답이 같으면 믿을 수 있다더군요.”
2017년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모리카와 씨는 다가와시에 있던 그의 작업실 겸 자료실 ‘아리랑 문고’의 자료를 정리해 후쿠오카 자신의 건물로 옮겨 관리하고 있다. 금전적 지원도 해왔다는 사실은 작가가 세상을 떠나고 난 뒤에 밝혔다.
문고 이름인 ‘아리랑’은 작가가 어릴 적 들어 귀에 맴돌았던 조선인 징용공들의 노랫말에서 따왔다. 치쿠호에서 자란 그는 어린시절, 신사 관리자였던 아버지 하야시 토라지 씨가 탄광에서 도망친 징용공들을 숨겨 피신시키다 경찰에 끌려가 고문 당하고 한 달 만에 숨지는 것을 지켜봤다. 이후 신사 창고에서는 탄광 제복 약 300벌이 발견됐다. 이는 그가 기록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결정적 계기로도 평가된다. 이후 작가는 와세다대를 중퇴하고 탄광 노동자로 일하다 붕괴사고를 겪기도 했으며, 시청에 근무하며 공해 문제를 취재하다 기록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자료실에서는 개관 직후부터 작가의 저서를 읽는 모임도 이어지고 있다. 평화에 대한 주제도 자주 테마로 오른다. 지난 6월에는 한국의 계엄령 사태와 국가권력, 민주주의를 돌아보는 주제의 모임이 진행됐다.
모리카와 씨는 올해 안에 하야시 에이다이 평전을 출간할 계획이다. 그는 “하야시의 아버지가 목숨을 걸고 도왔다는 사실 또한 한국에 널리 알려지면 일본에 대한 반감이 조금이라도 완화돼 한일관계에 일조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평전도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고, 한국 분들이 읽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